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공동체론 네 번째 강의는 권진관 교수(성공회대 신학과)가 강사로 참여해 아시아 신학자들에게 아시아란 무엇인지를 아시아 민중과 그들의 문화, 전통, 그리고 삶과 투쟁을 중심으로 강의했다. 아래는 권진관 교수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이찬수

아시아를 발견하기까지

나는 1983년부터 90년까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기본적으로 아시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었다. 40대 초반까지 일본은 몇 번 간 적이 있었지만, 다른 아시아 나라에는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아시아교회협의회 신학회의로 처음 방콕을 방문했다. 열대지방은 처음이었다. 그 이후 일본, 인도네시아, 홍콩, 대만, 싱가폴 등에서 있었던 신학토론회에 참석하면서 아시아를 조금씩 경험하게 되었다. 

굉장히 인상적인 경우는 인도였다. 여태까지 20여년간 인도를 방문하면서 인도의 달리트들을 만났다. 달리트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조차 벗어난 ‘언터쳐블(만질 수 없는)’, 즉 ‘불가촉천민’을 의미한다. 달리트들에게는 가까이 가면 옮이 붙는다고 해서 근처로 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물을 줄 때도 신체에 닿지 않게 위에서 물을 뿌려준다. 인도에는 15%내지 20%가 기독교 혹은 불교인데, 대부분이 달리트들이라고 한다. 인도의 90%를 이루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분 차별이 덜한 이들 종교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도 실제로는 뿌리깊은 카스트제도의 문화 탓에 기독교회 안에서도 차별이 있다.

서양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을 확인하다

최근에 서양 독일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역으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독일인들은 아시아인인 내게 아시아의 이야기를 기대하지, 내가 서양에 대해 이야기하길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요즘 생각해보면 한국의 운명은 아시아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나 싶다. K-POP이나 드라마도 아시아에 수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 사람들의 생각은 외국하면 미국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은 환태평양 국가의 일원으로 간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시아는 아니다. 한반도는 아시아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한국 홀로 서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 속에서 한국이 설 수 있는 것이다. 약소국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아시아 공영권의 구상이 신학자가 상사아는 아시아의 모습이다.

신학자는 아시아를 어떻게 볼까

약소국-소수국의 입장에서 아시아를 봐야 한다. 약자들의 아시아적 공명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신학자가 아시아를 보는 하나의 관점이다. 인도나 파키스탄은 아시아이긴 하지만, 유럽적인 요소도 많다. 인도 문화는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아리안들에 영향 받으며 생겨났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굉장히 복잡하다. 백인 아시아인 호주나 뉴질랜드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아우르는 것이 아시아다. 아시아는 미국과 유럽과 대등한 위치에 도달했고 세계에서 우뚝 설 것이다. 

아시아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역사적으로 미국과 유럽은 자기팽창의 제국주의적인 노선을 택해왔다. 그러나 아시아의 제국들은 일본을 제외하면 자기팽창적 시도를 하지 않았다. 중국이나 인도 역시 그런 경향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는 앞으로 세계를 주도해 나가면서도, 오랜 아시아적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과 지혜를 반영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대학이 아시아에 대해 이해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실로 중요하며 의의가 있다. 학문들, 특히 신학도 아시아적인 학문이 되어야 한다. 유럽, 미국 중심의 학문이 혁파되고, 아시아 중심의 학문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제3세계로서의 아시아

아시아의 근본적인 특징은 많은 나라들이 식민주의의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전제적인 중국이나 인도, 그리고 일본을 제외한, 많은 나라들이 결국은 제국의 제물이 된 적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에서는 식민지적 정신구조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오는 가치관과 문화가 육성될 필요가 있다.  또한 아시아에는 가난의 문제가 있고, 계급과 신분 차별, 특히 여성차별문화가 타파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식민지 잔재의 청산, 친일의 청산,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반성도 필요하다. 

아시아 공동체론은 강대국들이 약소국가들을 흡수하는 것도 아니고, 대국들 중심의 아시아의 통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양성과 화합과 공존과 공영의 아시아가 되어야 한다. 민중 중심의 아시아론, 아래로부터의 아시아론이 필요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한국과 만주, 몽고, 동남아시아는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등을 중심으로, 그리고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중심으로, 일본에서도 소수민족(오키나와) 중심으로 말이다. 

새로운 아시아의 시작을 위하여

아시아의 해방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진보적인 전통, 종교, 문화, 예술의 발굴과 발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열전과 냉전의 경험을 되돌리며,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반전쟁의 역사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고 서로 배우며 함께 해야 한다.

수강생들과 교수의 Q&A

사회복지학과 김효정 : 조화가 필요하지만, 아시아 문화의 경우 가령 가족주의나 성차별을 견지해왔던 유교는 조화에 걸림돌이 되는 측면도 있지 않는가. 

권진관 교수 : 한국인들은 너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경향이 강하다. 아시아로 많이 확산되어야 한다. 최근 외국인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이것들이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고 본다. 내가 아시아에서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가 홍콩이다. 홍콩은 아시아적이기도 하고 유럽적이기도 하다. 동서양에 통하는 보편성이 있다. 우리 한국이 그렇게 보편성을 가지기도 했으면 좋겠다 . 물론 서울에도 많은 외국 사람들이 들어온다. 이들을 잘 수용하는 정책을 펼 때, 더욱 더 한국적이 된다. 또 그렇게 되자는 것이다. 한국적이 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온다. 외국과의 만남 속에서 더 한국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은 극복되어야 한다.

사회복지학과 김주민 : 인도에 관심이 있어서 궁금하다. 인도 내에서는 카스트제도가 뿌리 깊은데 공동체에 대한 노력들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

권진관 교수 : 인도는 법제적으로는 굉장히 민주적이고 선진적이다. 실제적으로 남아있는 카스트제도가 문제일 뿐이다. 인도는 마을 단위에서 노력을 많이 한다. 현재 인도의 경제성장률이 일위인 만큼, 세속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도시영역에서는 카스트가 많이 흐려지고 있다. 겉으로는 신분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에서 종종 특정 카스트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카스트의 걸림돌이 되는 문화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중어중국학과 조경선 : 소수민족 중심으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소수민족이 중국에서 볼 때는 8.5%밖에 안 된다. 이들 중에서는 공산당의 지원 없이는 삶의 영위가 불가능한 사람들도 많다.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 큰 상황에서 소수민족들과 다른 민족들이 기를 펴기 힘든데 왜 소수민족 중심이 필요하다고 하는가.

권진관 교수 : 중국의 한족이 다수 지배민족이다. 나는 지배를 하는 사람보다는 당하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깊은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배계급들은 어떤 면에서 조금 더 오만할 수 있다. 지배민족은 약자에 대한 공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약자의 대항적 문화가 더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정리 :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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