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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장애가 당신만의 장애가 아니라면(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20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3.08.18 14:20
▲ 주호민 웹툰 작가가 두 자녀와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주호민 인스타그램

이 연재칼럼을 시작할 때 이 칼럼은 주로 성소수자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칼럼이지만 성소수자 이외의 소수자 전반에 관한 이야기도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연재칼럼 제목도 [(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라고 괄호를 사용했었구요. 이번 칼럼은 그 괄호가 필요한 칼럼이 되겠습니다.

1.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유명 웹툰 작가와 그의 자녀를 학교에서 담당했던 특수교사 사이에 소송이 벌어진 사건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특수교사를 비롯한 교사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많이 읽게 되었는데, 시간이 좀 흘러가면서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양쪽의 이야기 모두에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촉발된 상당히 격렬한 감정이 품어져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수교사들뿐만 아니라 장애학생 통합교육 경험이 있는 다른 교사들도 이 사건을 마치 자신의 학생에게 부모가 몰래 녹음기를 달아 보내서 자신들이 고소당한 것처럼 느낀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반면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이 사건을 맞았을 때 처음에는 그저 속상할 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있다가 장애인 혐오적인 이야기들이 점점 많이 나오자 참지 못하고 그 동안 자신들의 자녀를 교육하면서 겪어 왔던 장애학생 교육의 현실의 어두운 점들을 적극 토로하면서 이 사건에서도 그런 어두운 점들이 드러나기도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양쪽의 이야기 모두 글 하나하나를 읽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대립이라는 말까지 쓰고 싶진 않지만 많은 부분 서로 부딪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점에서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학생을, 특히 장애학생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교사는 협력 관계여야 할테니 말입니다.

2.

소송이 벌어진 사건에서 해당 학생의 부모와 특수교사 중 어느 쪽이 옳네 그르네 하는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대신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이 사건의 시초에 있었다는 일입니다. 해당 학생이 같은 반 학생에게 문제되는 행동을 했고 그래서 통합학급에서 분리되어 복귀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통합학급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일 말입니다. 그 이후 특수학급에서 특수교사와의 충돌이 벌어지면서 소송까지 가게 되었지요.

이 사건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 보면서 끊이지 않던 의문은 도대체 이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해당 학생은 어떤 처지에 있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학생에 관한 조처를 처음 논의한 것 자체가 해당 학생이 문제되는 행동을 한 3일 후에나 있었고 그 이후엔 추석 연휴가 끼는 바람에 조처에 대한 최종 결론은 10일 후에나 났으며, 그 후에도 그 조처 중의 하나인 전교생 성교육이 시행된 후에야 해당 학생은 통합학급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당 학교는 원래 특수교사를 한 명 더 뽑아야 하는 숫자의 장애인 학생이 있었다는데 안 뽑았다니까 특수교사의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겠고 그것이 이런 상황의 원인 중 하나였겠구나 싶긴 합니다만, 어쨌든 이 10여일이 넘는 기간 동안, 특히 아마도 해당 학생도 많이 당황했을 이 기간의 초기에 학교 측에서 과연 얼마나 적절한 돌봄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당 학생의 부모의 입장문에 이 학생이 문제되는 행동을 한 당일부터 며칠 동안 집에서 상당히 퇴행적인 행동을 하고 등교거부도 했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적절한 돌봄이 없었을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특수교사에게 모든 처리를 떠맡겨 버리고 학교는 손놓아 버린 거고, 그런 와중에 지친 교사의 입에서 학생 학대라고 고소당한 문제의 발언들이 나온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요.

이 외에 또다른 생각을 많이 불러 일으키는 점은 해당 학생의 문제되는 행동에 대해 그 행동으로 피해를 본 같은 반 학생의 부모가 해당 학생의 강제전학 등을 원했다는 점입니다. 행동의 내용을 보건대 비장애학생이라면 당연히 그런 조처가 이루어질 법한 행동이겠다 생각은 들었습니다만, 장애학생의 행동이라면 그 행동의 고의성이 없을 테니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그럼에도 피해를 본 학생의 부모 입장에서라면 장애학생이건 비장애학생이건 내 자녀가 피해를 보는 건 마찬가지인데 장애학생이 한 행동이라고 뭔가 봐 주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수 있었겠습니다만.

그런데 문제 행동이지만 고의성이 없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학생을 나이가 두 살 더 많아 동급생들보다 몸집이 더 크고 체력이 더 강하다는 점까지 덧붙여서 일종의 성폭력범 비슷하게 묘사하는 이야기들이 자꾸 나오는 것이 장애학생의 부모들에게 꽤 많은 분노를 불러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사실 나이가 두 살 더 많게 된 이유도 이미 그 기간만큼 초등학교 진학이 지연되었다는 것일 테고 그 지연의 큰 이유는 해당 학생의 장애일 터인데 말입니다.

