|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아내는 나와 정신적 궁합이 맞은 사람이다. 아내 또래의 여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역사인식이 앞서 있고, 민족애와 사회과학을 사랑하고 신봉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가난하게 살아도 정직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한 번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 해 본적이 없다. 우리는 힘겹게 결혼을 했지만 주변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싸움해본 적이 없는 잉꼬부부였다. 물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의견충돌이 조금씩 있었지만 40세까지만 해도 큰 소리 나게 한 번 다퉈본 적이 없었던 우리 부부였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주변에선 엘리트 부부라며, 민족과 나라를 위해 일을 해보라는 권유들을 많이 해오기 시작했다. 특히 정권교체를 위해서 싸우다보니 우리 부부에게 정치인이 될 것임을 당연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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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교수의 말이 씨앗이 되었을까 초대 지방선거가 끝나고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왔을 무렵 중앙일간 신문들이 아내와 동시에 국회의원 출마한다고 정치면 중요 박스기사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한국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국내의 내노라 하는 메이저 신문들이 우리 부부의 동시 출마사실을 기정사실화하여 <국내 최초 부부 동반 출마>, <전국적인 화제>등의 제목을 달아 전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사실 정권교체가 가능하고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일이 제도권 정치의 바른 정치의 길이라면 누구나가 이 길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 즉 제도권 안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제도권에서 썩어 없어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나는 신문에서만 떠들썩했지 출마를 하지 않았다. 출마도 할 수도 있었지만 주변의 여건이 녹녹하지가 않았다. 첫째는 재정문제였고 둘째는 DJ계보에서 반대했다.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표를 나누어 먹는다는 이유였다. 특히 DJ의 좌장격인 권노갑씨의 반대가 심했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한사람에게만 힘을 보태라고 말했다. 애시당초 나는 출마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었다. 사실 선거자금이 빈약한 우리들로서는 <두사람 부부 출마>의 화제기사로 엄청난 홍보를 한 셈이 되었을 뿐 손해는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이 정치를 해보라고 말했고, 한번 들어가면 여권향상과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날 DJ에게 말했다. DJ는 처음 뜨악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 동지가 나가지 웬 아내냐?>하는 투의 눈이었다. <경상도에서 이미지가 강한 제가 나가게 되면 꼴찌를 면치 못할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가 나가면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아내의 학벌이 선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DJ는 아무 말이 없었다. 승복의 표시인 것이다.
경상도에서의 김대중당으로의 출마, 그것은 낙선을 미리 염두에 두고 하는 선거다. 다만 DJ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세 불리기와 전국 정당화의 모습을 꾀하는데 일조를 할 뿐 당선은 거리가 멀다. 과연 후보 중 몇 등을 하느냐가 관심사다. 아내는 나이가 젊기 때문에 선거정치를 통해서 경험을 쌓고 지구장위원장으로서 정당정치를 배워 훗날을 꾀하여도 늦지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고 당선을 위하여 경상도에서 앞서가는 한나라당 같은 당을 통하여 출마하는 것은 꿈조차 꾸지 않았다. 그것은 이전에 한나라당은 군사정권의 후신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민주주의 운동을 한 사람들은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변절과 같은 죽음의 코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아내는 경남 양산시 선거구에서 출마를 했다. 상대 후보들은 한나라당 후보에 <나오연 현역 국회재경위원장>, 국민당 후보에 <박봉식 서울대총장>, 꼬마 민주당 후보에 <박수근 노조위원장>, 기타 무소속 후보에 <박인>씨 이렇게 하여 4대 1의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연설문과 선거전략은 내가 맡았다. 부산경남에서 운동권 출신 후배들을 모았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표몰이에 나섰다.
경력이 만만찮은 후보들과의 싸움은 차별화다. 우리는 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을 후보 차별화 전략으로 선택하였다. 그래서 포스터 슬로건도 <깨끗한 선택, 젊은 양산>으로 정했다. 그런데 아내가 국회의원에 출마하자 전국언론에서 엄청남 관심을 가졌다.
첫째는 전국 최연소 후보라는 것이고, 둘째는 적지라 할 수 있는 경남에서 연약한 여성이 쟁쟁한 후보들에게 도전을 했다는 것이고, 셋째는 모래시계세대 출신 부부로 출마 전부터 관심을 모은 후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거구인 경남 양산에서는 당선 이전에 유권자들이 여자후보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이 번뜩거렸다. 앳된 소녀 같은 여자애 하나가 김대중을 외치며 깨끗한 자신에게 표를 몰아 달라며 외치고 다니니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합동유세 날이었다. 상대 후보들은 돈으로 청중들을 불러 모았다. 세 대결이 합동유세 판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는 돈이 없기 때문에 선거 운동원 이십 여명만 유세장에 집결시켰다. 나는 도리어 상대방들의 돈으로 청중을 모은 것을 기회로 삼아 걸레 후보론을 연설제목으로 정하였다. 연설내용은 이랬다.
