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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울리는 사랑의 종소리종치기 집사님을 기억하며
박철 | 승인 2018.07.13 22:36

지금부터 24년 전, 경기도 남양에서 목회할 때 홍재인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수십 년간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셨습니다. 머슴 생활이 하도 몸에 배어서 길에서 마주쳐도 꼭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십니다. 홍 집사님이 세상에서는 늘 다른 사람에게 찬밥 신세였고 업신여김을 받다가 교회에 나오셔서 처음으로 인간 대접을 받게 되셨으니, 그 마음이 어떠하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워 예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무얼 할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교회 종을 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골 교회엔 예배당 옆에 종루가 따로 있었고, 모든 예배 시간(주일 낮∙저녁, 수요 저녁, 새벽 기도회)마다 첫 종(시작 시간 30분 전)과 재종(시작 시간 10분 전)을 쳤습니다. 홍 집사님이 예수 믿기로 작정한 날부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10여 년 간, 종을 쳤습니다. 종을 얼마나 열심히 쳤는지 단 1분도 시간이 틀린 적이 없어서 동네 사람들이 교회 종소리에 시간을 맞출 정도였습니다.

▲ 홍재인 할아버지는 자신의 한 많은 세월을 그 가나긴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를 달래면서 한 조각의 위로와 평안을 얻기 위해 새벽종을 울립니다. ⓒ박철 목사 제공

그 당시 주보에 홍재인 집사님의 이야기를 “사랑의 종소리를 울리며”라는 제목으로 실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장덕교회 홍재인 집사님은 올해 일흔다섯 되신 종지기 할아버지입니다. 예수를 믿게 된 지 10여 년, 그때부터 자원해서 종치는 일을 맡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왜정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가닥 많은 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삶, 아무데도 의지할 길 없는 외롭고 쓸쓸한 삶이었습니다. 남의 집에 얹혀 머슴살이를 하며 천대받기도 했고,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고된 노동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삶을 살아오셨답니다.

그 모진 고생 가운데서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고, 질경이 같은 뚝심으로 오롯하게 살아오셨습니다. 한 조각의 위로도 희망도 없는 삶을 살아오시다 하느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주일을 지키시고 매일 새벽마다 종을 울립니다. 지난해부터 기력이 많이 쇠해져, 걸음걸이도 느릿느릿 굼뜨고 해소 기침이 떨어질 날이 없으신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마다 어김없이 종을 울립니다. 그의 75년 성상의 그 가닥 많은 생의 회한을 담아서 멀리멀리 퍼지도록 종을 울립니다.

홍재인 할아버지는 글도 잘 읽지 못하시고, 밭 한 뙈기 가진 것도 없으시고, 호강 한 번 누려본 일도 없으시지만 ‘나는 이제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분을 진정 따르는 길을 택해 모든 이의 가슴에 종소리를 전하고 계십니다. 홍재인 할아버지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만납니다.”

그러던 홍재인 집사님이 1994년 3월 9일. 그러셨던 홍재인 집사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셨습니다. 초겨울 저녁나절, 신문을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홍 집사님의 부인 집사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목사님, 우리 영감이 아무래도 가실 모양이에요!” 그러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홍 집사님은 거의 한 달째 아무 것도 잡숫지 못하고 기력이 다해 누워만 계셨습니다. 임종 예배를 드리기 위해 장로님들과 교우 몇 분을 불렀습니다. 홍 집사님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계셨습니다. 찬송을 두어 곡 부르고 간단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홍 집사님은 가뿐 쉼을 몰아쉬면서도 정신의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홍 집사님,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하느님이 집사님을 사랑하셔서 모시고 갈 모양이에요.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없으세요?”

“할멈, 조…종국이 안 왔어? 목사님, 종국이 종국이가 보고 싶어요.”

홍재인 집사님에겐 아들 셋과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자식들은 다 그럭저럭 살았는데 막내아들은 장가도 못가고 몇 해 전, 큰 사고를 치고 집을 나간 뒤 몇 년 동안 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었습니다. 평소에 홍 집사님은 집나간 아들에 대해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막내아들 이야기를 꺼내면 홍 집사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릴 것 같아서 아예 얘기를 꺼내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홍 집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입에서 모기만한 목소리로 “종국이가 안 왔냐고? 종국이가 보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의외였습니다. 그것이 홍 집사님이 마지막 남긴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홍 집사님을 숨을 거두셨습니다.

▲ 1994년 당시 장덕교회 교우들과 주일예배를 마치고. 사진 왼쪽 맨 위에서 네 번째가 홍재인 집사님이시다. ⓒ박철 목사 제공

오늘 아침, 누가복음 15장 11절~32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날리고 알거지가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돌아왔다면서 입을 맞추고 금가락지를 끼워줍니다. 큰아들은 송아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푸는 모습을 보고 빈정거립니다.

맏아들은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잘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자기 딴에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첫째,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자식이 집을 나가서 몇 해가 지났는데 아무 소식이 없자 ‘이 놈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지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은 맏아들은 눈곱만큼도 몰랐습니다.

맏아들이 화가 나서 잔치에도 들어오지 않자 아버지가 “너도 얼른 들어와 축하해주라”고 했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내가 여려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하고 대답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예배 출석도 열심히 하고, 십일조도 바치고, 기도 생활도 하고, 봉사 생활도 열심히 했다는 것이지요. 겉으로는 완벽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 믿음이 훌륭해 보입니다.

두 번째, 맏아들의 잘못은 아버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잘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었지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맏아들의 질문에 대하여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31절) 아버지 것이 다 맏아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아버지를 섬겼다고(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아버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맏아들의 결정적인 잘못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맏아들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내가 어찌 맏아들과 같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혹 내가 입술로만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하느님의 마음과 하느님의 사랑은 진정으로 이해하고 계십니까?

지금 제 마음엔 24년 전 세상을 떠난 홍재인 집사님의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사랑의 종소리가 제 귀에 쟁쟁하게 들려옵니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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