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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보에서<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6.12.12 14:15

동티모르에서 사는 동안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다.

까멜리나무(백향목)를 볼 수 있다는 수와이.
우리나라 지리산과 한라산이 함께 어우러진 것처럼 아름답다는 라멜라우 산.
인도네시아 속에 동티모르의 도시로 씩씩하게 남아있는 오웨쿠시.
그리고 생인손을 앓고 난 흔적처럼 역사의 아픔을 안고 있는 발리보다.

발리보 ⓒ임정훈

그 중에서 나는 발리보를 먼저 찾았다. 내가 발리보를 먼저 찾은 이유는 발리보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어서였다. 발리보 사람들의 발자취는 곧 동티모르의 역사이다.

인도양 끝자락에 있는 티모르 섬. 말레이어로 “동쪽”이라 불리는 곳. 이곳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순박하게 살고 있다. 어느 해 티모르 섬에 골리앗 같이 거대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들어왔다. 그들은 이곳에서 순박한 사람들의 소중한 자원을 착취해 가며 티모르 섬을 동서로 나누고 이들 위에서 450 여 년을 군림하였다.

그 와중에 일본은 1943년 이 작은 나라 동티모르까지 전흔을 남기고 지나갔으며, 이때 호주를 도와 게릴라전을 펼쳤던 동티모르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동티모르가 포르투갈로 부터 해방이 되 던 해인 1975년 인도네시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독립 9일 만에 동티모르를 침공하여 강제 합병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동티모르의 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다.

발리보 ⓒ임정훈

그러나 동티모르 사람들은 식민치하 25년을 종식시키며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이루었다. 나는 동티모르 사람들이 독립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맨발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맨발의 힘, 신발을 벗는 다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려놓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맨발로 독립을 이루어  새로운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냈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느리지만 조금씩 세계 속에 동티모르를 알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가 일 년 넘게 동티모르에 살면서 바라본 동티모르 사람들은 욕심 없이 서로 사랑하고 나누며 보듬으면서 알콩달콩 살아간다. 그들은 오래 전 어느 부족을 이루고 살 때부터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발리보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였다. 정겹고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내가 만약 동티모르에서 여생을 보낸다면 발리보에서 이들과 더불어 오손도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보의 시내를 벗어나 산기슭으로 접어드는 오솔길을 걷고 있는데 작은 여자 아이가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아이가 귀여워 습관처럼 이름을 물었더니 ‘엘자’라고 했다. 엘자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자 멋쩍어하면서도 차렷 자세를 취하고 서있더니 내가 사진을 찍자마자 어디론가 막 뛰기 시작했다. 나도 호기심에 빠른 걸음으로 엘자의 뒤를 따랐다.

엘자 ⓒ임정훈
발리보 아이들 ⓒ임정훈

엘자가 들어 간 조그만 집 앞에 섰을 때 빌립비씨네 아이들처럼 많은 아이들이 그 집에서 나와 나를 환영해 주었다. 그새 엘자가 말했는지 아이들은 내 앞에서 익살스럽고 개구쟁이 같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어주기를 기다렸다. 어디를 가나 천진한 웃음을 보이며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동티모르 아이들. 나는 이런 아이들이 좋다. 

아이들과 헤어져 걷다보니 발리보 보건소가 나왔다. 산속 작은 도시 발리보 사람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오고갔을 발리보 보건소에서 나 역시 내 발자취를 남기며 발리보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발리보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쓰나미처럼 몰려온 외세의 탄압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이제는 모두 아물었기를, 그들의 몸과 마음이 평안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발길을 돌렸다.

발리보 보건소 ⓒ임정훈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2009년 로버트 코놀지 작품의 <발리보> 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침공하던 역사의 현장에 이렇게 천진한 아이들이 살고 있던 발리보가 있었고, 이를 세상에 알리고자 발리보에 머물면서 취재를 하던 호주 기자 5명이 자취를 감추는 사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호주 기자들의 사살 사건과 은폐 된 진실을 캐내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발리보 사람들이 인도네시아로부터의 침공에 참혹하게 희생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발리보> 라는 영화에서 인도네시아 점령군들에 의해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발리보 사람들을 보며 후세 (후에 동티모르의 대통령이 됨)가“야만인”이라고 외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자국민들의 죽음을 보며 가슴 미어지는 아픔으로 토로하는 장면이다.

<발리보>에 나온 총살현장 ⓒ임정훈

야만인이라는 단어는 ‘미개하여 문화 수준이 낮은 사람, 교양이 없고 무례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은 정의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야만인은 남의 권리를 함부로 빼앗는 자이고, 남의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자이며, 남의 삶을 마음대로 짓밟는 자가 야만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보를 뒤로하고 돌아오는데 머지않아 돌아 갈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이 함성처럼 퍼지고 출렁이는 장면이 떠올랐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함께 하지 못하지만 내 가슴에 촛불하나 지핀다.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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