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면서 상처받은 그 당시의 내가 이해받고 공감받고 위로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내 상처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지요.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상처받은 자신’을 순하게 감싸 안을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을 정서적 깨달음이라고 해요. 그러고 나면 사람은 달라지지요. 편안해져요. 자신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인식하게 되고 그러면 그런 상황에 다시 맞닥뜨렸을 때 전보다 정서적으로 덜 휘둘리게 되죠. 주변 상황에 압도당하는 일이 적어집니다. 홀가분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편안해지는 거예요.

-<당신으로 충분하다>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어제도 바쁘게 하루가 갔다. 이런 날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전전날의 숙취를 안고 아침도 거른 채 알바 하는 곳으로 갔다. 둘이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분이 말했다. 순남시레기 집 어때요? 그분은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알고, 그곳을 떠올렸는데, 순간 내가 거절했다. 전에 가보았는데, 좋은 기분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고 식당 밀집 지역으로 가다가 다시 내가 말했다. 순남시레기로 가자고. 그런데 그분이 그 옆을 보며 그곳이 어떠냐는 신호를 보냈고,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따라 들어갔다. 묵은지김치찌개를 시켰다.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날도 더운데 직접 끓이는 것이었다. 그분은 내 하체가 부실한 것을 직감하고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고 했다. 나로서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좋은 기분을 가지려고 애쓰며 경청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시계방에 약을 넣으러 갔다. 약만 갈아 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숫자도 떨어졌다며 그것을 한참 동안 붙이고 있었다. 여자분이 하더니 이내 남자분이 와서 하는 것이었다. 꾹 참고 있다가 시계를 받아든 다음, 사무실로 가 교정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화정도서관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컨디션 난조로 글쓰기 수업을 어떻게 해나갈지 난감했는데, 수강생들이 열심히 해주어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다만, 개념적인 설명에서는 나도 수강생들도 힘들어했다. 늦은 밤, 골치 아픈 개념의 세계보다는 정서적 느낌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느낌을 나는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전전날의 짜증을 어제 글로 풀어내서 말이다. 구체적 상황에 대한 언급과 거기서 오는 느낌을 떠오르는 대로 쭉쭉 써서 신체적 저항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일상에서의 이러한 글쓰기, 분명 보약보다 나을 것이다. 그것을 잘 공유하기 위한 좋은 수업 내용과 방식, 거듭거듭 고민해야 할 것이다.

▲ 김서정 작가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2년 단편 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어린이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 등을 썼고, 북한산 산행기로 산문집 《백수 산행기》, 먹거리와 몸을 성찰하는 에세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평화 산문집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 글쓰기 강의인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지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출판 편집일과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서정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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