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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출연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영등포산업선교회 기독청년 노동훈련 최종 보고서 (2)
류제민 | 승인 2023.06.23 01:17
▲ 류제민 청년 ⓒ임석규
이 글은 지난 5월 1일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주최한 ‘기독청년 노동훈련 수료 감사예배와 보고대회’에서 노동훈련 과정을 수료한 세 분의 청년들이 제출한 최종 보고서이다. 이 글을 에큐메니안에 게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영등포산업선교회와 송기훈 목사님, 그리고 세 분의 청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특히 이번 류제민 청년의 글은 분량상 두 번에 나누어 게재하게 되었음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 편집자 주

2022년 군종병으로 군복무를 하며 목사님과 함께 주중에 공부하기로 했다. 어떤 분야를 함께 공부할지 고민이 됬지만, 목사님은 그런 나에게 ‘노동’을 추천해 주셨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고, 이전에 대학 생활을 하며 교내 청소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을 했던 나는 자신있게 노동을 공부하자고 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노동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스로 노동자과 사회적 약자에 관해 관심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졌다. 언제나 이들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꿔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실상 이들을 내 인생에서 제대로 만난 적이 없던 것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찾다

그런 나에게 목사님은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추천해 주셨다. 이곳을 찾아가면 노동에 관한 더 깊은 사색과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전역 후 나는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찾아갔고, 이곳에서 진행하는 현장심방 26기로 참여하게 되었다.

현장심방을 참여하며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21세기 노동 현실이 50년 전 쓰여진 글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원청과 하청으로 나뉘어 더 복잡한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은 착취 당하고 있었다.

이 순간 책에서 보았던 조지송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노동자들이 허리가 아픈가, 얼마만큼 졸린가, 인격적으로 얼마만큼 수모를 당하는가 그런 것을 다 겪어보고, 그러고서 노동자를 쳐다보아야 한다. 그냥 단순히 노동자를 도와주고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지 깨달아야 진정 약자들과 연대하고 노동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말은 나에게 큰 동기를 주었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던 지난 날들을 반성하며 이들이 과연 어떠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지 경험하고자 영등포산업선교회에 노동훈련 참가 의사를 밝히게 되었다.

노동훈련 22년 11월 말부터 23년 2월 말까지 약 3개월 간 진행하기로 했다. 일생에 노동에 관한 경험이 많지 않은 나에게 일자리를 구하는 것부터 새로운 도전이었다. 많은 고민과 구직 끝에 방송노동(보조출연)과 물류센터 노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모두 일용직 노동자이지만, 방송노동은 비정기적인 노동, 물류센터는 정기적인 노동이었다.

보조출연 노동자의 삶

⑴ 비정기적인 일에서 오는 불안

보조 출연 노동자는 일용직 노동자이다.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월급을 받는 형태로 일을 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일을 배정받고, 다른 환경에서 일한다. 노동훈련을 하며 보조출연 노동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에서 은퇴 후 본업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 20대 취업에 실패하여 보조출연 노동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 등 각자 다양한 이유로 카메라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보조 출연 노동은 절대 정기적으로 일할 수 없다. 일을 배정받지 못하는 날이 굉장히 많으며, 일을 배정 받아도 취소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일을 배정받는 것에 굉장한 불안을 느낀다. 노동훈련을 하는 본인도 일을 배정받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경험했는데, 이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훨씬 큰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당일 촬영이 밤에 끝날지 새벽에 끝날지는 현장에 가봐야 알 수 있다. 이는 다음 날 새벽에 출근하는 일을 쉽게 잡지 못하게 만든다. 촬영 예상 시간만 사전에 공지해도 일을 잡고 구성하는 데 훨씬 편리하겠지만, 이를 해주지 않는다.

⑵ 시간적 제약

보조출연 노동자들은 시간적인 제약을 많이 받는다. 당일 촬영에 제공되는 정보는 준비 의상과 출근 시간뿐이다(촬영지도 알려주지 않으며, 보통 거리가 먼 경우에만 사전에 공지한다). 퇴근 시간을 알 수 없다. 물론 촬영 특성상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촬영이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현장에 가보면 보조출연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모두 당일 촬영 일정표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촬영 변수가 있어도 당일 예상 종료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보조출연 노동을 하며 한번도 퇴근 시간을 사전에 공지받은 적이 없으며, 이로 인해 당일 개인 스케줄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종료 시간을 물어보지 말라는 공지를 자주한다).

문제는 당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 스케줄을 잡는 것도 힘들다. 보조출연 일은 1-3일 전에 픽스되기 때문에 다른 약속을 사전에 잡기가 어렵다. 노동훈련을 하며 자연스럽게 주변 지인들을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으며, 주중과 주말의 경계선이 허물어져 갔다.

