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쉬르에 의하면 언어는 고유한 질서를 가지고 있는 기호들의 체계이다. 그런데 “언어기호가 결합시키는 것은 한 사물과 명칭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과 하나의 청각 영상이다”. “우리는 개념과 청각 영상의 결합을 기호라고 부른다.”

여기서 청각 영상은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라, 소리가 정신에 남기는 인상, 즉 ‘소리의 재현’을 말한다. ‘소리의 재현’에 의해 하나의 개념이 일깨워진다. 소쉬르는 기호에 결합되어 있는 개념과 청각 영상을 각각 기의와 기표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후자의 두 용어는, 때로는 양자를 구분하고 때로는 전체[기호]와 이들을 구분하는 대립성을 나타내 주는 이점이 있다.”

-<은유의 도서관>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글은 내가 쓴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나는 우주의 모든 것을 거의 가지고 있다. 내가 없으면 나의 세상은 소멸된다. 이어지는 세상에 나는 없다. 물론 원자로 흩어진 내 몸의 파편들이 어디선가 다른 물질에 속해 있을 것이고, 내가 남긴 글들을 누군가 읽고는 나를 기억해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모른다.

단순 명료하게 알아본 나이다. 이런 나를 만들어가는 중심점은 무엇인가? 청각이다. 글쓰기가 눈으로 본 것을 주로 기록하는 행위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얼굴에 속해 있는 눈은 몸을 돌리지 않는 이상 뒤를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귀는 사방팔방 다 들을 수가 있다. 그래서 청각이 사람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말과 글쓰기에서 가장 큰 시비가 붙는 게 소리의 재현이다. 개그콘서트의 리얼사운드를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같은 소리를 두고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그들이 올바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글짓기 때 왜 개가 그런 소리를 내느냐고 한두 번 모멸을 겪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은 그게 더 심했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면 인간 취급을 받기 어려웠던 시절, 창의성을 억누른 암흑의 시기였다.

위의 글에 의하면, 청각 영상은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재현이라고 한다. 어떤 소리가 나에게 어떻게 느껴졌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 없듯이 소리도 표현도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또 권위주의 시절을 사는 우리들, 이것만 알아채도 글쓰기에 진전이 있을 것이다.

김서정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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