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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함께 걷다시온성교회 청년공동체, 김성욱 목사를 만나다 (2)
정리연 | 승인 2023.10.22 03:02
▲ 독서모임 읽.말.하.

2019년부터 시작된 희년기금사역을 통해 청년들에게 기본소득 개념으로 청년들의 자립을 돕고 있는 시온성교회. 그 사역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김성욱 목사. 청년부 내에서 정관을 만들고 이에 따라 매달 1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주로 주거와 취업 지원하고 있다. 2020년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2천여만 원이 청년들한테 지원이 됐다. 벌써 4년째다.

하지만 시온성교회 청년부는 이것이 모두가 아니다.

▲ 목사님, 청년 모임 중에 ‘읽.말.하’는 뭐예요?

독서 모임인데요, 기독교 신앙(학) 및 인문학 책을 주로 읽어요. 보통 읽고 나눔하는 데서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읽고 서로 나눴으면 뭔가 흔적을 남겨보자라는 의미에서 ‘읽고, 말하고,하라, 줄여서 읽.말.하예요. 책을 읽고 난 다음에 글짓기를 한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노래를 만든다든지 하는 거죠. 노래를 만들거나 조형물을 만들기도 해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에 어떤 친구들은 광주 518현장을 가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요. 세월호 관련 서적을 읽었을 때는 한 청년이 도표와 사진을 이용해서 세월호와 관련된 일지를 너무 멋있게 만들기도 했고요.

사회 문제를 함께 나누고 참여하기

▲ 우와, 정말 대단하네요. 책 한권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정말 다양해요! 저번에 예배 때 뵀었는데, 청년들과 함께 세월호 기억예배에 오셨더라고요.

제 신학 여정에 있어서 416은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제가 18년 4월에 부임했다고 했잖아요? 부임하고 나서 첫 수요기도회 때 화면에 기도 제목들이 나오는데, 세월호 참사하고 미투, 두 개가 기도 제목으로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담임목사님께 참 감사했고, 정말 좋은 교회다는 생각을 했어요. 19년도에는 “사회적 영성: 세월호, 고통과 기억 그리고 연대”를 주제로 예은이 어머님인 박은희 전도사님을 모시기도 했고, 세월호 기억 예배에 청년들과 참여하고 있어요.

▲ 목사님 사역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이건 교회에 소속된 어떤 부서가 아니라, 단독교회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만큼 독립적이면서도 건실하기 때문이겠죠. 요즘 시온성교회 ‘이음’ 사역이 화제던데요, 어떤 건지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어떻게 해서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그걸 공유하게 된 건가요?

네. 저희 교회가 지역 사회와 함께 하기 위해서 공간을 대여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어떤 걸로 이용할 것인가, 그걸 어떻게 꾸밀 것인가, 고민들이 많았어요. 교회 바로 옆 건물을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매입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바로 코로나가 왔고요. 그래서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았어요. 오동석 목사님이라는 분인데, 그런 걸 작업하시는 전문가예요. 보통 지역 사회를 위한 카페를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오 목사님이 볼 때는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하는 게 있다는 거예요. 풍수지리처럼요. 영등포, 저희 교회 중심으로 지역 사회를 조사하고 데이터와 시대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나온 결과물이 이음 스튜디오예요.

요즘 유튜버가 많잖아요. 개인 방송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요. 그래서 1인 혹은 여러명이 함께 촬영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만들었어요. 지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요. 제가 이 공간을 만들기 전에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이렇게 잘 활용되는 공간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엄청 큰 교회는 좀 다르겠지만요.

▲ 그렇군요. 저도 잠깐 가서 봤는데 공간이 정말,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 건물 자체에 교회라는 상징이나 느낌이 전혀 없어서였던 거 같아요. 그냥 ‘깔끔하고 아담하다. 잘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만들어졌네!’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의도하신 건가요? 보통, 교회들이 지역을 위해서 뭘 한다면서 크게 광고하고 교회 이름도 크게 붙이고 하잖아요.

네. 맞아요. 굉장히 대관이 잘 이루어지는 편인데, 교회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인 것도 작용하는 거 같아요. 일부러 컨셉을 그렇게 잡았고, 교회에서 운영한다는 얘기도 안 해요.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주변에서 ‘정부에서 하는 건가?’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자꾸 물어봐요. 그러면 말슴 드리죠. 사실은 옆에 있는 교회에서 운영합니다 라고요. 

