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록 변호사가 국회의원 출마를 했다. 

우리는 민주당이 통합이 되고나서 처음 치러지는 선거라 평민당 부산지역계보들은 전원 한군데 힘을 모아 이변호사를 밀기로 하였다. 나는 당시 이변호사 1급 선거참모를 맡았다. 당사 노모씨와 이변호사를 함께 선거를 도울 때 모텔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아침나절쯤인가 노모씨에게서 급히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노모씨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이대변인님 큰 일 났습니다. 최성묵 최고위원께서 쓰러졌습니다. 아마 별세 하신 것 같습니다.>

나는 간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가니 최 최고위원은 이미 숨을 거둔 상황이었다. 사인을 들어보니 길거리에 서 있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모시고 갔으나 숨이 멈췄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의한 사망이었다. 나는 최 목사님의 고통을 알고 있었다. 30여년 재야 생활동안 남모를 고통을 수없이 경험 하고도 그 고통을 입 밖으로 한번 표현 않으시던 분, 그분이 정당판에 들어와서 너무도 초라하게 돌아가신 것이다.

하나님 일을 세상을 먼저 구원 하는 일이 라며 열변하시던 그 음성이 들리는 듯도 한데 미처 <재세할인>의 뜻도 못 편 체 세상을 뜨신 것이다. 최성묵 목사 장례식은 부산 민주 시민장으로 치렀다. 이흥록 변호사도 나도 운구를 따르며 슬피 울었다. 물론 그의 죽음을 두고 정당판에 들어가 왕따 의식 때문에 괴로워하다 죽었다가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다할 때까지도 목사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려 애썼다. 또 그는 대의 앞에는 양보를 하는 사람이었다. 정권교체라는 거대한 민족의 염원 앞에는 자신의 개인적 희망 따위는 던져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주변은 그렇지가 못했다. 출세욕구로 인한 경쟁 심리로 최 목사에  대한 예전의 동지들, 그들이 최 목사를 죽인 것이었다. 그러나 좀 더 따뜻한 예의로 다가왔더라면 아무리 기득권을 거머쥐었더라도 겸손으로 최성묵이라는 거목을 대해주었더라면 그는 그처럼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 1987년 연세대 시위 중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고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서 발언하는 고 최성묵 목사.

최 목사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난 며칠 뒤 김대중 총재가 문상을 내려왔다. 문상을 마친 김 총재는 부산 보수동 크라운 호텔에서 나와 만났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호텔방에 들어선 김 총재는 차모비서와 함께 담소를 나누던 나를 발견하곤 잠시 방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김 총재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내게 말했다.

<언젠가는 최 목사 같은 분의 한을 풀 때가 올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 최 목사의 한도 정권교체만 되면 풀리리라 생각한다. >

나는 잠시 최 목사에 대해 죽을 당시의 상황을 얘기했다. 부산지역의 노씨 계보와 평민당 계보의 알력이 부딪치고 있다는 것도, 쉽게 말하자면 출세주의자와 정권교체주의자들과의 정신적 괴리감이 너무 많다고 설명을 했다.

김 총재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날 DJ는 부산지역에 정권 교체파들, 즉 평민계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마련해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일은 노씨측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주의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부산 재야의 거목 최 목사는 이름도 빛도 격동의 세월 속에 맡기고 떠나갔다. 받은 것이라곤 DJ의 쓸쓸한 문상 외엔 아무것도 받아 본 것이 없다.

나는 당시 부산에서 노씨와 공동대변인을 맡고 있었다.
이렇게 부산은 출세주의를 지향하는 계급주의자와 순수 정권 교체파들로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최성묵, 이흥록 이런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다.

그런데 순수 정권 교체파들은 지금까지 벼슬하나 얻지 못하고 초야에서 은둔하고 있는 반면 계급지향주의 자들은 정권의 한가운데이거나 공기업 또는 장차관을 역임하고 심지어는 이 땅의 최고 권력자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이러니칼한 일이다. 출세주의 욕구든 뭐든 대중들은 그들의 속성을 모른다. 소문이 나면 소문난 대로 포장된 것만 믿을 뿐이다. 출세주의자들의 속물근성은 알 리가 없다. 일시적인 착시현상인 것이다. 정치인이란 오로지 속이고 속이면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민족공동체의 미래는 두 번째 욕구였다.

최성묵 목사의 가슴에 못질을 한 노씨는 결국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좌까지 오르기도 하였다.

눈을 감은 최성묵 목사는 지금 지하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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