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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세상, 푸릉이라는 판타지“우리들의 블루스 - 이 시끄러운 세상에 푸릉이라는 판타지” 2022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6월호 ⑷
송진순(NCCK 신학위원) | 승인 2022.08.03 02:25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푸릉마을’ ⓒGetty Image

“여기 서울 아니라 제주.
옆집에 빤쓰 쪼가리가 몇 장인지, 숟가락, 젓가락이 몇 짝인지도 아는!”

부스스한 단발머리, 청바지에 목장갑을 끼고 거침없이 생선 대가리를 쳐내는 은희(이정은)의 말이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의 푸릉 마을에서 살아가는 억척스럽고 짠내 나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후텁지근한 폭염 한가운데서 6월 <사건과 신학>은 쏟아지는 사건들을 잠시 밀어내고 기꺼이 드라마를 선택했다. 매체마다 경쟁하듯 토악질해내는 보도 기사들의 가벼움을 견디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이 세상이 인간의 ‘–다움’을 주저 없이 포기하는 것을 대면하기 힘든 탓이 더 크리라 싶다. 배영미 선생님의 글처럼 우리는 지금 혼돈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정치든 경제든 끝없는 추락의 늪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되잡고 숨 고르기 위해 가끔은 해방구를 찾아가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모든 섬이 그렇듯 제주는 천혜 자연을 품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이다. 외지인에게는 심신의 안정은 물론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과 고독함을 넉넉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자 추억을 곱씹고 생채기 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풍광이 살아있는 곳이다. 하지만 섬은 그 자체로 고립되고 낙후된 곳이자 육지로부터 타자화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현지인에게 제주는 신비와 낭만은커녕 생계를 위해 바람과 바다, 그리고 얽고 설킨 인연들과 살 맞대고 씨름해야 하는 삶의 터전일 뿐이다. 서로 밥숟가락이 몇 갠 줄 알고, 코 찔찔거리던 부끄러운 얘기들이 언제 어디서 툭 터질지 모르는, 그래서 지긋지긋하게 탈출하고픈 숨 막히는 공간이지만, 그러하기에 모두가 내 삼촌이 되고 모든 일이 내 일이 되어 발 벗고 나서는 끈적함이 발효된 공간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제주 방언에 자막을 달아도 이상치 않을 만큼,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품은 언어와 공간의 서사는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든다. 도시가 주는 익명성의 편리함과 개인주의적 서사가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이라면, 제주의 괸당 문화는 다가서고 싶지만 선뜻 용기 낼 수 없는 낯선 판타지로 다가온다. (“우리가 남이가?” 이 한마디로 괸당이 무엇인지 아시겠으나, 친인척을 의미하는 괸당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제주의 끈끈한 지역 특색이기도,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하는 단단한 연줄 문화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대놓고 인생의 끝자락 혹은 절정, 시작에 서 있는 모든 삶을 응원한다고 말한다. 삶이 축복이 아닌 한없이 버거운 것임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것만으로 응원받아 마땅하고, 행복해야 마땅하다고, 그러니 모든 이들이여 제발 “행복하라”고 명령한다. 우리네 수사의 역설은 삶이 불행으로 치달을수록, 척박하고 고될수록 고고한 연꽃 한 송이 마음에 품으라 설득하지 않든가?

평생 남의 집 후처로 아들과 담쌓고 살다 말기 암 환자가 된 옥동(김혜자)과 그런 엄마에 대한 분노와 모난 성질머리로 똘똘 뭉친 만물상 동석(이병헌)의 마지막 여행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된 고등학생 영주와 현의 풋내, 짠내 가득한 임신과 출산 이야기에서, 남편과 세 아들 먼저 보내고 막내아들조차 중환자실에서 보내야 할 판인 춘희(고두심)의 박복한 인생 여정에서, 동생 뒷바라지하다 잊혀져도 비린내 옴팡 뒤집어쓰고 씩씩하게 사는 은희의 실패 투성이 로맨스에서, 애시 당초 피 끓는 사랑이나 세련된 위로, 그럴듯한 해피엔딩은 기대조차 하기 힘들다. 그저 애잔하고 억척스럽고 상처투성이인 인간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악다구니하며, 서로에 대한 애증과 미움을 벼리며, 숨 쉬고 있으니 그저 살아내라고, 살아내는 게 삶이라고 말한다. 생의 기쁨은 바로 그 척박하고 메마른 곳에서 비집고 나온다고 말이다.

눈물로 얼룩진 상투적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드라마 속 춘희와 옥동에게서 우리 아방과 어멍을 보고, 성마른 은희, 미란, 동석에게서, 경제적으로 파탄 나고 손가락질 받아도 가족이라는 느슨한 줄을 동아줄로 여기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인권과 호식 그리고 한수에게서 우리 자신의 파편들을 발견한다. “달 100개가 뜨는 곳에서 소원을 빌면 별이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했어.” 어린 은기의 외침에 마을 선장들이 폭우를 뚫고 오징어 배를 띄어 전등 달을 만들면 어느새 우리도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생사의 기로에 있는 춘희 아들을 살려달라고.’ … 동석이 어멍을 위해 한라산 설경을 영상에 담으며 “봄에 꽃피면 우리 다시 오자” 말끝을 흐리면, 우리도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진짜 다시 올 수 있을까?’ 되물으면서 …

하찮은 인생들이 기대어 엮어가는 삶에 우리가 가슴을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여성적 관점과 상투적 수사가 못내 미더워도, 메마른 삶에 가닿는 따뜻한 온기를 통해 자신과 화해하고 마침과 밀어내기만 했던 당신들을 받아들이고 용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릉 마을 사람들은 우리 안에 깊이 숨겨진 치유와 화해의 과정이, 서로에게 기대고 돌보는 여정이 생의 행복이노라 말을 건넨다. 이 시대 종교가, 교회가 전하지 못하는 언어와 감정들이다. 사실 예수가 그리 사람들을 부둥켜안고 악다구니쓰며 한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내가 너희를 죽도록 사랑하니 너희도 제발 사랑하라고, 어디서든 행복하라고.(요 13:34)

난 그제서야 알았다.
난 평생 어머니 이 사람을 미워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었다는 걸
난 내 어머니를 오래 안고 지금처럼 실컷 울고 싶었다는 걸 …

우리들의 블루스를 핑계 삼아 실컷 울어도 된다고, 그렇게 정화되면 인간의 ‘–다움’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송진순(NCCK 신학위원)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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