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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의 한복판으로영등포산업선교회 기독청년 노동훈련 최종 보고서 (4)
이창기 | 승인 2023.07.21 15:17
▲ 이창기 청년 ⓒ임석규

소외. 그것은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에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가시화한 개념이다. 책과 글자를 통해 접한 소외는 다소 추상적이었다. 노동자가 겪는 이질적인 괴리감 같은 것이라며 상상해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노동자로 지내며 몸소 겪은 소외는 머릿속에 그려본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생생하고 강렬했다. 그것는 존재를 지우고 생명을 부품과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강력한 흑마법이었다. 그 속에서 주체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존재는 탈출 구만을 바라보게 된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소외가 개인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수 많은 존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은 손에 있다: 한우공장 단기 아르바이트

“그렇게 썰면 안 돼. 손에 힘을 빼고 칼날로 썰어야지.”

생산팀 직원들은 칼질이 서툰 아르바이트생들을 나무라기에 바빴다. 공장 동 료들보다 1주일 정도 늦게 일을 시작한 나는 고기 손질에 필요한 어떠한 사전 정보도 얻지 못한 채 도마로 밀려오는 고깃덩어리를 투박하게 썰었다. 직원들은 내 뒤를 지 나가다가 고기와 씨름하는 나를 보고는 뒤늦게 잔소리와 함께 손질법을 알려줬다. 그렇게 채끝등심, 꽃등심, 살치등심, 참갈비, 본갈비 등 각종 부위 손질법을 꾸역꾸역 알게 됐다.

집 근처에 위치한 한우공장은 설명절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30여 명의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을 뽑고 한 달간 도마 앞에 세운 채 하루종일 질긴 고기를 썰게 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었으며 소수의 30대 남성들과 중년 여성들도 있었다. 이주민 여성 노동자도 한 명 있었다.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 였으며 점심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전에 10분, 오후에 2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온종일 낮은 도마 앞에서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밀려오는 고기를 썰어내느라 발바닥, 손가락 관절, 허리에 통증이 밀려왔다. 몸은 고통스러웠고 반복되는 동작 때 문에 시간은 더디 흘렀다. 도마 위로 쉴 새 없이 들이 닥치는 고기 때문에 칼날은 무 뎌질 대로 무뎌져서 생산 속도는 점점 더 느려졌다. 신체적 고통과 지루함 속에 갇힌 나를 위로해줬던 것은 직원들 몰래 한쪽 귀에 꽂아 두었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강의였다.

“기억이 어디 있죠? 주로 머리나 가슴에 있다고들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손과 발 에도 있지 않나요? 요리하는 어머니들을 떠올려보세요. 레시피(recipe)를 따로 적어놓지 않잖아요.”

남산강학원에서 동양고전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의 인문학 강의를 듣다가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기억은 정신과 관련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감각기관에도 기억이 있다는 고미숙 선생의 말씀은 한 알의 씨앗이 되어 내 마음 밭에 심겨졌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내 육신에서 살아 숨 쉬는 체험을 한 것은 공장에서 근무 일수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녁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된장찌개를 끓여 먹기 위해 대파를 써는데 내 의식과는 상관없이 손 이 알아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대파를 썰고 있었다. 칼을 잡으면 자동반사적으로 힘 을 빼는 내 손을 보며 그만큼 일이 손에 익었구나 싶은 뿌듯함과 내가 공장의 부품이 되었구나 싶은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리 손에 힘을 빼고 고기를 손질한다 해도 하루 종일 손에서 칼을 놓지 않는다면 손에는 상당한 무리가 간다. 칼날을 고정시키기 위해 칼등에 얹었던 오른손 검지손가락은 왼손 검지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부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른 손 약지 손가락이 마치 녹슨 로봇의 팔처럼 부드럽게 접었다 펴지질 않았다. 뻣뻣한 약지 손가락은 노동의 고됨과 노동자들의 고통을 상기시켰다. 공장 알바가 끝나고 손 가락의 뻣뻣함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하면서 한우 공장에서 근무하며 느꼈던 고통도 함께 무뎌졌다.

공장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삶의 주체성을 빼앗긴듯한 기분이었다. 공장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주경야독이 목표였으나 그것은 내가 공장 노동자의 삶에 대해 얼마나 관조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 퇴근 후에는 체력이 소진되어 몸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며 스스로를 침대에 묶어놨다. 미래를 위해 공부하거나 시간을 할애할 여력이 없었다. ‘몸’과 ‘머리’를 쓰는 일을 이분화해서 ‘몸 쓰는 일’에 대한 경멸이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사 회에서 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없는지 온몸으로 느꼈다.

