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칼럼
“밟았기에 밝아졌을지도”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소리』를 읽고
정리연 | 승인 2023.07.22 01:25
▲ 『<침묵>의 소리』 ⓒ정리연
“신부는 발을 들었다. 발이 저린 듯한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
- 엔도 슈사쿠, 《침묵》, 267쪽.

​신앙의 고민을 통해 들려온 침묵 속 목소리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작가로서, 엔도는 평생에 걸쳐서 이러한 시도(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서구의 기독교 신앙을 아시아 사람인 자신의 몸에 맞는 신앙으로 만들어 가는)를 참으로 성실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수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태어난 작품이 다름 아닌 《침묵》입니다. 《침묵》에서 엔도가 형상화시켰던 기독교 신앙은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감싸 안아주시는 것처럼 약한 인간을 무한히 끌어 안아주시는 신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기에 무자비한 방법으로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를 받았던 사람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앙을 버렸노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조차 버리지 않고 끌어안으시는 신,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신을 엔도는 《침묵》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 『<침묵>의 소리』, ‘역자 서문 및 해설’ 중에서

『<침묵>의 소리』는 1992년, 엔도 슈사쿠(이하, 엔도)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 일본에서 출판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 현지에서 엔도를 깊이 연구한 김승철 교수가 번역해서 2016년 10월 동연출판사에서 내놓았다. 《침묵》을 집필하기까지의 경위와 배경, 출판 후 독자들과 비평가들이 보였던 반응에 대해서 작가 자신의 소회를 기록한 책이다. 그의 종교적인 배경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인생과 고뇌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엔도의 삶 전체가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고 할까.

엔도는 토종 일본인이면서 서양에서 전해져 온 가톨릭(기독교)을 받아들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어릴적부터의 기독교는 자신이 믿지도 않은 세계에 자신의 몸이 내던져진 사람이 겪는 이문화 체험”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서구에서 들어온 기독교가 아시아에서 태어나 자란 네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고 급기야 “신앙을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해주시던 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신앙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건 곧 어머니를 버린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1966년 《침묵》이 발표된 후, 사제들을 포함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많은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거의 금서로 여기면서, 이 책을 읽지 말라고 미사 중에 얘기한 신부들은 물론, 절교하게 된 친구도 있다고. 주인공이 교회에서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배교자’였다는 것, 전능한 신이 침묵만 하고 있는 무능한 신으로 그려졌다는 게 이유였을까? 혹시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지만 인정하기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약 30년 가까이 지난 시기에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언급한 책이 『<침묵>의 소리』이다.

이 소설이 나오고 나서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이 고얀 놈 같으니라고” 하는 편지도 꽤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부님이나 훌륭한 신자들이 보낸 것인데, “괘씸하다. 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제가 후미에를 밟는 이야기를 쓴 거냐. 세상에 해독을 끼치는 게 아니더나”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 엔도 슈사쿠,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16쪽.

고문을 겪으면서 처절한 영혼의 싸움을 했던 자들

▲ 엔도에 관한 해설서 중에 김승철 교수의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는 전체 엔도 문학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는 엔도의 육성으로 엔도 문학에 대해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정리연

역자는 엔도가 《침묵》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은 ‘신은 침묵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말씀하고 계신다’라는 것이었는데 많은 독자가 ‘신은 침묵하고 있다’라고 오해한 배경에서 이 책이 쓰여졌다고 한다. 또한 이를 이해하기에 아주 중요한 내용이 《침묵》 말미에 실려있는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이하, 관리인의 일기)’인데 일본 독자들은 이를 소홀히 여겨 그냥 지나쳐 버렸고(글씨가 본문보다 작았고, 당시의 문체를 살리다 보니 일반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문서 스타일이어서 부록쯤으로 여겼다), 우리나라의 모든 번역본에는 아예 실려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역자의 번역으로 『<침묵>의 소리』에서 이를 만나볼 수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문과 폭력에 의해서 기독교 신앙을 버리겠노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평생에 걸쳐서 내면적으로 신앙을 지니고 있었으며, 더욱이 비밀리에 그 신앙을 후대에 전해갔다(가쿠레 기리시단)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제페 키아라’(<침묵>에서 로드리고 신부의 실제 모델)는 배교한 이후에도 수용소 안에서 비밀리에 신앙을 견지하고 다른 이들에게 포교행위를 계속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간교하고 비굴했던, 여러 번 후미에를 밟고 로드리고 신부를 밀고했던 기치지로도 기리시단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앙을 발각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예전과는 달리 로드리고를 보호했던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관리인의 일기’는 경멸당했던 배교자들의 회복된 기독교 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인 셈이다.