처음부터 교회라는 걸 전혀 알리지 않았고,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기 위해서 원래는 지하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었는데 교회에서 뚫었어요. 장애인들 이동 때문에요. 하여튼 이렇게 운영이 되다 보니 사람들도 되게 편하게 자주 오세요.

▲ 그럼, 스튜디오는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고, 어떤 절차를 거쳐야 사용할 수 있나요? 교회에 예약을 하는 건가요?

아니요. 이음 홈페이지가 따로 있어요. 교회 홈페이지와는 별도로요. 그 홈페이지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방을 누르면 네이버 예약 시스템으로 넘어가서 원하는 시간대에 예약하면 되요. 스튜디오는 방은 4개인데, 큰 방이 2개, 작은 방(1인 녹음실)이 2개예요. 그리고 한 40명 정도가 쓸 수 있는 홀이 하나 있어요. 가장 넓은 홀은 대관 요청을 하면 저희 심의를 거쳐 대관을 하는데 거의 매주 있어요. 어떤 때는 한 주에 두 번도 있고요. 

▲ 굉장히 활발하군요. 스튜디오 사용 요금이나 사용 횟수는 어떻게 되나요?

일단, 청년에게는 무상으로 해주고 있어요. 단골 청년 단체들도 있죠. 이용은 어느 정도 제한이 있는데, 그것도 필요에 따라서 미리 협의하면 횟수는 상관이 없어요. 사용 시간은 매일 2시간이 기본이에요. 운영을 해보니까, 자기 방처럼 쓰는 분들이 생겨나더라고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게 되니까 제한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 이음스튜디오

교회라는 부담감을 주지 않고 ‘교회’를 만들어 가기

▲ ‘이음’이라는 이름처럼 교회와 지역을, 세대와 세대를, 나와 사회를 이어주는 좋은 매개체인 것 같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개인적인 생각을 듣고 싶어요.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요즘 청년 목회는 어떤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목사님의 비결? 이런 것들요.

영등포구가 서울시 내에서 청년 인구 비율이 좀 높은 편이에요. 교통이 좋거든요. 지방으로도, 강남 강북으로도 다니기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는 청년들이 거쳐 가는 동네라는 거죠. 왜냐하면 집값이 너무 비싸서 결혼하면 여기에 집을 얻을 수가 없어요. 서울 외곽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저희 청년부에는 서울 외 지역에서 오는 비율이 되게 높아요. 그리고전도하지도 않는데 알아서 오는 청년들이 있어요. 그 청년들 정착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에요. 거의 한 80~90%.

누가 처음 왔는지 보면 다 알죠. 그래도 등록하라는 얘기는 안 해요. 때가 돼서 알아서들 하죠. 그러면 물어 봐요. 어저다가 우리 교회에 왔는지요. 제 입으로 얘기하기는 좀 그렇지만(하하) 일단 설교, 또 하나가 분위기 얘기를 해요. 공동체가 환대의 문화가 잘 되어있는 것 같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와서 강조했던 부분도 환대였어요. 누구라도 환대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 그런 문화를 만들자는 이야기들을 자주 했어요. 저희 청년들이 굉장히 스스럼없이 사람들을 환대하고, 그런 면에서 새로 오는 분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거 같아요.

비결? 글쎄요,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일단은 사실 저는 굉장히 운이 너무 좋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청년 사역하면서 제가 뭐 하겠습니다 하면, 담임목사님이 한 번도 캐묻거나 간섭하지 않으시고 그냥 맡겨주시거든요. 사실 청년 사역자들과 청년 공동체를 교회가 좀 믿어줄 필요가 있는데, 항상 교회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니까 청년들의 열정이 온전히 발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자주 봤어요. 예전 같은 방식으로는 청년들이 말을 듣지도 않을뿐더러 교회 내의 권위주의적인 구조로는 청년공동체를 유지하기 힘들어요. 지금도 계속 고민하는 게 그런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저는 굉장히 좋은 교회와 담임목사님을 만난 거죠.

