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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을 멈추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자“우리사회 가족에 대한 판타지–정상가족” 2022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5월호 ⑷
이혜영 (미국장로교[PCUSA] 파송 선교동역자) | 승인 2022.06.29 01:35
▲ 1인 가구의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추세 가운데 4인 이상의 가족을 상정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수정되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새로 이사 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한 주민 분이 이미 타고 있던 나와 아들을 반갑게 바라보시며 “이사를 왔냐”, “어디서 왔냐” 등등의 질문을 이어 가신다.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새 이웃이기 때문에 나도 상냥하게 대답을 했다. “아이는 하나예요?”라고 물으신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은 시선을 우리 아이에게 돌리시면서 “엄마한테 얼른 동생 낳아달라고 말해”라고 이야기하신다. 마침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을 했고 그 분은 자신의 갈 길은 유유히 떠나셨다. 사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하나라고 이야기 했을 때 늘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질문은 “둘째 얼른 낳아야지. 하나는 외로워”라는 말이었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 가족의 범주를 말해 준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얼른 결혼해야지”, 결혼을 하고 나서는 “빨리 아이 가져야지”, 아이를 하나 낳고 나니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조차 “둘째를 가져야지”라는 말을 듣는다. 내가 둘째를 가지지 않는 혹은 갖지 못하는 이유는 관심조차 없다. 그냥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 가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으니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마구 질문을 던진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나와 남편은 각자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맞벌이 부부이다. 일로 인해서 저녁 모임을 참여하게 되었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아이는 어떻게 하고 나왔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당연히 아이는 남편이 돌보고 있거나 다른 돌봄의 형태를 통해 케어 받고 있다.

같은 상황에서 남편은 이러한 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질문은 대체적으로 여성인 나에게만 질문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경제적인 문제를 책임지고 여성은 아이들 돌본다는 오래된 사회적 통념이 일하는 여성인 나에게 여전히 이러한 질문을 다반사로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상 가족’의 이상화는 정치, 종교, 학술, 미디어, 정신 건강 및 사회 정책 등 전반적인 사회에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쳐왔고 그 영향력으로 인해 누군가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잣대에 맞지 않는 이들은 뭔가 문제가 있고 부족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존에 인식했던 ‘정상 가족’의 외형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으며 비정상가족으로 지칭되는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이 점점 더 많이 구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예로 지난해 통계청이 내놓은 장래가구 추계에 따르면 오는 2030년에는 전체의 33.2%(720만 가구), 2045년에는 363%(810만 가구)가 1인 가구이며, 이에 비해 우리가 ‘정상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4인 가구의 비중은 7.4%밖에 차지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이런 가구 형태의 급변은 미혼과 비혼, 이혼 가구의 증가 등 인구 및 사회 구조의 변화가 주원인으로 꼽힌다.(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1VMSVCKJ76)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은 다양한 형태 가족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담론으로 가져오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정해진 형태를 벗어난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다양한 차별의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질문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다반사로 받는 질문 속에서 사회적 통념이라는 잣대로 누군가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사라지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약성서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이 떠오른다.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었던 사마리아 여인이 사람들이 오지 않는 시간에 우물에 물을 길러 올 정도로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피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 문제 있는 여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여성이 왜 남편이 다섯이나 되었고 지금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닌 이유에 대해서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여자는 어디를 가서도 지탄을 받았을 것이고 어디에 가서도 자신을 해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 사마리아 여인이 사회적 통념을 깨고 그 당시 대화조차 금기시 되었던 유대 사람 예수께 당당하게 새로운 질문 던지고 대답을 얻어내며 결국은 본인의 처지를 이해해 주신 예수가 메시아임을 고백하게 된다.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 당당하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왜 너는 정상 가족의 범주의 들어가지 않니?’라는 종류의 오래된 질문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가 정말 질문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통념과 허구적인 ‘정상 가족’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질문 속에서 지금까지 사회적 통념과 허구로 인해 고통 받았던 이들의 삶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사람을 통념의 부산물이 아닌 온전한 한 존재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혜영 (미국장로교[PCUSA] 파송 선교동역자)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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