그러니까 엔도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 신의 침묵이 아니라 ‘신은 말씀하고 계신다’였다. 곧, ‘신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사람들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침묵》에서 듣지 못했던(침묵했던) 신의 소리를 『<침묵>의 소리에서 들을 수 있기를.

신은 사람들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 “가령 그분이 침묵하고 계셨다고 하더라도, 나의 지금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로드리고의 말, <침묵> 마지막 문장)”. 그렇다면 배교한 후의 로드리고의 삶도, 로드리고를 배반하고 기독교 신앙을 몇 차례나 버린 기치지로의 인생도, 그들의 ‘지금까지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배교 이후의 로드리고와 기치지로의 삶을 기록한 ‘관리인의 일기’를 강조한 엔도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 김승철,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23쪽.

“과연, 겉으로는 배교하고 비기독교인처럼 살면서, 마음속으로는 기도하며 신앙을 지키는 걸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 있나? 비겁한 거 아닌가?”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침묵》을 처음 읽었던 이십 대 중반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땐 사명감과 의욕에 불타오르던(설마!) 신학 초년생이었는데, 부모님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선택권 없이 기독교인이었던 나는 첫 대학 입학과 함께 독립하면서 교회에서 점점 멀어졌다가 급기야는 ‘무종교인’이 되었다가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상황이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순교할 자세로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날 하나님에게 심판과 벌을 받을 거라는 설교에 세뇌당해 있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배교했던 사람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교회와 신앙인들의 분위기에 동조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 이십 년 가까이 더 살아오면서 나 역시 그들과 같이 수 없는 후미에를 밟아왔음을, 하나님은 결코 ‘무서운’ 심판의 신이 아님을, 이런 나일지라도 하나님은 기꺼이 안아주시는 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후미에를 밟을 수밖에 없는 약한 사람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버리시는 걸까? 답은 자신만 알 것이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삶을 통해서 말이다.

‘저 검은 발가락 자국을 남겼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 나는 전쟁 중에 살았던 사람이므로 자신의 신념이나 사상을 버린 채 전쟁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인간이 육체적인 폭력에 의해서 자신의 신념이나 사랑을 쉽사리 굽혔던 사례를 내 눈으로 목격하였던 것이다. … 그러므로 후미에를 밝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신앙’이란 말 대신에 ‘자신의 삶이나 방식이나 사상, 신념을 폭력에 의해서 굽힐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기분’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것은 그 누구라도 뼈아프게 느낄만한 문제일 것이다. 후미에의 발가락 자국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소설을 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 『<침묵>의 소리』, 26쪽(이하 책명에 대한 언급 없이 쪽수만 기재한다).

《침묵》에서 들려오는 약한 자들의 목소리

후미에를 밟지 않았던 사람은 결국 고문을 받고 죽어갔다. 그들은 ‘강한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나 같은 사람, 후미에를 밟았던 ‘약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마도, 후미에를 밟고 싶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강자와 약자, 나 자신은 도대체 어느 쪽에 속할까? 엔도는 이를 두고 “소설가가 ‘자기 자신이 아닌 인간’을 쓸 수는 없는 일이기에, 당연히 ‘자신의 배꼽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어느 쪽 사람들일까”라고 스스로 물었다고 한다.

▲ 나가사키에 소재한 엔도 문학관에는 남겨져 있는 《침묵》의 초고들. ⓒ정리연
배교자와 배신자가 순교자에 대해서 지녔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콤플렉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 콤플렉스 속에는 내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선망과 질투 그리고 대로는 증오마저 섞여 있었을 것이다. 순교할 수 없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평생 그 미안한 마음을 들에 짊어진 채 살다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비록 사회로부터는 경멸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37쪽)