물론, 특정 날에 개인 일정을 잡고 일을 배정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일하기 힘든 보조출연 노동 특성상 이는 쉽지 않는 결정이다. 왜냐하면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보조출연 노동 시간은 매일매일이 다르다. 새벽에 출근하는 경우도 많지만, 밤 늦게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퇴근 시간도 재각각이다. 이로 인해 보조출연 노동자는 일정한 삶의 패턴이 존재할 수 없다. 매일 다른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밥을 먹는다. 이러한 삶으로 피폐해지는 경험을 하였다. 내가 아니라, 온전히 일을 위해 나의 삶을 맞추고 리듬을 맞추며 점점 나는 사라지고, 일을 위해 살아가며 몸과 마음이 온전하지 않았다.

⑶ 길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보조출연 노동자들은 촬영과 대기를 반복하며 현장에서 일한다. 그러나 보조출연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촬영마다 다르지만, 실내 촬영인 경우 실내에서 자연스럽게 대기하며 촬영한다. 그러나 보조출연 노동자들은 주로 실외 촬영이 많다. 행인과 군중과 같은 역할을 주로 맡기 때문이다. 실내와 다르게 실외에는 보조출연 노동자들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길거리에서 서성이는 것이다. 길에서 촬영과 대기를 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문제는 의상이다. 보조출연 노동은 다양한 의상을 입는다. 본인은 겨울에 보조출연 일을 했는데 여름씬과 가을씬을 자주 촬영했다. 대기 시간에 패딩을 입게 해주는 촬영지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상당수였다. 추운 겨울에 얇은 옷을 입고 야외에서 수 시간 촬영과 대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반대로 여름에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야외에서 오랜 시간 촬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보조출연 노동자들은 야외에서 추위와 더위를 견뎌야 한다. 경험상 날씨는 적응되지 않는다. 항상 춥고, 매일 춥다. 손 끝과 발 끝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으며, 촬영 종료만을 고대하며 추위를 견뎠던 적이 많다.

이에 반해 제작진들은 항상 날씨에 맞는 의상과 방한 장치를 본인들 주변에 설치해 두고 있으며, 배우들은 각별한 케어를 받는다. 옆에서 추위와 더위에 지쳐가고 아파하는 보조 출연 노동자들과는 대비된다.

⑷ 향상된 인권, 그러나 항상을

보조 출연자들이 촬영 현장에서 잦은 폭언과 인격적인 무시를 당한다는 기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보조출연 노동조합이 생기고 촬영 현장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인격적인 무시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가장 볼품 없는 존재다.

보조 출연 노동자들에게 반말은 기본이다. 본인은 ‘야, 너, 거기’라고 주로 불렸으며, 마치 도구가 된 듯한 대우를 받았다. 심지어 욕설과 폭언을 일삼는 반장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큰 소리로 욕설하며 지시하는 반장들이지만, 제작진에게는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

제작진도 마찬가지이다. 보조 출연 노동자에게 인격 모독적인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고, 자신의 지위로 보조출연자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도 목격했다. 인권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실상 겉으로 조금 개선 되었을 뿐, 촬영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보조 출연 노동자들을 무시한다.

⑸ 드라마와 영화 속 사람들, 그리고 카메라 뒤 사람들

드라마와 영화를 볼 때 우리의 시선은 항상 화면의 가운데다. 핵심 인물, 주요 사건, 편집 등 모두 화면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조출연 노동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볼 때, 나의 시선이 구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화면의 구석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행인으로서, 군중으로서의 역할로 화면에 등장하고 있었다.

또한, 영상을 볼 때, 우리는 다각도에서 촬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둘이 대화하는 장면을 촬영해도 A인물 샷, B인물 샷, A·B 동시샷, A·B 동시 롱샷(멀리서) 등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는 인물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을 본래 아무 생각없이 넘겼지만, 보조출연 이후 이러한 다각도가 등장할 때마다 ‘정말 오랫동안 찍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각도를 한 번 바꿀 때마다, 모든 스태프, 장비, 조명, 카메라, 레일 등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보조출연 노동을 하며, 일용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방송 노동자들의 삶 또한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이들은 너무나도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어 있다. 보조출연 노동을 하며 매일 노동한 시간은 상이하지만,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한 적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방송 노동자(스태프)들은 대부분 보조출연 노동자보다 당일 노동 시간이 길다. 장시간의 보조출연 노동 끝에 퇴근하면 정말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스태프들은 항상 우리보다 먼저 혹은 늦게까지 촬영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현장심방 26기로 참여하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방송 노동자들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촬영 현장에서는 여전히 방송 노동자들은 법으로 규정된 근로 시간을 어겨가며 장시간 노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 누가 언제 어디서 과로로 쓰러질지 그 누구하나 걱정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류제민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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