군사정권에 아부하여 출세한 사람, 지조와 철학이 부재한 쿠데타 군인형 후보, 오로지 당선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 후보, 전두환에게 충성 맹세하고 국립대학 총장이 된 사람, 이런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화려한 경력만큼 과거의 행적이 걸레다, 그것도 화장실을 닦는 걸레다. 이 나라는 그런 걸레 같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권을 휘젓고 다니며, 권력을 떡주무르듯이 한다. 그런 걸레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길 수없다.
나에게 표를 달라. 나는 깨끗한 행주 같은 후보다. 걸레긴 걸레라도 깨끗한 그릇만 닦는 행주걸레다. 행주걸레인 내게 표를 몰아 이 나라를 정직한 사람이 떠받드는 좋은 나라로 만들자 이 연설문을 이미애 후보가 읽어 내리자 그렇게 떠들던 청중들은 쥐 죽은 듯이 입들을 다물고 있었다. 상대후보가 오르면 환호를 보내던 청중들이 아내 이미애가 연설 할 때는 그 연설을 경청하느라 아무도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 환호도 야유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동원한 청중들에게서 박수소리가 터졌다. 비록 환호 없는 박수였지만 그것은 암묵적 동의였던 것이다. 뒷날 지방신문들 가십란에는 이미애의 <걸레론>이 신문마다 도배질이 되었다. 특히 국보위 출신인 박봉식 서울대총장 후보에게 빗댄 연설이라며 노골적으로 상대후보를 지칭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그 선거에서 후보 5명중 3등을 했다. 영남에서 김대중 계보의 후보가 갖는 3등은 의미는 컸다. 그냥 3등이 아니었다. 비록 지역감정조장에 의하여 3등은 했지만 수천 여표를 몰아준 이미애 후보 측 유권자들은 이 나라에 정권교체가 하루빨리 와야 함을 염원하며 던져 준 표였다. 적어도 양산시내에 정권교체를 열렬히 희망하는 사람들이 4천 여명이 넘는다는 신호였던 것이다.
이미애 후보의 이같은 성원은 나중에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정권교체에 일익을 한 것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선거는 친정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게 시집 온 아내의 결단, 그 결단에 이어 아내가 이 세상에 뜻을 펴며 살아 보라는 나의 작은 배려였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뜻이 맞는 부부로 이 땅에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는데 밀알이 되었노라고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는가? 우리 부부의 당당한 선포식이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목표가 아니다. 정권교체가 목표다. 우리 부부는 정권교체를 목표로 두고 김대중씨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가난하여 뼈골이 휘더라도 경상도 땅을 떠나지 않았다.
아내의 출마는 비록 선거에서 졌지만 우리에게 많은 희망을 가져다 준 결과물이었다. 아내는 양산시는 물론, 전국에도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양산시 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신년 하례식에 항상 제외되던 야당위원장은 그 해부터 정식 초청인사가 되었다.
야당을 바라보는 양산시 기득권자들의 눈에 조금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선거가 끝난 뒤 마산MBC에서는 <이색 출마자 이미애에게 듣는다>라는 <낙선자의 변>코너를 만들어 한 시간 동안이나 생방송을 했다.
우리는 그 선거를 통하여 이 땅에도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세월이 바뀌어 김영삼씨가 집권을 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7년 여 동안의 나에 대한 지명수배가 김영삼 정권에 의하여 해제되었다는 것을 안지는 해제 뒤 꽤 오래 된 뒤의 일이었다. 우리는 <지명수배 해제>잔치를 부산 연산동 단칸방에서 후배들과 눈물을 흘리면서 열었다. 물론 아내가 선거에 출마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내와 나는 경남 양산에서 10여 년간을 살았다. 아내는 학원수학 강사로 돈을 벌고 나는 울산매일에서 사설을 쓰며 월급쟁이로 살았다. 한결이와 한얼이 두 아들 녀석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였다. 엄마 선거 때 유치원을 다녔던 한얼이 녀석은 엄마 선거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동급생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선거운동을 했다는 뉴스는 우리 가족을 오랫동안 웃음 도가니로 빠지게 했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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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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