우리는 척박하고 힘든 여건에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수많은 선교사의 사연을 접해왔고 선교가 금지되어 있어서 여전히 숨어서 활동해야 하는 곳도 있다.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할 거야’ 하며 선교사들을 우러러보기도 하고 기도나 물질로 함께 하기도 한다. 《침묵》에서 로드리고보다 앞서 일본에서 선교하다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했던 페레이라 신부 역시 그런 선교사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하루도 걸리지 않지만, 당시에는 언제 모습을 바꿀지 모르는 바다 위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가 일본 땅을 밟을 때 일본이라는 감옥에 갇힌 채,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자와 다름없이 살게 되리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그 여행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폭풍이 덮쳐오고, 더위나 무풍지대와 싸워가는 가운데 갈증이나 병으로 동료들은 하나둘씩 쓰러져 간다. 낯선 풍토와 음식, 언어의 부자유 등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다른 선교사들처럼 페레이라에게 이러한 어려움을 뛰어넘도록 해준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역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험정신도 분명히 그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만약 청년 페레이라에게 기독교가 진리라는 신념과 그것을 포교하려는 격렬한 열정 그리고 동양인들을 위해서 무언가 공헌하고 싶다는 사제적인 마음이 없었다면, 그러한 고난을 쉽게 뛰어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고문을 받아 배교한 페레이라에게도 그러한 당초의 마음이 변형된 채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43쪽)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37명의 사제는 일본 신도를 버리지 않고 일본에 잠복하였다. 페레이라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일본에 남는다는 것은 순교할 각오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페레이라가 그때 이러한 결의를 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사실 그는 1617년 10월 1일에 예수회에 종신서원을 하였다. 그 결심이 거짓이 아니었음은 그가 일본에 남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45쪽)

일본의 종교학자 ‘아네사키 마사하루’ 박사에 의하면 당시의 잠복 사제들은 낮에는 신도의 집 마루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일본인 농부의 옷을 입고서 포교 활동을 하거나 영성체를 집전하기 위해서 활동했다고 한다. 페레이라도 분명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주위에서 체포되어 순교하는 신도를 목격하면서 겁에 질린 신도들을 격려하면서. 이랬던 페레이라가 추후엔 고문과 일본 신도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하지만, 죽기 전에 신앙에 복귀하기 위한 재순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료로서의 가치는 좀 부족하지만.

페레이라는 이미 노령으로 수년째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자기가 신을 배반했다는 것에 마음이 아픈 나머지, 큰 소리로 가슴속에 있는 내용을 토로하였다. 이는 즉시 부교소의 사졸들에게 보고되었고, 그를 심문하였다. 페레이라는 솔직하게 비통한 심경을 토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 페레이라는 구멍에 거꾸로 매달려 절명하였다.(57쪽)

엔도는 페레이라, 기치지로, 로드리고 모두 내면에 공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작중 인물로 묘사한 것임을 고백한다. 성서에는 제자 베드로가 예수가 붙잡혀 있는 가야바의 관저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곳을 스스로 찾아간다는 것은 큰 위험을 동반하는 것인데도 베드로는 찾아갔다. 거기서 사람들에게 추궁을 받자 “나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라고 닭이 울기까지 세 번이나 부인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갔지만, 막상 주위로부터 추궁을 당하자 신념을 버렸던 것이다. 기치지로의 배반에서 그런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다. 도망갔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침묵》을 읽은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기치지로는 저 자신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기치지로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를 배반한다는 것은 나만의 체험이 아니라 인간 모두의 체험인 것이다.(65쪽)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침묵》이 발표되었을 때 여러 가지 비판이 기독교 교회로부터 쏟아져 나왔는데, 그 대부분이 ‘신은 침묵하고 있다’라고 이해한 사람들로부터 가해졌다고 한다. 그건 제목에서 오는 잘못된 이해였던 거 같은데, 엔도가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때의 제목은 침묵이 아니라, ‘양지의 냄새’였다. 하지만 출판사 직원의 제안으로 - 강한 제목이 좋겠다는 - 제목을 바꿨다. 너무 직설적인 것 같은 제목이라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당시에 원고를 탈고하고 너무 많이 지쳐있기도 해서 깊이 생각할 수 없었고, 친구의 제안이라서 따랐다고 한다. 나중엔 많이 후회했지만.

처음에 내가 제목으로 삼으려 했던 《양지의 냄새》는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제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로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생의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버렸던 페레이라. 그는 사형수였던 일본인의 처와 그에 딸린 자식들을 떠맡았다. 그러나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나머지 의사로서 일하는 페레이라. 그런데 때때로 부교소에 불려나가 예를 들어서 중국에서 온 배에 수상한 자가 섞어 있지는 않은지, 혹은 기리시단의 책이 실려 있지는 않은지 등등을 조사하는 일에 참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굴욕적인 매일 매일의 삶을 보내고 있던 사나이가 어느 날, 자기 집 뜰을 비추는 양지 속에서 팔짱을 낀 채 지나간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다. 그럴 때 거기에는 분명히 ‘양지의 냄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달리 표현해 본다면 ‘고독의 냄새’ 라고나 할까, 그런 이미지를 제목으로 삼고 싶었다. 페레이라가 실제로 양지의 냄새를 맡는 장면을 쓰지 않았던 것은 역시 문장을 쓰는 데 있어서도 절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68쪽)

