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 평화를 만드는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진정 평화롭기를 원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 9번이다. 그러나 건강한 9번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함께 평화를 갖는데 비해 보통 수준의 9번은 다른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9번의 유아기 기원은 양친 부모(양육자와 보호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부모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타입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하고 수동적인 아이로 자란다. 

성서 속의 인물 바나바는 건강한 9번의 모습을 보인다. 성경에는 그를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묘사한다(사도행전 11:24). 그는 레위지파의 자손으로 부유한 환경 속에서 사랑받으며 성장했다.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일과 성전에 봉사하는 자들로 바나바의 유아기 양육 환경은 그가 건강한 9번으로 자라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교회에 헌납하고 헌신적인 믿음의 길을 갔다.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교회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하는데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다. 잘 나서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자기할 일을 다 하고, 자신보다 하나님의 일과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그는 사도들과 신도들의 두터운 신임으로 지도자가 된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기보다 헌신적으로 섬기는 모습에서 비 권위주의적이며,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9번의 지도력을 보여준다.

배려심이 많고, 상대방의 입장을 자신의 일처럼 깊이 공감하는 9번은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바나바의 중재는 사울이 바울이 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된다.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빛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새로운 소명을 받는다. 그러나 교회와 신도들을 극심하게 박해하고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을 때 사령집행관처럼 지켜보았던 그동안의 행적들로 많은 성도들은 그를 믿지 못하고 두려워했다. 이때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적극적으로 변론하고 보증함으로써 사도와 신도들을 설득했다. 자신이 오해받을 수도 있는 위기 속에서도 사울을 위해 중재하고 성도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 대한 두터운 신임이 전제되었기 때문인데, 이 일을 통해 평소 9번 유형 바나바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듬직하고 관용하는 사람, 바나바

예루살렘교회에서 이방 지역 전도를 위해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했을 때 그는 사울이 이방인의 전도에 뛰어난 능력이 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스데반의 순교 후 다소에 피신해 있는 사울을 데려와 함께 사역하기를 격려한다. 그는 사울의 능력을 높여 지도자의 자리에 있게 하고 자신은 평신도로 남는다. 바나바의 이런 점이 사도 바울을 있게 했지만 이는 자신이 바울 뒤에 가려진 이유이기도 했다. 타인의 능력을 인정하며, 높이고, 자신은 물러나는 점은 9번이 건강할 때의 겸손과 관용이다. 하지만 보통 수준일 때는 자신의 능력이 뛰어난 경우에도 자기비하에 빠져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조차도 놓치는 소극적이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1차 전도여행 중 일에 대해 엄격한 바울은 마가와의 불화로 2차 전도여행에 마가와 함께 가기를 반대한다. 이 문제로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를 옹호하다가 바울과 다툰 후 결별한다. 9번은 갈등상황이 닥치면 강박적으로 갈등을 회피하려다 판단력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건강한 9번인 바나바도 달리 보면 조카를 옹호하려다 더 큰 전도 사명을 감당할 동역자와 갈라서게 되는 지경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9번은 그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갖는다. 일에 대한 능력은 뛰어나지만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바울이 9번인 그에게는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느껴진다. 일보다는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 바나바가 마가를 택한 것은 결별에 대한 불안이기 보다 9번의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바나바는 행동하는 평화주의자이다. 그가 드러내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힘이 평화를 만드는 원천적인 힘이다. 이 사랑의 힘 때문에 그가 있는 곳에 평화가 이루어졌다. 

나의 이야기

나는 유교적 사고방식과 강압적인 일본식 교육에 젖은 아버지와 남편의 뜻을 따르느라 애쓰는 엄마를 보면서 자랐다. 아버지는 1번이실 것으로 예상 되는데 시간 지키기, 물건 제자리 정돈하기, 근검절약, 집안청소, 예절 등등... 모든 면에 너무 철저하셔서 집안 분위기는 늘 살얼음판 같았다.

또 여자들은 옷차림, 행동, 말소리, 웃음소리까지 조용해야 하고, 아버지가 쓰시는 물건은 손을 대서는 안 되고, 혹시 만지더라도 꼭 제자리에 원래대로 두어야 했다. 아들들이 아버지 말씀에 어긋날 땐 가차 없는 체벌식 훈육을 하셨다.

그러나 그 시절, 초등학교 3학년인 내게는 피아노를 사주실 정도로 나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시기도 했다. 나는 고집을 피운 기억이 없는 착하고 얌전한 아이였다. 

9번에게 평화롭고자 하는 욕구는 무의식적이다. 이러한 긴장된 분위기에서 어린 내가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평화롭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을까.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하고 조용한 아이로 있는 것, 그것이 모두를 위한 평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평화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의 내면에서 찾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그것이 어린 9번에게 격정인 나태가 드러나기 시작된 모습이 아닐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내 통금시간이 저녁 아홉시였는데 조금만 늦어도 대문에는 자물쇠가 걸렸다. 열쇠는 아버지가 지니고 주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늦어 서너 시간씩 벌을 섰다. 친구와 보내는 게 재미있어서 보다는 늘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하는 타이밍을 놓쳐서 그랬다. 친구 입장 때문에, 분위기 깨질까봐, 혼자 일어서기 싫어서 등등…. 항상 나보다는 상대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이 편해야 내가 편한지, 왜 나를 주장하는 것이 불편한지….

이런 의문은 학창시절 내내 나를 방황하게 했고, 어른이 된 후에도 숙제처럼 나를 심리학과 영적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자라면서 나 자신에 대한 분명하고 긍정적인 정체성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찾기 위한 본능적인 내면의 갈망이었다. 그러나 9번들은 심리학과 영적 세계에 대한 내용조차도 자신의 평화를 위해 각색해 버리기 때문에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보통 수준인 나는 항상 내 욕구는 내면으로 끌어들인 채 겸손하게 양보하고, 물러서는 것이 모두가 평화로울 것이라는 함정에 빠져 살았다. 효도하는 맏딸, 착한 동생, 양보 잘하는 언니, 남편 뜻에 따르는 아내, 헌신적인 엄마… 나는 없었다.

내 삶의 경험들이 다양하지 못한 것은 내게 주어진 상황에 늘 수동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성장기의 방황이 내 무의식의 평화에 대한 갈망에서 기인했음을 알게 되면서 나는 나에 대한 의문에서 자유로워졌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조용히 있음으로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이런 착각 때문에 나는 삶에서 중요한 많은 것들을 놓쳤다. 진정한 평화는 주님께 의지하고, 9번은 나태라는 격정에서 깨어서 삶에 모든 것들을 진정 사랑해야 한다.

서주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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