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학

나는 늘 다 쓴 작기장(노트)을 뜯어서 종이배를 만들었다. 그리고 섬진강 가에 가서 띄웠다. 어른들은 다 쓴 작기장을 칫간에 놓으라고 야단이지만 나는 내가 띄운 종이배를 하동 어느 마을에서 받아볼 소녀를 그렸던 것 같다.

우리 마을은 원래 행정구역으로는 무수리에 속하지만 실제 이름은 화탄인데 지금은 월탄리로 불린다. 나는 화탄이 좋다. 花灘이란 꽃피는 여울이다. 한때 나는 호를 탄요(灘謠)-흐르는 여울에 자갈이 구르며 내는 노랫소리-라 부르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눈감으면 자갈 구르는 그 소리를 들으며 명상하고 힐링하기도 한다.

내게 고향은 강이었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두꺼비가 많았다. 그래서 섬진강(蟾津江)이라 했을까? 적성 앞을 흐르기에 적성강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이야 팔공산 데미샘에서 시작된 강이 장장 220여km를 달려서 곡성과 화개, 하동을 지나 광양 앞바다에 이르는 한국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 섬진강은 우리 마을 앞으로 흐르고 있는 우리들의 강이었다.

운암 칠보를 거쳐 평남리 앞에서 오수천을 만난 강이 옆으로 약간 기울어져 흐르다가 원 다리 유원지에서 안으로 꾸부러지고 다시 슬며시 허리를 펴며 채계산 아래를 지나 세월교 앞에 이르면 3자 모양으로 흘러 우리 마을 화탄 앞에 이른다. 그리고 곧바로 핑경다리 밑 심초천 앞에서 강이 기억자(ㄱ)로 꺾여 거의 일직선으로 흘러 고즈넉하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향가에 이른다.

섬진강, 우리의 놀이터는 채계산 발치를 지나 무수리로 들어가는 유적교에서부터 월탄 앞까지 그러니까 대충 오리가 조금 넘는 구간이었다. 강 속은 군데군데 어린 버드나무와 풀들을 기르고 있고 암반에 솟은 바위와 큼직한 바윗돌과 자갈 그리고 하얀 모래가 어울려 있었다.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강은 거칠고 투박하였지만 물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르거나 눈 내리는 소나무는 신선의 모습이다.

방갓다리를 지나 양림산 쪽으로 들어가는 개천이 있었고 먼댕이산 밑으로 흐르는 실개천은 임동마을 앞으로 흐른다. 특별히 방갓다리 앞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멱 감던 각시 바위가 있었다. 바위 밑에 깊은 소(沼)에서 내가 개구리헤엄을 쳤고 빙빙도는 소에 밀려들어 몇 번씩 물을 먹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그런 추억의 바위를 뒷날 축대 쌓기 위해 다이나마이트로 까 부셔버린 것은 원망스럽기 짝이 없다.

겨울에는 책 보따리 허리에 묶고 벼짚 한 묶음을 들고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가서 성냥을 몇 개 부러뜨리며 곱은 손으로 불을 붙여 언 발을 쏘이고 버선을 신고 학교에 갔다. 이것을 애처럽게 바라보던 할머니는 내가 사라진 뒤에야 돌아갔으리라.

여름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다. 무시네(무수리)쪽 제방이 낮아서 홍수가 나면 1년이면 두세 차례 굽은 물살에 둑이 무너지고 들판을 가로질러 섬 땅을 만든다. 홍수가 끝나면 깊고 커다란 방죽에  잉어 가물치 메기 같은 물고기가 많았다. 마을 사람들은 ‘섬밭’이라고 불렀다.

모래밭이기에 동네 사람들은 참외와 수박 농사를 주로 지었다. 우리 수박밭도 가운데 있어서 여름에는 원두막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친구들과 남의 밭에 가서 수박 서리를 했다. 장난으로 하지만 그렇게 먹는 수박이 훨씬 맛있었다. 방죽 옆에 칼처럼 긴 모양의 우리 밭이 있었는데 기름진 밭이어서 고추, 가지, 오이, 동부를 길러 우리 식탁을 풍성케 하였다.

어머니는 온 식구 오줌을 받은 소매 항아리를 이고 밭에 갈 때 나는 따라다니기를 즐겼다. 전쟁이 나고 얼마후에 미군이 B29 비행기에서 기관총으로 방갓다리를 갈긴 그 날도 나는 어머니를 따라 밭에 갔다가 혼쭐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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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하나님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헤엄을 치며 놀다 보면 해가는 줄도 몰랐다. 언제 헤엄을 배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름이면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놀다가 햇볕에 몸을 말리며 백사장에서 모래성을 쌓으면 더없이 행복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강은 친근하면서도 무정하고 완고한 속을 알 수 없는 아버지가 되었다. 신나는 놀이터였던 강이 고통으로 다가온 것은 초등학교를 적성으로 다니게 된 때부터였다.