엔도는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우리가 알아챌 만한 ‘어떤 것’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역자에 의하면 엔도의 문학은 근본적으로 ‘흔적’의 문학이라고 한다. 흔적은 ‘암시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로드리고와 기치지로가 비록 신앙을 버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 즉 그들에게 있던 신앙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서 여전히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만날 때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게 된다고 엔도는 반복해서 말한다. 더욱이 그 흔적이 ‘아픔’으로 경험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신을 보도록 해주는 창이 된다. 앞서 엔도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의 인생은 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때 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생에 남겨진 흔적인 것이다.
- 김승철,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28쪽.

신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보다는, 사람들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에 대해서 쓰는 소설가에게 허락된 글쓰기 방식이란 사람들의 인생에서 신이 배어 나오도록 쓰는 길 외에는 달리 없을 것이다. 엔도는 신과 그리스도를 노출시키지 않고 ‘인생’이라는 당의로 감쌈으로써 그것이 우리의 인생 속에 들어와 용해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 엔도 슈사쿠 《침묵》의 각국 번역본들(엔도 문학관) ⓒ정리연

검은 발자국, 아픔의 흔적

그리스도를 버렸다는 상징적 행위로 후미에를 밟은 사람들이 후미에에 남겨놓은 때와 얼룩으로 물든 인생의 ‘흔적’에서 엔도는 이 스티그마타를 확인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남겨 놓은 흔적인 동시에, 그리스도를 밟음으로써 자신들의 발에 새겨진 ‘아픔’으로서의 흔적이기도 했다. 엔도는 후미에를 밟은 사람들의 인생의 슬픔과 아픔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그 발자국에서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 김승철,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29쪽.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침묵》의 독자들이 그냥 넘겨버리고, 한국에서는 번역조차 되지 않은 ‘관리인의 일기’는 어떤 면에서 중요한 걸까?

주인공 로드리고는 괴롭고도 긴 밤을 보냈고, 드디어 날이 샜다.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때 닭이 울었다. 닭이 울었다! 눈치챘겠지만, 베드로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체포된 예수가 가야바의 관저에서 보낸 긴 밤, 예수를 배반하고 흩어졌던 제자들이 예수의 무덤에서 보낸 긴 밤, 그런 밤을 보낸 로드리고. 후미에를 밟은 로드리고는 외부와 폐쇄된 기리시단 수용소에서 살게 된다. 수용소의 전체 넓이는 약 4천 평방 미터였는데, 그 안에 약 3.6미터 높이의 돌담을 쌓았고, 그 주위에는 호를 파서 탈출을 막았다고 한다. 기리시단을 수용하는 방, 감시하는 관리자들의 방, 창고나 수인들에게 형벌을 가하는 지하감옥인 쓰메로(사람을 그 안에 억지로 구겨 넣듯이 가둬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고통을 가함)가 있었고 주거지의 출입구는 하나뿐이었다.

‘관리인의 일기’에는 신앙의 길을 가려는 자의 처절하고도 절절한 여정이 각인되어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침묵》에서 로드리고가 “나는 전향하였다. 그러나 내가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님을 당신은 아신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의 신앙이 후미에를 밟음으로써 끝난 것이 아님을 강하게 암시한다. … 배교한 이들이 살아남은 자로서 맞딱뜨리지 않을 수 없었던 고통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리인의 일기’는 엔도가 《총과 십자가》(1978)에서 배교했던 수도사들을 가리키면서 쓴 다음 구절과도 직결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 자신들은 신으로부터 벌을 받은 인간이라고 여기면서 매일매일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의 여생은 문자 그대로 이 세상의 지옥이었을 것이다. 두 신부의 비참한 말로를 생각할 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온다. 어떤 신자라도 그들의 고민과 그들이 받았던 처참한 고문을 생각할 때 비난이나 비판을 할 수 없으리라. 이 두 사람의 신부도 기베와 마찬가지로 신의 품에 안겨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 김승철,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47쪽.