내 시간이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장에서는 직원들의 지시 에 따라 움직여야만 했다. 그들이 일하라는 곳에서 휴식시간 전까지 일해야 했다. 설명절이 시작되는 주간에는 주문이 폭주해서 야근이 반복됐다. 계약서에는 분명 6시 퇴근이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그 이후 잔업과 야근은 선택사항이었으나 이 주간에 직원들은 6시가 되도 정시 퇴근해야 될 사람들을 위해 잠시 작업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동료 아르바이트생들의 눈치를 보며 직접 직원에게 퇴근해야 된다고 말을 해야 겨우 보내줬다.

자기 시멘트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일용직 건설현장 잡부

한우공장에서 단기 알바를 마치고 건설현장 일용직 잡부로 일하기로 결정했다. 인력소 직원에게 내일 일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기 전에 늘 두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사실 작년 여름에도 같은 인력소를 통해 각종 건설현장과 소형 물류 창고에서 일을 했지만 어떤 현장에 배치돼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왜 그리도 익숙해지지 않는지. 그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는 것은 매번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인력소는 주로 집 근처에 위치한 주상복합 건설현장에 나를 배치시켰다. 대부분의 건설현장들은 주로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추위를 이겨낼 수 있으면서도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편한 복장이어야 했다. 건설현장 잡부로 일할 때 필요한 각종 준비물을 챙기고 6시 10분까지 현장 인근에 위치한 한식뷔페로 향했다. ‘함바’라고도 불리는 한식뷔페에서의 아침 식사는 고된 노동을 감당할 현장 인부들에게 필수 요소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장으로 갔다. 두려움을 뚫고 도착한 현장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웠다. 잘 알려진 대형 건설사인 T사에서 짓는 건물이었다. 그 바로 옆에는 다른 유명 건설사 H사에서 짓는 주상복합 건물이 있었다.

인부들은 주로 50-60대 남성들이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대형 쇼핑몰 청소노동자, 설비공, 조폭 출신 인부, 부도난 사업가, 은퇴 후 할 일이 없어서 일하러 나온 노인, 여행 가기 위해 돈 모으는 청년도 있었다. 내가 주로 일했던 T사 현장은 완공 단계에 들어섰다.

T사 직원인 작업반장은 인부들에게는 청소업무를 배정했다. 2-3인이 한 조로 편성됐고 각 조는 층별로 흩어져서 바닥에 흩뿌린 시멘트 가루를 쓸어서 포대에 담고, 건설 자재들을 정리하고 옮겼다. 시멘트 가루와 각종 먼지가 휘날려서 퇴근할 때가 되면 항상 마스크가 검게 변해 있었다. 한우공장 보다 강했던 노동 강도와 시멘트 먼지를 들이켜서 그런지 건설현장에서 첫 근무를 마 치 며칠을 앓아누웠다.

건설현장에서 근무한 기간 중 가장 힘든 일을 손꼽으라 하면 시멘트를 옮기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요즘에는 주로 지게차나 레미콘에 대형 튜브를 연결하지만 가 끔 인부들에게 시멘트를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한다. 하루는 T사가 아닌 바로 옆 H사 건설현장에 배치된 적이 있다. 건물 외관을 올리기 위해 시멘트 작업이 한창 이던 H사 주상복합은 인부들로 하여금 시멘트를 옮기도록 했다. 인부들은 40kg 정도 되는 시멘트를 등에 지고 1층에서 출발해 3~6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이번 겨울에 내가 했던 일 중에 노동 강도가 가장 강했던 일이었다.

일이 반복될수록 허리와 무릎에 통증이 부과됐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1층에 쌓여 있는 시멘트가 없어지고 바닥이 보 일 때까지 끝날 수 없는 일이었다. T사에서도 건물 청소를 하면서 늘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빗자루질을 해서 늘 허리 통증이 따라다녔는데 시멘트를 옮긴 날에는 허리 통 증이 배가됐다. 시멘트를 옮기고 다음 날 다시 앓아 누웠다.

한우공장을 다니는 동안 몇 년 만에 연락이 닿은 대학 친구가 있었다. 친구에게 요즘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니 노동의 숭고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겠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노동의 숭고함.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된 육체노동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노동은 숭고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고난의 십자가와 같은 것일 수 있다.

노동은 노동이 아닌 노역이 된다. 시멘트를 지고 계단을 오를 때 문득 예수가 떠올랐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생각할 겨를이나 있었을까. 오죽하면 시몬이 그를 대신해 십자가를 졌을까. 시몬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창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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