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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생명연장론’에 대한 신학적 응답신학자가 본 삶과 죽음 6
김흡영 대표(한국과학생명포럼) | 승인 2018.10.02 19:58

그리스도교 성경이 말한 ‘죽은 자의 부활’까지 기계적으로 가능하다는 테크날러지 유토피아론이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트랜스휴머니스트의 주장들에 관하여 신학은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 것인가? 트랜스휴머니즘의 도전은 그리스도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제종교들이 함께 협동하여 대처해야 할 이 세기의 화두일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하면서, 이 글에서는 매우 기본적인 신학적 응답에만 국한한다.

‘급진적 생명 연장(Radical Life Extension, 이하 RLE)’이 제시하는 불멸성은 그리스도교가 믿는 육체의 부활과 유사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다른 것이다. 물론 양자는 모두 젊고 건강하게 장수하고 인지능력이 뛰어나게 하는 변화를 선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부활과 급진적 기술에 의한 생명연장은 매우 다르다. 신학적 불멸성과 생물학적 긴 수명(longevity)은 전혀 상이한 목적을 가진다. 과학기술은 긴 수명, 젊은 몸, 좋은 건강 그리고 뛰어난 인지적 능력 등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 급진적 생명연장이 새로운 창조주의 작품일까 ⓒGetty Image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오히려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포기할 것을 권면한다. 심지어 생명 그 자체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참 생명을 가지게 하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생명을 잃는 것은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바울이 말하는 “산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롬 12:1). 그리스도교는 개인적 현재생명의 생물학적 확장보다는 죽음을 받아드리며 죽음을 넘어서 참나를 찾고 참생명에 이르는 영원한 생명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가톨릭은 인간의 유전자 조작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한다. RLE와 가톨릭이 이해하는 영생에 이르는 부활은 매우 상이하다(Terence Nichols).(미주 29) RLE는 생명의 기한(수명)을 연장하려 한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핵심은 사망을 통하여 그리고 사후에 얻어지는 영원한 생명이다. 그것은 우리가 물리적 죽음을 무제한적 연장하여 얻어지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죽음 후에 하느님이 선물로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이 물리적 육체의 수명을 무제한적으로 연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의 물리적인 육체를 초월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개신교나 가톨릭은 모두 RLE가 우리의 영성에 끼칠 영향들을 매우 걱정한다. 오래 사는 것에 익숙해지면, 죽음이 아직도 불가피한 것이고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죽음에 대하여 충분히 준비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신을 만나기 위하여 필요한 죽음에 대하여 준비가 되지 않게 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완성의 최상의 모형은 하느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행복이란 결과적으로 하느님과의 연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느님과의 연합을 준비하는 것이 인간수명의 길이에는 관계없이 우리가 삶속에서 기본적으로 우선되어야 영성적 조건이다.

결론적으로,  무제한적인 수명 연장이 다음 몇 세대 안에 이루어진다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예상은 아직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주위에 과학자들도 그것은 불가능한 망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한마디로 “말도 않되!” 라고 일축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도 결코 아니다. 그러한 가정과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미래에 도래할 새로운 창조와 신의 약속에 대한 성경적 진술은 죽음과 갱신을 전제로 한다. 성경은 지상에서 급진적으로 연장된 수명을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성경은 긴 수명(장수)과 영생을 동일하게 보지 않는다. 긴 수명은 『구약성서』에서도 축복이지만, 그리스도인이 기대하는 더욱 큰 축복은 죽음 후 부활이다.

의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성취한 생명연장과 인간능력 확장이 축복으로 보여줄 수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으로 구원을 달성할 수는 없다. RLE는 건강과 웰빙과 마찬가지로 신이 현대과학을 통하여 인간에게 부여한 축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천 년의 수명을 가진 인간이 미래에 도래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구약성경』이 말하는 아직 그 마음을 구원받지 못한 인간(렘 31:31-34)이고, 『신약성경』이 언급하는 하늘의 성도는 아니다. 우리가 수천 년, 수만 년, 수억 년을 살 수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오랜 기간의 삶은 이기적인 탐욕과 사랑, 공포와 용기, 고통과 환희, 죄와 은총이라는 양가적 모순 속에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변화되지 않는 인간을 육체 또는 물리적으로 한없이 연장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종교가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양가성, 불합리성을 영속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인간 미래에 최종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SF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것처럼 사이코패스 과학자가 그러한 능력을 소유하였을 경우를 상상해보라! 그것은 신에 대적하고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마귀(사탄)의 출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영모 식 한국신학으로 말하자면, 참나를 찾고, 참삶과 참생명에 거할 수 있는 완전한 질적 변화가 없는 아직 죄인인 소아적 차원에서 기계에 의해 강제적으로 연장된 영원한 삶과 인간능력 확장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대부분의 종교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욕망으로 얼룩진 지금의 나를 참된 나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특히 그리스도교는 그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죽음을 택하여야 하며, 그래서 지금의 나(小我)는 죽고(無我),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나(大我)로 거듭나는 죽음 후 부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를 고백하며, 끊임없이 아직도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성을 극복하고자 ‘십자가 담금질’을 하며 죽음과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의 나를 죽음을 넘어 영속화하려는 어떤 노력보다도 중요하다(고전 2:2).

미주

(미주 29) Communion and Stewardship: Human Persons Created in the Image of God, The Vatican, 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ission,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cti_documents/re_con_cfaith_doc. 참조.

김흡영 대표(한국과학생명포럼)  heup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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