엔도는 수용소에서 수인들, 즉 기리시단이었다가 배교한 사람들을 관리했던 사람이 남긴 자료에서 로드리고와 기치지로가 여전히 신앙을 지키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버렸노라고 말한 후에도 로드리고의 영혼과 삶은 그리스도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카다 산에몬은 종문(宗門)에 대해서 글(書物)을 쓰도록 토오토오미 노카미에게 명령을 받았다.”
여기서 말하는 “글”이란 서약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오카다 산에몬(로드리고가 배교 후 받은 일본 이름)이 서약서를 썼다고 관리가 보고하는 기록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기록인 것처럼 보이지만, 왜 산에몬은 토요 토오미노카미로부터 서약서를 쓰라는 명령을 받았는가? 또 이 경우 서약서란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사실 기독교 신앙을 버렸다는 서약서라면 산에몬은 이미 오래전에 썼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 그는 다시 서약서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는 일단 배교하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기독교인이다. 고문을 견디지 못해서 기교하긴 했지만, 그것은 본심은 아니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시금 고문을 받고 다시 한번 기교하겠노라는 서약서를 쓴 것이다. 이것을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에 있는 위의 한 줄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70쪽)

또한 기치지로에 대해서 관리인의 일기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오카다 산에몬이 데리고 온 추겐(에도시대 신분의 하나로, 전시에는 전쟁에 참가하고 평시에는 잡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기치지로가 수상하다고 의심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 … 그가 목에 걸고 있던 부적주머니에서 기리시단들이 존경하는 본존(本尊)이 그려진 상(像)이 하나 나왔다. 그 본존의 한편에는 성 바울과 성 베드로가, 반대편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새겨져 있었다. 기치지로는 옥에서 불려나와, … 문초를 당했다. … 이것을 산에몬으로부터 받은 것은 아닌가 하고 추궁당했으나, 기치지로는 산에몬으로부터 이러한 것을 받을 틈이 전혀 없었는데 … (239쪽)

그동안 조금만 위협해도 기독교 신앙을 수도 없이 버렸던 기치지로지만, 여전히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가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 ‘그리스도의 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로드리고를 보호해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역자는 이 부분을 “약하고 비굴하기까지 한 신앙인이었던 기치지로가 어느새 강한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구절”이라고 했다.

엔도는 소설가로서 배교한 자의 슬픔과 고뇌를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아마도 감시자들 몰래, 차마 입 밖으로 소리내지 못하는 기도를 드렸던 ‘약한 자’들을 갇힌 곳-수용소라는 물리적, 배교했다는 죄책감에서 스스로 만든 심리적인 감옥-에서 꺼내어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리라. 마음의 빚을 지닌 자들의 신앙은 자손들에게 이어지고 그들은 가쿠레 기리시단(잠복, 숨은 크리스천)이 된다. 그들의 신앙은 배교한 자, 약자라는 자각이라는 어두움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그들의 이야기와 엔도가 이야기하는 어머니 종교-가장 약한 자, 비겁한 자까지 안아주시는, 모든 것을 감싸 안아주시는 어머니 같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 『<침묵>의 소리』에 실려있는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의 원본이 수록된 <사켐요로쿠> ⓒ정리연

모든 건 우리에 대한 ‘신’의 사랑에서 온다

우리는 이런저런 잣대로 사람을 평가할지라도 하나님은 누구도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하든 악하든, 당신의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 그 구원이 우리를 선하게 하는 게 아닐까? 아니, 그런 모든 것을 넘어서 엔도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감추고 싶어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스스로 보게 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우리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든지 아니든지, 그게 중요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침묵’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사랑을 느끼고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약한 자, ‘나’인 것이다.

미국의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엔도의 소설 《침묵》을 ‘사일런스’(2016)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그는 “인간의 선과 악은 도대체 어디서 달라지며, 나아가 선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왜일까?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2002)을 만든 후에 《침묵》을 읽었는데, 그때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사명은 여전히 계속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침묵》의 독일어 번역본에 서문을 쓰면서, “신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비하며, 그분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스스로를 우리에게 내어주셨으며 그분은 그분이 침묵하고 계실 때조차 모든 곳에 임재해 계신다. 《침묵》은 이러한 사실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몸으로 체험해서 알게 된 한 사나이의 이야기다”라고 했다.
- 김승철,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정리를 잘못하다 보니, 쓸데없이 글이 길어져 버렸다. 엔도가 자신의 문학 강의에서 했던 말인데 인상적이어서 그의 말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우리 역시 더듬으며, 때로는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자기만의 인생을 써 가는 작가이며, 온전하지도 강하지도 못해서 자주 인생의 후미에를 밟는 약한 자이지만 영혼과 숨결은 늘 그리스도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열려있다고 믿고 싶다.

“우리 소설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더듬듯이 소설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인생에 대해 결론이 나오고 미혹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소설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소설가는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고 손으로 더듬어가며 인생의 수수께끼에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겁니다.”
- 김승철,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18쪽.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리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