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눈이 내렸다고 했다. 첫눈이 내렸다며 보내 온 사진은 눈 덮인 설악산 사진이었다. 한국에 눈이 많이 내렸나보다.

여기,
내가 살고 있는 동티모르 딜리는 지금 무척이나 덥다. 딜리 인근에 있는 메띠나로 라는 곳은 엊그제 온도가 49도 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상상 할 수 없는 더위다.

지난 유월.
내가 동티모르에 들어오던 그때가 아마 가을의 끝자락이었나 보다. 그새 겨울이 지나고 봄도 지나고 여름의 문턱에 들어 선 것인지 정말 덥다.

누가 그랬다.
작년 이만 때 쯤 딜리에 들어왔는데 어찌나 덥던지 택시를 잡으러 나가는데도 숨이 막혀서 할 수 없이 차를 샀다고. 오죽 했을까 싶은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동티모르는 계절을 건기와 우기 두 계절로 나뉜다. 그리고 날씨에 관한 표현도 manas (hot)와 malirin (cold) 두 개 뿐이다. 요즘 같은 때는 ‘manas loos’ (무척 덥다) 라고 표현한다.

이제 12월이 되면 우기로 접어들어 비가 오기 시작 할 것이라니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지나가는 장마철처럼 여기도 장마철이 시작되는 것이다. 단지 장마철이 몇 달 씩 길 뿐이지.

나는 요즈음 거꾸로 가는 세상에서 사는 것 같다. 당연히 겨울로 가야하는데 여름으로 거스르고 있다는 느낌말이다. 내 몸은 반백년이 넘는 세월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패턴에 익숙해져 있었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날이 더우니 오후엔 수업을 할 수가 없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는 학생들에게 집에 가서 뭐 할 거니?” 하고 묻는다.
그러면 학생들은 한 결 같이 집에 가서 잠을 잘 거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래 낮에 한잠 자고 공부는 더위 좀 가신 저녁에 하자” 라고 말한다.

사실 딜리에 한낮은 너무나 조용하다. 모두 한잠씩 자는 것이 분명하다. 낮잠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한낮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일없이 거리에 나간다. 나간들 어디에 들어가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 먹으며 더위를 식힐 만 한 곳이 딱히 없으니 멋쩍게 집에 다시 들어와 애꿎은 선풍기만 돌려댄다.

엊그제 나는 이사를 하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닭소리 때문에 이사를 가는거냐고 말했지만, 나는 미크로넷을 타러 갈 때 너무나 더워 미크로넷을 타기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이제는 집 앞에서 미크로넷을 타니 차를 타기 전부터 땀으로 범벅이 되거나, 학교에 가서도 그렇게 지치지는 않는다.

더위를 따라 오는 것은 강한 햇볕이다. 아니 햇볕이 강하기 때문에 더운 건가? 하여간, 나는 집을 나설 때는 완전 무장을 하고 나선다. 선크림을 바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선글라스와 모자는 필수다. 때론 마스크도 쓰고 그리고 양산도 챙겨 가방에 넣는다.

중국에서 지낼 때도 나는 양산을 쓰고 다녔다. 내가 살 던 안휘성은 중국 중남부 그러니까 위도 상으로 우리나라 제주도 보다 조금 아래에 있으며 내륙 지방이었는데 여름에는 유달리 더웠다. 그래서 인지 점심시간도 길었으며 점심식사 후에는 모두 한잠씩 잠을 잤다.

처음에 나는 그것도 모르고 수업 시간에 찍은 사진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과대표에게 카톡으로 보내 줬더니 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 선생님, 저는 지금 잠을 자야 해요.”

중국의 대학은 학생과 교직원 모두 학교 안에서 생활한다. 내가 있던 대학도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교직원 가족이 모두 한울타리 안에서 생활했다. 그러니 학교 규모가 엄청 나게 클 수 밖에 없다.

학교가 크다보니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항상 양산을 쓰고 다녔다. 나도 여학생들 속에 묻혀 양산을 쓰고 다녔다. 한번은 앞집에 사는 캐나다인 매슈 교수를 교정에서 만났는데, 그는 나를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니 그는 “선생님은 비도 안 오는데 왜 우산을 쓰고 다니세요?” 라고  물었다.

나는 매슈 교수에게 “이것은 우산이 아니라 양산이라는 겁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는 슬그머니 양산을 접었다.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을 주신 그분께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동티모르에 와서도 나는 양산을 쓰고 다녔다. 거리에 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다녔다. 정확히 말하면 우산이다. (양산이 없으니)

오늘 나는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과 미크로넷을 타러 가는데 갑자기 양산이 생각났다.
나는 황급히 가방 안에서 양산을 꺼내 펼쳐 들었다. 그때 내 옆에 가던 남학생이 나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선생님, 비도 안 오는데 왜 우산을 쓰세요?”
그 때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내 유난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 것이다. 그래도 여기가 중동 보다는 덜 덥다는데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휭하니 바닷가에 나가 코코넛이나 하나 마시고 와야겠다.
더위에 코코넛 만 한 것도 없고...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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