우리 마을은 행정구역상 유등면에 속하였기 때문에 유등학교로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나를 버릇 나쁜 동네 친구들과 떨어뜨리려 작심하고 적성학교 교장을 찾아가 단독입학을 허락받았다. 유등학교는 적성학교보다 거리상 멀어도 친구들이 함께 다녀서 아침면 시끌벅적 떼지어 학교 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처음 학교에 가는 날은 아버지가 업어서 강을 건너 주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할머니가 함께 물을 건너 주었다. 그러나 그 뒤부터 강을 건너는 일은 나의 일이었다.

물 건너 주막집은 우리동네 생활의 중심이었다. 주막이면서 쉼터요 누구나 머무르는 정거장이면서 소문을 퍼트리는 진원지이었다. 무엇보다 배를 띄워주는 고마움에 마을 모두가 쌀 한 말씩을 내는 권력의 중심이었다. 처음에는 나룻배를 띄우기도 하고 줄배를 놓기도 하였으나 떠내려가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순창장에를 가야 해서 섶다리를 만들지만 소용이 없다. 홍수의 위력은 당해본 사람들은 꿈속에서도 시달린다.

마을에서 강을 건너는 일로 가장 큰 고생을 하는 사람은 나였다. 날마다 강을 건너는데 홍수가 나면 나는 멀리 돌아서 내 친구 길용(吉龍)이 나중에 주지를 한 일광사(日光寺) 아래에 있는 원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야 했다. 

둑 위에 물이 넘실거려서 미끄러지거나 웅덩이 빠질 위험도 컸고 원다리 못 미쳐 채계산 자락에 경사가 심한 절벽을 통과하는 일이 참으로 아슬아슬하였다. 책보를 등에 질끈 묶고 거미처럼 바위에 바짝 붙어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 딛으면 어머니는 등 뒤에서 바둥바둥 올라가는 어린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천천히! 어쩌끄나!”를 반복하며 애간장을 태우곤 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무모한 결정 때문에 외롭게 학교에 다녔다. 1학년 때는 바로 옆집에 사는 해천 형님 딸인 봉선이랑 돌아오는 길에 징검사리를 잡은 기억이 난다. 4학년 때인가는 이씨 마을에 유일한 최씨집의 최장식 형제와 조금 다녔다.

한번은 홍수가 넘실대는 강을 건너기로 작정하였다. 셋이서 옷을 홀랑 벗고 책과 옷을 머리에 이고 손을 꼭 잡고 강을 건널 수 있으리라고 순진한 생각을 하였다. 가운데도 못가서 발밑에 물살에 어찌나 센지 발이 둥둥 떠오르고 잡은 손은 힘없이 떨어지고 우리는 물에 둥둥 떠내려갔다. 하푸 하푸 붉은 황토물을 먹으며 떠내려가고 어른들이 물가를 따라오며 무어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나는 간신히 버드나무가지를 잡고 올라와 늘어져 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때 내게 달려온 할머니가 “아이고 내 새끼 당굴네가 물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했는디 이거 뭐다냐” 하며 울어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책 보따리를 찾았다고 해서 나는 일약 공부벌레 아니 신동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 내가 배운 것은 <물은 겉으로 흐르는 것보다 밑으로 흐르는 힘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 사는 인생길에 거울이 되었다. 사람도 겉보다 내면이 훨씬 깊다.

나는 가끔 그 일의 무용담을 말하며 5리를 떠내려 갔다고 하지만 과장이고 2백미터는 족히 넘었을 것이다. 강가에 사는 일은 이런저런 일로 죽을뻔한 일들을 여러 번 겪는다. 또 많이 죽어갔다. 살아남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선택을 넘어선 운명의 손길에 감사하며 이것을 은혜라는 말에 압축한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내내 나는 학교에서는 집에 갈 일을 생각하고 집에서는 학교에 갈 걱정을 하였다. 학교에 못 갈 거라는 두려움, 집에 못 돌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언제 어디서나 나를 따라다녔다. 강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로 가는 출구이며 불안이었고 집으로 가는 입구이며 또한 두려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은 밥이고 축복이었다.

