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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 촛불을 끄지 않는 사람들영등포산업선교회 기독청년 노동훈련 최종 보고서 (1)
김주현 | 승인 2023.06.16 03:45
▲ 장로회신학대교에 재학 중인 김주현 청년 ⓒ임석규
이 글은 지난 5월 1일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주최한 ‘기독청년 노동훈련 수료 감사예배와 보고대회’에서 노동훈련 과정을 수료한 세 분의 청년들이 제출한 최종 보고서이다. 이 글을 에큐메니안에 게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영등포산업선교회와 송기훈 목사님, 그리고 세 분의 청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편집자 주

2022년 12월에서 2023년 2월까지의 노동훈련을 진행하였다. 비록 내가 머물렀던 곳 들에서 오래 일하지 못해 비교적 짧은 총평이 되겠지만, 작은 나의 경험이 어딘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글을 적어 내려가 본다.

느슨한 연대, 꺼지지 않은 촛불

J제과점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이 제과점을 운영하시는 남자 사장님은 꽤나 성격이 독특하셨다. 평소에는 살갑게 잘 대해주시다가도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게 행동하셔서 일하는 동안 불만이 가장 많은 부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일하고 있던 어느 날 사장님이 매장에 안 계셔서 같이 일하는 직원 언니랑 알바 하는 친구와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여러 주제들 중 남자 사장님에 관한 이야기 주제가 나왔는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서로 불꽃같이 반응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직원 언니가 매장에 놓고 점심시간에 먹는 김치의 양이 확 줄어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있었다 보니 남자 사장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그 순간 멋쩍게 웃으면서 ‘헤헤 알았어요? 미안해요. 조금 먹었어요.’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라면을 끓여 드시고는 치우지 않고 퇴근하셔서 직원 언니가 출근하고 나서 라면 그릇과 냄비를 몇 번을 치웠다고 한다.

이외에도 초과근무 수당 없이 추가 근무를 의무적으로 시키거나, 사람 자존감을 깎는 어투와 말을 하는 등, 제과점의 수익을 위한 실제적인 업무의 스트레스보다 사람을 대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컸다. 이렇게 동일한 부분에 불만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자기 생각을 나누 고 나니 왠지 모를 끈끈함과 연대의식이 생겼다. 한 번도 밖에서 따로 만난 적 없는 일자리에서의 연대였지만 같은 일을 하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의 거리를 확 좁힐 수 있는 부분임을 발견했다.

반죽을 만드는 작업처럼 힘든 작업은 자원해서 도와주기도 하고 일을 할 때도 기본적인 신뢰와 지지로 함께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업할 때에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분위기와 마음이 편안해졌으며 작업 속도나 결과물의 질도 좋아졌음을 느꼈다. 이러한 연대가 남자 사장님 이야기를 하다가 생긴 것이라는 게 웃프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s사 물류센터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주요 업무는 가로 14, 세로 14, 높이 3cm, 무게 1kg 정도의 정육각형 모양의 제품을 뽁뽁이 봉투에 넣는 것이었다. 이 업무는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오래 서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다만 약 12명이 일하는 이 곳에서 다른 업무를 받은 이가 딱 한 명 있었는데, 이 제품이 쌓여있는 택배박스에서 계속해서 꺼내어 작업대 위에 올려야 하는 것이었다. 이 23살의 친구는 허리까지 오는 작업대 위로 바닥에 있는 택배박스에서 물건을 꺼내 올리다 보니,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도 사는 곳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얼굴과 나이만 아는 관계 속에서도 연대는 이루어짐을 발견했다. 또한 내가 먼저 손 내밀 때, 그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있음도 보았다.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어딘가에 갔을 때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필자는 사실 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나와의 공통점이 없으면, 나에게 유익이나 해가 없으면 괜찮은 소위 말해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 사고가 사회에 만연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현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이 만 2세 유아적인 사고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유아의 사고는 확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 중심에서 사고를 뻗어 나간다. ‘나’라는 가장 가까운 존재에서, 나를 키우는 양육자에게로, 이후 너, 우리로 확장되어 가게 되는데 ‘어쩌면 이 세상 사람들은 유아 만 2세만도 못한 행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의 범위가 ‘우리’ 에서 ‘나’로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내 일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기주의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간직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감사히 받고 돌려줄 줄 아는 촛불을 끄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후회와 나아감

S사 공장에서 일했을 때를 이따금 돌아볼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먼저 손 내밀었던 나의 행동과 마음에 대하여 스스로 칭찬했으며 고통을 나눠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총평을 쓰며 돌아보니,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작업하는 곳에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내가 쉽사리 “저랑 교대해서 일해요.” 할 수 있었을까. 나도 내게 그랬던 다른 사람들처럼 손 내밀지 못하고 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보면 한 개인에게만 무리될 수 있는 업무를 시킨 것임에도 나는 ‘부당하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주어진 틀과 업무 안에서 함께 살아남는 방법을 간구했을 뿐이었다. 관리하는 직원에게 한 번이라도 말을 해봤다면, 일시적으로 나와 23살의 친구의 일이 덜 힘들뿐 아니라 시스템적인 변화를 통해 이후의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부당함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마치 공장의 부품처럼 일해야 한다는 압박과 물밀듯 밀려오는 작업속도 때문에 생각하기를 그치고 말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이런 후회 속에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내가 어딘가에 취직하게 되었을 때 이런 일들을 보고 침묵하거나 합리화, 당연시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노동자들에게 더 귀와 눈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직위 구조상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며 반복적인 일을 하다 보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고 문제의식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다.

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들에 크게 생각하지 않다 보니, 일하는 구조나 ‘나’에 대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들에게 더 귀 기울이고 눈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부당함을 알려주고, 개선해 나가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겠다. 함께 고통을 감당하며 실질적으로, 구조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더 노동자의 시선으로, 노동자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나아갈 것이다.

이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촛불을 끄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사회로 나아갔을 때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며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지만, 작더라도 빛이 되는 사람들, ‘나도 당신과 함께 여기 있어요. 우리 힘 냅시다.’ 할 수 있는 사람들. 이런 연대가 계속 되어 촛불 같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모일 때,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을 것이다. 어두움이 아닌 빛이 당연한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사실 위에서 현시대 사람들이 유아적인 사고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삶이 너무 가빠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나는 아직 노동과 세상에 대해서 많이 모르고 부족하지만, 노동훈련을 하기 전과 후는 다르다고 확신한다.

이제는 노동자의 삶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의 노동이 값싸게 취급받지 않도록, 삶의 무게 때문에 따뜻한 인간의 감정을 잃어가지 않도록 날 살리신 예수의 사랑으로 더 사랑하고 그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겠노라 굳게 다짐하며 짧고 부족한 글을 마무리한다.

김주현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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