3.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 장애학생 부모들이 집단적으로 무릎을 꿇었던 광경이 아직도 꽤 많이 회자되는 것에서 보듯이 장애학생 교육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장애학생 교육의 원칙으로 성립된 것은 장애학생 교육은 통합교육을 기본으로 한 위에 장애학생 개개인에 대한 개별화된 교육까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 통합교육이란, 장애학생 교육이라고 장애학생만 따로 모으고 커리큘럼도 따로 해서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장애학생 부모와 특수교사 간의 소송 사건을 두고 나오는 이야기 중에 방금 언급한 통합교육에 대한 회의적인 이야기도 많아 보입니다. 장애학생 중에서 도저히 통합교육이 불가능한 학생이 있지 않겠느냐든지, 통합교육을 하다 보면 장애학생이 끼치는 민폐를 다른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 사건도 그런 예 중의 하나라든지 하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이 사건에서 해당 학생의 부모를 비판하는 말들 중에 이런 말도 있었죠. 통합교육을 꼭 하고 싶었다면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해서 장애인이라는 ‘핑계’를 대지는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러니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강제전학 등등의 말까지 나왔으리라 싶습니다.

그런데 왜 장애학생 교육의 원칙이 통합교육이어야, 즉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교육을 받는 것이 되어야 할까요? 그건 아마도 장애학생도 비장애학생도 모두 시민이라는 점에 있지 싶습니다. 즉, 시민으로서 평등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 평등한 교육의 결과로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터인데, 장애-비장애 분리는 그런 평등에 가장 결정적인 걸림돌 중 하나일 것이기에 통합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장애학생도 시민이기에 통합교육이 되어야 한다면, 그 통합교육에서 장애학생이 비장애학생과 함께 교육받을 수 있을 만한 어떤 '자격'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죠. 시민이기에 되어야 하는 통합교육이라면 시민 이외에 어떤 다른 자격을 요구한다는 것은 말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장애학생이 교육을 받기 상당히 어려운 발달/지적장애를 보인다고 해도, 혹은 장애의 특성 때문에 문제행동들을 해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어렵게 만든다고 해도, 그것이 통합교육을 받을 지 말지 결정하는 '자격'과 관련될 수는 없겠죠. 애시당초 그런 '자격' 따위는 있을 수도 없으니.

따라서 당연히 이러한 생각이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말하자면 어떤 시민이 장애가 있다면, 그 장애는 그 시민만의 장애가 아니라 그 시민이 참여하는 공동체 모두의 장애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거지요. 무슨 말이냐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 교육에 참여하고 사회에 참여하다는 것은, 그 장애 때문에 옆의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민폐가 있다 해도, 그 민폐를 그 시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장애시민이 참여하는 공동체 모두가 해결해 나가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이 글에서 다룬 사건이 많은 관심을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조금 전에 있었던 안타까운 사건인 서이초등학교 교사 자살 사건으로 인해 교육 현실과 교사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에도 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말하자면 교사 인권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은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로 보였다는 것인데요.

교육 현실과 교사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니 현재의 정부나 보수적인 사람들이 또 꺼내 드는 이야기가 “학생 인권 너무 챙겨서 교권을 망쳤다” 운운이지요. 교권이라고 부르든 아니든 그걸 인권과 대립되는 구도를 만들어 버리면 그 구도 자체가 엉터리라는 지적은 이미 많이 되고 있으니 이 글에서까지 더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있습니다. 교권이든 뭐든 인권과 대립 구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때 이런 사고에 담긴 ‘인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페이스북에서 어떤 철학자가 이런 지적을 한 것을 읽었습니다.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권리가 이제껏 공적인 당위나 사회 규범이 아닌 사적인 용도에 따라 타인을 향해 사용되는 도구 또는 무기처럼 간주되어왔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라구요.

그러니 이런 사고 하에서는 권리 행사가 가진 패가 더 높은 쪽이 이기는 카드놀이나, 좋은 아이템빨로 상대를 이기는 온라인 게임과 같은 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계속되는 지적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고 하에서라면 소위 교권 vs 학생인권이라는 구도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학생인권이란 교사 말을 ‘안 들어도 되는’ 아이템으로나 보이겠구나 싶은 거죠.

문제는 교권 vs 학생인권이라는 구도를 떠나서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아이템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까지 든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소수자라는 것도 아이템으로 보이겠다 싶기도 합니다. 소수자가 아닌 나는 뭔가 노력을 더 해서 나를 내세워야 하는데, 소수자라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소수자라는 걸 내세울 수 있어 보인다 뭐 이런 생각 들겠다 싶은 거죠.

아마도 앞에서 언급했던, 한 시민의 장애가 그 시민만의 장애가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장애가 되는 길이 열리기 위해서는, 이런 아이템 혹은 카드놀이 식의 사고를 어떻게 지양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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