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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자존심 빼면 시체였다하루를 살아도 부끄럽지 않게
박철 | 승인 2018.03.24 00:43

30년 전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하던 때였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는 무엇이든지 돈이면 다 해결되었습니다. 내가 교육전도사를 했고 아내가 모 회사를 다녔는데, 둘이 받은 돈을 합치면(아내 수입이 몇 배가 더 많았다) 1백만원이 넘었습니다. 30년 전의 이야기니 당시로서는 큰돈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비교적 넉넉하게 생활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는데, 교회에서 받는 한 달 사례비가 5만원이 전부였습니다.

우리 내외는 목회를 하면 돈과는 무관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고, 아내는 결혼 후에도 얼마든지 직장생활이 보장되었지만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신혼 때 우리 내외가 살던 전셋집 보증금도 양가 부모님에게 다 돌려 드리고 맨몸으로 왔기 때문에 여유 돈도 하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습니다.

▲ 2017년 1월 9일 부산서면. 박근혜 탄핵집회 연설을 마치고. ⓒ박철 목사 제공

5만원을 받으면 각종 헌금을 다 떼면 2만5천원이 남습니다. 물론 도서비·목회비·상여금, 이런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가난했던지 우리가 헌금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정선교회에서 한 달에 5만원 생활비 보조비가 있었는데 그걸 합치면 한달 7만5천원으로 한달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두부 한 모 사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쌀은 다행히 이웃 교회에서 갖다 주어서 우리 두 사람의 식량은 해결되었습니다.

나는 그 시절 자존심 빼면 시체였습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어서 누가 나를 건드리면 참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남에게 공연히 아쉬운 소리를 한다거나 손을 내민다거나 그런 행동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가난해서 주접을 떨 만큼 궁기(窮氣)를 내비치거나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당당했습니다. 정선 지방 44교회 중 43번째였지만 '작다'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E. 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삶의 명제가 내 삶의 표지판이었습니다.

두부 한 모 사먹을 돈이 없으면서, 어쩌다 돈이 생기면 책을 샀습니다. 책도 전부 사회과학서적이었습니다. 책을 사는 게 제일 행복했습니다. 그때가 아마 지적인 호기심이 제일 많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나는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산으로 고사리나 나물을 뜯으러 다녔고, 아내는 들로 미나리 등 들나물을 뜯으러 다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말하길 “새로 이사 온 전도사 새댁이 우리 동네 나물이라는 나물은 다 작살내네!” 그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찬거리는 동네 사람들이 더러 갖다 주기도 했지만 자체 해결을 했습니다. 가난했지만 그 시절이 가장 풍족했습니다. 아무 욕심도 없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하루하루의 삶이 만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다니시는 서울의 잠실 S교회에서 어머니를 통해 연락이 왔는데, 여선교회에서 매달 5만원씩 내 생활보조금을 보내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S교회 담임목사께서 여선교회 임원들이 담임목사와 의논도 하지 않고 도와줄 교회를 정했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박 전도사가 운동권이고 기도는 열심히 안 하고, 형제교회 D목사와 친하고, 좌경의식이 있다고 걱정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가 1986년 군사독재정권이 최악의 발악을 하던 시절이 아닙니까? 그 얘길 듣자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한 달에 5만원이라니, 그것도 교회에서 주는 게 아니고 여선교회에서 주는 것이라니 주면 고맙게 받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와 전화통화가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난 다음 등기로 우편물이 하나 왔습니다. 뜯어보니 소액환 5만원 권과 S교회 목사님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박 전도사! 우리 교회 여선교회에서 박 전도사를 돕기로 해서 매달 5만원씩을 일년간 보낼 것이오. 돈을 내가 소액환으로 바꾸어 보내겠소. 비록 적은 돈이지만 이 돈은 목회하는데 요긴하게 쓰기 바라오. 대신 목회보고서를 작성하여 매월 초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예배 출석 상황과 박 전도사의 목회일지를 간단하게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라오…”

그때 이 편지를 읽고 부들부들 떨리는데 한참 동안 진정이 안 되더군요. 곧바로 자전거를 타고 정선 읍내에게 가서 내가 받은 소액환과 편지를 그대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났다더니 K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왜 돈을 받지 않느냐? 왜 돈을 돌려보냈느냐?" 그때 딱 한 마디로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목사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넉넉하게 삽니다. 그러니 전번과 같은 수고를 안 하셔도 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한 달에 5만원이라는 돈은 내가 교회에서 받는 생활비와 같은 금액의 돈이었습니다. 한 달에 5만원을 주고 목회보고서를 작성해서 보내라고 한 저의가 너무나 명백했습니다. K목사 자신도 자신의 요구가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운동권 전도사가 마음엔 안 들고 여선교회에서 돈을 매달 부치기로 결정하고, 매달 내게 돈을 부치는 일을 여선교회에서 알아서 하면 될 텐데, S목사는 자신이 이 문제에 끼어들어 중간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할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기분은 나쁘겠지만 돈을 받을 걸,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목회보고서는 적당하게 써서 보내주면 될 것이고. 그런데 그때는 왜 그런 타협이 용납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에는 ‘내가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내 안에 있는 어떤 불의한 세력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회의 구조악에 대하여 저항하려면 절대로 나 자신의 모순과 타협하지 않아야 내 삶의 명분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잘한 것인가 잘못한 것인가, 옳은 선택인가 잘못된 선택인가 하는 것도 지금 상태에서는 유보(留保)합니다. 다만 하루를 살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소신일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매우 떳떳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는 작은 게 좋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게 좋아
다들 큰 것에 미쳐
큰 것만이 귀한 것인냥
큰 것에만 매달려도
나는 작은게 훨씬 마음 편해
작다고 해서 기죽지 않고
작다고 해서 불편하게 느끼지 않고
작은 것에 행복이 있으려니 믿고
나는 작은 것을 찾아 갈테야
작으면 어때 작으면 작은 대로 의미가 있고
생명이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 속에 무한한 바람이 있고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평화가 있으니
나는 작은 게 좋아
나는 작은 게 훨씬 마음 편하고 좋아.
- 박철, “작은 게 좋아”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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