나물과 생키(소나무 속 껍질)로 춘궁기를 버티다가 더 이상 먹거리가 없을 때 암회색의 은어 떼가 몰려왔다. 은어가 몰려오면 사람들의 얼굴이 덩달아 빛났다. 허기진 배로 우울했던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여럿이 함께 은어를 몰아서 투망을 하였다. 때로는 강을 막고 품어서 은어를 한 곳으로 몰아넣어 잡기도 하였다. 은어는 사람들의 허약해진 기를 살려주었다. 회도 먹고 구이도 먹고 찌개도 먹고 튀겨도 먹으며 마른버짐 피고 궁색이 줄줄 흘렸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윤기가 흘렀다.

마을 앞에서 심초천 물이 섬진강으로 합수되는 곳은 은어가 좋아하는 모든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소(沼)가 깊어 여울이 지고 바닥에 모래와 자갈과 바위들이 깔려있었다. 육지 가까이에 살다가 우리 마을로 올라온 은어들은 돌에 붙은 수초를 먹으며 살았다.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수컷의 몸의 색깔이 달라지는데 등은 검정색으로 바뀌고 배 쪽에 <혼인 띠>라고 불리는 오렌지색 세로줄이 생겼다. 그들은 각자 산란을 위하여 지느러미를 이용하여 산란할 장소를 만들어 알을 낳은 후 암수가 함께 죽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곧 바로 바다로 가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태어났던 우리 마을로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은어는 춘궁기에 누렇게 뜬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낸 만나와 메추라기였다. 은어가 없었으면 누렇게 뜨고 버짐 핀 내 얼굴이 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본명이 징거미 새우인 집게가 달린 아주 큰 새우 징검살이도 있었다. 징거미는 돌 틈과 바위틈에 살아서 돌을 들어 올리거나 큰 돌로 바위를 쳐서 잡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배고파 강 속에 들어가 징거미를 잡아먹고 집으로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노란색 바탕에 검정 무늬가 있는 모래무치는 모래 속에 몸을 파묻고 있어서 발로 강바닥을 자근자근 밟아서 잡았다. 쏘가리, 빠가사리를 잡느라 손가락에 피가 솟을 때 아픔은 일종의 쾌감이었다. 피라미는 어른들이 급물살에서 낚사로만 잡았다. 온 가족이 출동하여 잡은 다슬기는 여름의 별미였다. 다슬기 국물에 수제비를 떼어 넣고 애호박과 부추를 더해 끓이면 그 싸아 한 맛을 잊을 수 없다. 요즘에는 간에 좋다고 애호가들이 늘고 있는데 나는 섬진강 날고기 먹고 간디스토마를 앓아 고등학교까지 약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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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하면 어리축제를 잊을수 없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어리(여러사람에게 이름을 검증함)를 놓는다. 일부 구간만 남겨두고 강 일부를 막은 뒤 한쪽을 깊게 파서 그 곳에 깻묵을 넣고 수수대로 덮는다. 고기들이 그곳으로 몰릴때 온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물을 품고 물구덩이에 갇혀있는 물고기를 가마니로 잡았다. 강변에 가마솥을 두세 개 걸어 매운탕을 끓여서 함께 먹고 마시며 신명이 난 어른들이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노래를 불렀다. 밤새도록 윷을 치고 술을 즐기며 놀았다. 이것이 시골사는 맛이다.

그 때 먹었던 매운탕 맛을 두고두고 찾아보았지만 여직 찾지 못하였다. 그것이 하늘의 선물이었기 때문에 땅에서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야 깨달았다. 누가 말했던가? <그 사람의 몸은 그가 먹은 것이 결정한다>고.

열네 살까지 섬진강을 먹고 마시고 건너며 나는 나도 모르게 섬진강을 닮았다. 어머니처럼 따스하고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독이며 노래를 부르다가도 바닥까지 뒤집힌 강처럼 분노하고 치솟으며 둑을 무너뜨린다. 댐을 허물어뜨리며 낮은 곳으로 거침없이 내려간다. 그러면서 어린 은어와 함께 바다로 나가고 퉁퉁한 모래무치, 순진한 다슬기와 함께 고향을 지킨다.

언제인가부터 적성학교 후배 지북리 김두만이 건너편 주막 대신에 매운탕집을 열어 유명해졌다. 근처 마을은 물론 남원, 전주, 광주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주차장이 좁아 소나무 아래까지 자동차가 즐비하니 몰려왔다. 단속 때문에 지금은 아예 화탄 동네로 들어왔고 사람들이 화탄은 몰라도 매운탕 동네라고 하면 아는 척을 한다.

체계산과 섬진강과 할아버지 형제분이 심은 스무 두 그루의 소나무는 나의 고향의 상징물이다. 나보러 죽어서 어디에 묻히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우리 동네 앞 소나무 밑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해학 대표(사단법인 겨레살림공동체)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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