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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강영섭 목사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목사님을 회고하며(나핵집 목사)
편집부 | 승인 2012.01.27 09:39

                                                                나핵집목사(기장평화공동체운동본부 공동의장)

   
▲ 2007년 7월 평양 방문시 강영섭위원장과 함께 ‘양각도 호텔’     사진제공 나핵집 목사

내가 강영섭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7월 강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평화통일위원장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그 만남에서 남과 북의 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양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북측이 준비한 일정을 변경해서 우리 일행이 비전향장기수들을 만나고 싶다고 한 일을 북측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최선의 노력을 해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일이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자신들이 남한에 있는 동안 교회가 도움을 준 사실에 깊이 감사하는 인사를 하였다.

   
▲ 2003년 7월 평양방문시에 봉수교회 앞에서, 왼쪽부터 문대골,한상열,강영섭,나핵집,이강실            사진제공 나핵집 목사

그 후 2004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아놀즈 하인 개신교아카데미에서 열린 “한반도/조선반도에서의 평화통일을 향한 과정에 있어서의 교회의 역할”에 관한 국제협의회(2004.3.11-15)에서 였다. 이 회의는 독일 개신교협의회(EKD)와 헤쎈 나사우주 총회(EKHN)와 독일 개신교선교국(EMW) 초청으로 열렸다. 여기에 남쪽의 교회대표들과 북쪽의 교회대표들이 초청받았다. 그때 그 자리에서 강영섭위원장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만남은 두 가지 전통을 이어 받은 만남이었다.

1984년 일본의 도잔소에서 시작한 “도잔소 프로세스”의 연장으로 1986년, 1988년, 1990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그리고 1995년 일본 교또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초청으로 이루어진 만남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교회와 독일교회사이의 양자간에 8차에 거쳐 개최된 한,독교회협의회 전통을 따른 만남이었다. 나는 그 회의에 참석하여 강영섭 위원장을 당시 선교부장이었던 리춘구목사의 주선으로 독대할 수 있었다. 강영섭위원장과의 만남에서 1984년 이래 세계교회의 도움으로 남북교회의 만남이 이제 20년이 되었는데 이제 한반도/조선반도에서 만남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구체적으로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으니 금강산 기도회를 시작하자고 제안했고 강위원장은 평양에 가서 답하겠다고 했지만 다음날 리춘구목사를 통해 금강산에서 기도회를 개최하자며 북측의 대표 3명을 내려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그 해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금강산 기도회”(2004. 5.10-12)가 금강산에 있는  김정숙휴양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PROK)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KCF) 사이에 진행되었다.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북측에서는 5명의 대표가 내려왔다. 조그련의 모든 부장급 목사들이 기도회에 함께 한 것이다. 당시 우리가 기도회를 진행한 장소는 김정숙휴양소로서 북측 땅 금강산이었다. 지금은 현대에서 개조하여 금강산호텔로 만들었다. 그해 일본의 도잔소에서 “도잔소 2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인 백도웅 총무와 함께 그 대회에 참여했다. 그 자리에 강영섭위원장이 참여했고 금강산 기도회는 이제 개 교단이 아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함께 해야한다고 요청했다. 강위원장이 그것을 받아드려 그 다음해 계속 기도회를 이어 갈 수 있었다.


   
▲ 2005년 남북금강산기도회 강영섭위원장 친필, 2004년 도잔소에서          사진제공 나핵집 목사
당시 기도회에 대한 강위원장의 집착이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침에 보자고 해서 갔더니 강영섭위원장은 소파에 앉아 기도회 순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자신의 자필로 작성하여 주면서 이렇게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도잔소 20주년이 지났으니 이제 남과 북의 교회가 자주적으로 한반도 안에서 만남을 갖고 세계교회를 초청하여 대화를 나누자고 했다. 도잔소 20주년을 끝으로 이제 남과 북의 만남을 갖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날 저녁 만찬이 있었는데 강영섭위원장의 건배사가 있었다. 건배사의 내용은 “도잔소 이제 끝장냅시다”였다. 거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제 우리가 자주적으로 만남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담은 것이다. 그 후 나는 여러 차례 외국과 평양에서 강영섭위원장을 만났고 한국교회와 조그련 사이의 에큐메니칼 증진을 위해 의논을 해왔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강영섭위원장이 북한교회에 대한 애착과 복음의 정신이 투철하고 민족 사랑이 깊다는 것을 느꼈다. 나이로 보면 아버지 같은 분이지만 항상 부드럽게 모든 일에 협력했고 한번 약속한 것은 한 번도 어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강위원장은 북한의 교회를 위해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봉수교회 건축(예장 통합)과 평양신학원 건축과 신학원운영(감리교) 그리고 봉사활동을 위한 비닐하우스 건설을 했다. 특히 남쪽 교회의 도움을 이끌어 내었고 조그련의 사회봉사활동을 통한 복음전파를 실천했다. 현재 심장병원(여의도 순복음교회)도 진행중에 있다. 강영섭위원장은 특히 세계교회와의 사이에서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물론 외교관으로서 그의 경력도 있지만 언제나 외국에서 진행하는 회의에는 정성을 들여 원고를 준비해 한반도의 평화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곤 했다. 강위원장은 "통일은 외세의 간섭을 막고 우리끼리 합심할 때 가능하다. 한 핏줄을 가진 우리 민족은 너의 기쁨, 나의 아픔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전쟁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특히 한국교회를 향해 당부하고 당부한 것은 "6.15를 살려내고 우리끼리 힘을 합쳐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는데 앞장서자"고 했다.


금강산 기도회(2005. 5.24-26)에서 설교를 하던 내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외국 군사 평론가에 의하면 군사력이 남쪽이 6위이고 북쪽이 7위라고 하는데 둘이 합치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하면서 남쪽의 군사력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쉽지 않은 발언이다. 그리고 이어 "남쪽 기독교인들 중에는 탕자인 북이 회개하기 전에는 지원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탕자가 회개하기 전에 죽어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우회적으로 대북지원에 대한 절박성을 나타내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강영섭위원장은 노령의 연령에도 불구하고 노구를 이끌고 해외에서 초청하면 언제나 응했고 한반도의 평화에 교회가 앞장서 줄 것을 호소했다.


이제 강영섭위원장이 없는 조그련을 누가 이끌고 나갈 것인지 새삼 강위원장의 활동을 회고하면서 그가 남긴 족적들이 남,북한 교회의 에큐메니칼운동사에서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고 열매 맺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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