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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권력이 해체된 자리에 남아야 할 것검찰개혁과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촛불시민혁명을 바라보며
이정훈 | 승인 2019.09.30 18:02

지난 9월28일(토) 저녁6시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 행사 시작 전부터 수많은 인파가 운집했다. 행사가 마칠 즈음에는 정확한 참석 인원을 헤아린다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들어찼다. 행사 주최 측 추산 200만 명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200만 명의 운집, 무엇이 동력이었나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가 주최한 제7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문화제’였다. 매주 토요일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서 진행된 문화제가 벌써 7번째를 맞이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날 지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일명 촛불혁명 이후 최대 인파가 운집했다는 점을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보도했다.

검찰의 이른바 조국 법무장관 털기에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으로 이야기 한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검찰은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에 내정된 때부터 3달여 가까이를 조 장관의 5촌까지 샅샅이 털어내는 모습, 특히 11시간이 넘는 조 장관 집에 대한 압수 수색이 뇌관이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검찰의 작태를 자신들의 목줄이 위험하기 때문에 벌인 잔치로 해석한다.

▲ 지난 9월28일(토) 오후6시 서울중앙지검 앞은 검찰개혁과 사법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시민 200만 명으로 가득 채워졌다. ⓒ권이민수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은 분노했고 모여 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에 또 하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동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정확한 증거도 없이 검찰이 고 노 전 대통령에게 죄를 만들어 씌우고 언론에 퍼트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똑같아 자극했다는 것이다.

내면의 심리적인 작동 기제야 정확하게 분석해낼 수 없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명확했다. 검찰의 무소불위의 권력 남용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여주었던 사법농단의 척결이 전면에 내세워졌다. 깃발은 명확해진 것이다.

특권 체제 혹은 계층으로 대표되는 검찰 권력의 해체가 깃발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한발 전진이 그 모양새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권력으로 국가와 시민들을 억누르던 권력의 해체를 그 목전에 두고 있다.

서구 시민혁명이 우리에게 남겨 준 교훈

이러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보다 빨리 이루어냈던 서구사회에서 민주주의 발흥은 시민혁명의 덕분이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서구 역사는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민중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17-18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민주주의는 시민혁명이 일구어낸 성과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가 보편적 지지를 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서구 전통에서는 오히려 수천 년 동안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무지하고 질투심이 강한 군중들에게 정치권력을 맡김으로써 혼란과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서구 철학은 민주주의 적으로 평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공동선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일련의 시민혁명을 통해 정치 과정에 소수의 엘리트만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민주주의는 태동한 것이다. 근대 시민혁명은 통해 봉건제를 타파하는 저항을 통해 발생했다. 봉건제도 하에서 사람들은 신분적으로 속박 당했고 종교적으로 억압당했다.

시민혁명 이전 최상위의 소수 귀족과 성직자들이 거대한 특권을 향유하고 있었다. 시민혁명은 이런 소수 지배계층의 특권체제를 타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권력의 해체가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특권 타파에 대한 요구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도 아니었고 기득권 세력에 의해 저지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절대왕정체제라는 봉건적 정치체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민혁명은 절대군주의 자의적인 지배를 방지하고 봉건적 특권 체제를 타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중들의 피가 흘려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혁명을 통한 민주주의는 ‘인권’(human right) 개념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는 결과적으로 선거권 확대와 인민주권론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권력 해체에 따른 민주주의의 발전은 인권을 발견하는 사건으로 재탄생했다.

▲ 서구 시민혁명은 인권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Getty Image

미완의 한국사회 시민혁명

그간 한국 사회에서도 특권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길고 지루했던 싸움이 있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서구 사회의 시민혁명에 버금가는 체제 허물기 싸움이 한 두 번도 아니었지만 번번히 문턱에서 좌절 당한 역사가 남아 있다. 피를 흘려 얻은 시민혁명을 통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토대는 일부 정치가 혹은 정당이 차지했다는 뜻이다.

특히 1987년 민주화 투쟁은 얻어낸 직접 선거는 진보진영의 분열로 군사독재정권에게 권력을 내준 형세가 되었다. 시민혁명의 길로 들어서기 직전에서 무너진 것이다. 과정의 지리멸렬함은 존재했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인사들이 대통령에 취임함으로 인해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시민혁명에 걸맞는 체제변환은 이루어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즉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특권 계층 혹은 계급, 권력은 연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권 계층 권력의 해체에 방아쇠를 당긴 것은 2016년 겨울, 국정농단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운동이었다. 자발적으로 촛불을 든 한국 사회 시민들의 모습 속에서 특권 체제 타파라는 근대 시민혁명 테제가 그 밑바닥에 있었던 것이다.

배제 당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재발견하는 한국 시민혁명이 되기를

이제 2019년 가을 또 다시 시민혁명의 한 장을 열어가고 있다. 국민들 혹은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은 필요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에서의 특정 권력 체제의 해체, 즉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이제 무엇을 향해 가야 할까.

서구 시민혁명 역사가 보여준 것과 같이 한국사회 시민혁명의 결과는 인권의 발견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권 체제를 함락시킨 자리에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권 혹은 기본권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존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민혁명이 인권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그 시민혁명은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부르짖는 이번 촛불시민혁명이 인권의 재발견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시민혁명이 완성될 것으로 본다. 또 다시 시민혁명의 결과를 특정 정치가들과 정당의 이득으로 전락하고 인권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 시민혁명의 또 다른 실패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한국사회 시민혁명을 통한 인권의 재발견은 만 65세가 되었다고 활동보조서비스를 중지 당하고 그저 방안에 갖혀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장애인들과 고공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노동자와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옷을 벗어야 하는 노동자들과 쉴틈없이 청소하다가 죽어야 하는 노동자들과 죽음 앞에 직면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배제되고 투명인간으로 숨죽여 살아가야 하는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우리들 각자의 권리로 인식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2019년 가을 또 다시 시작된 한국 사회의 시민혁명이 인권의 발견으로 이어져 완성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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