좀 더 나아간다면 청년들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사역이나 활동을 할 수 있는 조직의 개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예산을 아예 독립한다든지, 이제 이런 것들도 사실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청년들의 고민의 결론은 신앙과 자기들이 사는 현실에 괴리가 있다는 거예요. 지금 현실에서 드러나는 어떤 문제들, 경제적 문제, 주거 문제, 정신 건강의 문제.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는 차라리 알바를 하는 게 더 낫고 자기개발을 하는 게 훨씬 삶의 이득인데 굳이 교회에 나올 이유가 있냐는 거죠. 그러다 보니 고민들이 참 많은데 교회가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청년들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그냥 손 놓고 있지 않다는 어떤 사인, 상징이 될 수 있을 만한 액션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전통 교회가 주일 성수를 강조하는데 그러면 주일에 일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일당을 줘야 한다, 교회가 그렇게라도 어떤 액션을 보여야 한다고요. 말로만 맨날 청년을 위한다고 하지 말고 청년의 실제 생활과 연관된 질문을 계속 던지고 나름의 답을 좀 찾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그리고 저도 20살 청년들이랑은 사실 소통이 어려워요. 이제 딱 20살 되는 청년들은 언어 자체가 달라서 저도 반기에 한 번씩 과외를 받아요. 하하.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청년들한테 카톡을 보냈는데 카톡을 안 읽는 거예요. 그래서 얘가 나한테 삐졌나? 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카톡을 안 쓴다는 거예요. 요즘 청년들은 문화가 저랑 너무 차이가 나는 거죠. 세계가 달라요.

요즘 MZ 세대 특징 중 하나가 돈은 없지만, 가치 있는 데 투자하기는 아까워하지 않는 게 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기금 사역을 하다 보면 청년들이 평소에 헌금을 안 하는데 기금 사역을 하면 말도 안 되게 돈을 막 내놔요. 이 액수를 낼 형편이 아닌데도요. 

20대 후반 이후부터는 그래도 뭔가 소통이 되는데 20대 초반은 제가 외계인인 건지, 얘네들이 외계인인 건지 모르겠지만, “얘네들 왜 이러지?” 그런 게 느껴지긴 하는데 일단은 기본적으로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학자는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지금 청년 세대는 사실 굉장히 보수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탈가치 세대다. 그러니까 아예 가치 지향을 잃어버리고 순간순간 나에게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세대가 되었다는 거죠. 굉장히 세속적이고 실용주의적으로 변화해 버렸다고 진단을 하던데 제가 현장에서 만나본 청년들도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얘네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결국,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와요. 가치적인 것들을 토론하고 고민해야 할 시기에 입시 지옥으로 몰아대다 보니 그런 생각할 힘조차 없는 거죠. 해본 적이 없으니까.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에게 미안함을,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미안함이 먼저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청년들이 어른들의 고마움을 모르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다가가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보니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필요가 있죠.

▲ ‘행동하는양심’과 함께하는 노숙인 배식 봉사

청년 시기는 초콜릿 상자 같은 것

▲ 네, 맞는 말씀이에요. 옛날처럼 성경 말씀을 심어줘야겠다,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러면 정말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우리 교회 청년들, 더 나아가 우리 한국교회 청년들이 어떤 청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시기별로 좀 달라지긴 했는데, 제가 교회에 처음 왔을 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원을 이뤄나가는, 그런 활동적인 청년이 되자고요. 그런데 팬데믹 지나고 나서는 저 스스로 조금 지쳤는지 아니면 꺾였는지 모르겠는데, 사회의 어떤 변혁을 이루는 것보다 일단은 현재 청년들의 일상의 자리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에 이들한테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있는 자리에서 일단 살아내는 것, 근데 그 살아냄에 있어서 교회라는 곳이 위로와 평안, 안전함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내적인 근력이 조금 다져져야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저는 기본적으로 청년들을 어떤 계몽의 대상으로는 생각을 안 하고 있고 그냥 함께하는 거죠.

요즘 청년 목회 힘들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온성교회 청년부는 활기차 보였다. 지나고 보면 고민도 많고 헤쳐 나가야 할 것들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길이 보이지 않아서 더 좌절하고 실망했던 때가 청년 시기였던 거 같다. 어른들의 잔소리가 싫었고,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큰 책임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빛나고 열정이 넘치고 곧 괜찮아졌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너희는 왜 그러니?” 하면서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도 짐을 지우지도 말자. 김성욱 목사님 말씀처럼 그냥, 함께 걷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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