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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모두가 난민일지 모른다퀴어, 노숙인, 난민과 함께 디아코니아 5년
김상기 목사(YD케밥하우스) | 승인 2023.06.26 01:36
▲ 사회 주류에서 밀려나 주변부로 내몰린 민중, 퀴어, 난민은 모두 난민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일지도 모른다. ⓒGetty Images

한국 디아코니아는 2018년 예멘 난민들과 만나면서 비로소 그 잠재력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디아코니아 대학의 설립 취지가 이를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연규홍 교수의 총장 취임에 반대하는 학생들 편에 서서 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건이 있었다. 이 역시 약자 편에서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는 디아코니아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약자는 단순한 약자가 아니라 대개 불의의 희생자이거나 불의 때문에 고통당하는 자들이다. 약자 위에 덧씌워 있는 불의의 그림자를 외면한 디아코니아는 없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거나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 한신 학내 사태는 한국 디아코니아에게는 참으로 뼈아픈 경험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학생들 편에 선 것이 올바른 신학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이 난민 사역의 밑거름이 되었다. 2018년 4월 제주도에 예멘 난민 560여명이 도착한 것을 계기로 난민 혐오와 적대 아니면 무관심이 상당수 개신교를 휩쓸고 있을 때 난민 환대에 나선 소수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한국 디아코니아도 있었다. 이때부터 한국 디아코니아의 활동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난민지원이 기독교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후원으로 가능해졌고, 한국 디아코니아는 그들의 후원을 100%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후원에 응답하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후원자들의 힘으로 디아코니아가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바로 그 점에서 디아코니아의 잠재력이 확인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힘에 의해 작동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이 잠재력의 근원도 사용자도 하나님이다.

난민 사역은 그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일자리 하나는 작지만, 그 일터인 YD케밥하우스는 난민에게 언제든 찾아올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것이 되고자 했다. 난민들이 각자 자리를 잡은 지금까지 YD케밥하우스와 쉼터는 그들에게 문턱이 없다.

하지만 그들 속에 이들은 왜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남겼다. 그 물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를 이해하고 예수를 아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디아코니아에서 자기 나라가 도달해야 새로운 미래의 단서를 발견한다. 그들이 개종하지 않는다 해도 복음의 씨앗은 그들을 통해 뿌려질 것이다.

코로나 19사태는 한국디아코니아에 난민들과 노숙인들을 만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고 그들에 대한 지원이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약자들의 고통과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토록 하는 것이 디아코니아적 영성이다. 난민들과의 만남은 노숙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케 했다.

국내 난민으로서의 노숙인이다. 이들의 상황은 해외난민보다 훨씬 심각하다. 가장 큰 차이는 일할 의지도 기회도 상실당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작지만 그렇다고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20명 정도의 노숙인들이 수원역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숙인 사역의 문도 뜻밖의 곳에서 열렸다. 3년전 이준모 목사님(기장)과 강충일 목사님(통합)의 주선으로 사랑의 공동모금에서 두달 정도 쓸 수 있는 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후원자들을 모으고  준비시키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후 지금까지 모든 것은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노숙인과 난민의 만남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가져왔다. 도움을 받기만 하던 난민들이 자신들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높아진 자존감을 가질 수 있었고, 노숙인들은 외국 난민들에게서 삶에 대한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난민들이 참여할 수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그렇지만 난민들이 그 경험을 다른 곳에서도 계속할 수 있고, 노숙인들이 자원봉사들에게서 동일한 자극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난민과 노숙인의 만남은 교회가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난민과 노숙인 발생원인에 대한 통찰과 그들의 고통스런 현재에 대한 행동이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발생 원인과 관련해서 전쟁 반대와 복지 확대 및 인간적 경제를 외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도 외쳐야 된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되고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도움의 최종목표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퀴어 문제도 접근해왔다. 그들은 다수의 사람들과 달라도 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형상이다. 퀴어와 동성애적 성폭력은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퀴어는 선택이 아니다. 주어진 것이기에 주어진 대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홍준표 따위의 짓거리를 비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교회 안에 홍준표 같은 이들이 있어서 유감이다. 사람을 죄인이 아니라 사람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디아코니아가 누차 강조하는 것이다. 바리새파적 시선을 거둬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디아코니아아는 그들 편에 서왔고 그들과 함께 하는 임보라 목사님을 지지해왔다.

하나님의 정의는 약자들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는 것에 달려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을 알고 그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 반하는 것이다(이사 1장).
디아코니아는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져야 할 곳에 있다. 거기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곳이다.

난민과 노숙인 그리고 퀴어를 또 학생들을 지지하며 보내온 5년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던 시간이다. 기장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리는 것은 지금은 낡은 것으로 취급받지만 기장의 신학이 민중신학이었다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디아코니아를 통해 새로워지고 디아코니아는 민중신학을 통해 그 자리와 목표를 더 분명하게 할 것이다.

김상기 목사(YD케밥하우스)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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