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십대, 나와 이십대

스물여섯 살.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고, 형과 둘이 경기도에 살고 있다. 대학은 남들만큼 여덟 번의 학기를 마쳤지만 두 번의 학사 경고 때문에 초과 학기를 다녀야 졸업할 수 있다. 졸업해도 새로운 시작을 못 하는 건 군대를 아직 안 간 탓이다. 신학대학 졸업을 앞뒀기에 신대원에 진학해 과정을 밟아 목회지로 나가는 게 그나마 자연스러운 길이겠지만 미자립 교회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암울한 현실에 뛰어들 마음은 없다. 노력하면 길은 열린다는 거짓의 극치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 다가오는 추석 때 친척들이 보기 싫은 것도 현실에 수긍해야 한다는 계명에 복종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뭐 있냐고? 전혀. 노동으로 삼을 일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것 밖에는 하는 일이 없어 요새는 ‘오버워치’라는 PC 게임에 빠져있을 뿐이다. 이십대 중반이 넘어가지만 이십일세기에 하고자 하는 꿈은 건 없다. 가끔 책 읽고 간혹 글 쓰는 것에 그나마 감흥을 느끼긴 해도 성실하지 않아 노동으로 삼을 자신이 없다.

재개발 위협이 아니더라도 유지조차 어려운 동네 서점에서 시간 당 6,100원 짜리 노동을 하면서 꿈도 없이 살고 있는 답답하고 한심하고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대학생의 모습은 다만 나만의 이야기일까? <빨간 약 파란 약> 필진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반복한 것을 보라. ‘대2병’을 앓고, 약함을 고백하고, 스스로를 ‘노답’으로 정체화하는 20대의 자기소개서는 오늘날 엄연한 실재다.

냉소만 남았다

엄기호는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2010)에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20대의 끝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피로하다. 엄기호가 만난 청년들은 명문대생을 질투하고 자신의 상황에 불만족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학생들이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도 없어 원나잇을 즐기거나 내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는 연인은 거절한다. 영화 말곤 취미도 없어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의 모습을 취미로 상정할 뿐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도 극심한데, 단지 극우 정당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그놈이 그놈인 정치인에 관심이 없어 뉴스나 신문도 볼 일이 없고, 그래서 정당의 이름조차 잘 모른다. 하다못해 투표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며 진보 정당이나 대안 정치 세력 따위는 모르거나 불신한다. 이런 냉소적 태도의 끝장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20대인 나조차 그들에게 한심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러나 엄기호는 이런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며 오히려 반문한다. 과연 이 한심해 보이는 이들에게 관심한 적 있냐고.

이들의 속물주의적인 모습을 깊게 바라볼 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잉여로 내쳐진 자들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다. 입시 때는 ‘4당 5락’이라며 수면 시간까지 절약하더니 대학에 와서는 오직 생존만을 위한 정글에서 분투한다. 출생 직후 IMF 사태를 경험했기 때문에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속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가장 처절하게 체화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20대는 열정을 가지라는 말을 따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학점에 자격증에 어학연수에 영혼을 팔거나, 혹은 강한 이상으로 진보 운동 따위에 투신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내부로 진입하려고 하는 순간 엄청난 견제와 간섭이 들어온다. 그 순간 이들은 깨닫게 된다. 자신들은 외부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한순간에 열정은 냉소가 된다.” 그러니까, 보수적 꼰대가 노력하지 않는 20대를 비난하고 진보적 꼰대가 저항하지 않는 20대를 독려하지만 결국 하나인 꼰대는 자기들의 질서에 진입하려는 이들을 존중한 적도 관심한 적도 없다. 그래서 20대는 모두 ‘자기만의 방’이 없는 존재가 되었고, 열정은커녕 오직 냉소만 남았을 뿐이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2015)에서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는 것”이 절대적 환대라고 말한다. 이런 절대적 환대와 더불어 이용할 수 있는 장소를 마땅히 보장 받는 존재야 말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환대나 장소가 없는 존재는 ‘사람이 아닌 인간’일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이 아닌 인간일 뿐인 존재는 그야말로 20대가 아닌가? 지역이니 대학이니 가족이니 출신을 묻고 페이도 없는 열정이 요구되며 실패는 물론 실수에도 대가가 따르는 20대에게 그 어떤 환대가 있었는가. 우리는 한진중공업의 조선 노동자처럼 그림자면 그림자지 사람이 아니다. 친구나 가족 같이 겨우 사적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호의로 삶을 버티는 존재는 그저 동물일 뿐이다.

그래서 나의 비관, 20대의 냉소는 스스로의 책임이 아니다. 단 한 번도 있는 그대로 존중 받거나 환대 받은 적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모른다. 현실이라는 체제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내가 우선 반문하고 싶은 것은, 과연 이게 누구의 책임이냐는 것이다. 내가 읽은 <곡성>은 최소한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대답한다.

누구의 책임인가

뜬소문에 악마라는 존재가 있다고 믿으며 굿을 벌이고 좀비도 못 알아보는 곡성의 무식한 촌놈들처럼, 지금 20대는 타자의 욕망을 따라 자본 중심적 질서에 편승하고서 IMF 질서도 못 알아본 채 ‘탈조선’을 되뇌며 안락한 공간이라는 속물적 희망만 갖고 있다. 평범하고 안전했던 땅에 출현한 악마는 어느덧 가장 깊은 동굴 속까지 잠입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 무당과 결탁해 수호신을 능가한다. 그런데 안전했던 마을을 뒤흔들고 파괴하는 주체는 어디에서 왔는가. 오늘날 자기계발서가 가르치듯 ‘내면’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관객의 PC적 태도를 비웃으며 악마가 명백히 ‘외지인’임을 보여준다. 내부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침투한다. 말하자면 20대에게 보이는 이 속물주의나 무기력, 냉소를 유발한 기제는 그 스스로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결국 이 파괴적 현실을 야기한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말한다. 악마와 맞설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며 이름도 없이 귀신 흉내를 내고 있는 수호신이 바로 그 책임의 주체 아니겠는가? 이미 자본주의는 모든 것과 내통하며 우리의 이미지를 얻어 내고 있는데, 우리를 지켜야 했던 이들은 다만 ‘믿음’을 요구하며 옷깃만 붙잡고 있지는 않았던가. 고통에 대하여 그럴싸한 해명조차 못 하고 오히려 악마의 유혹에 현혹되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나는 바로 이 수호신의 미숙함이야말로 20대를 비관하게 만든 기성세대의 상징이며, 변혁에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좌파의 현실에 대한 조롱이라고 읽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곡성 주민에겐 아무런 죄가 없다. 미끼를 물어 가족도 못 지키는 ‘가(부)장’의 구태 역시도 수호신의 책임이다. 위협에 맞서지 못한 채 그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기에 그들은 열정이니 저항이니 갖은 교리로 포장해 우리에게 객체가 되길 요구했고, 바로 거기에서 무기력과 냉소가 잉태했다.

히스테리증자의 정치

장강명의 소설 『표백』(한겨레출판, 2011)에서 세계 속에 실존이 거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하는 ‘세연’은 자살이 유일한 탈출이자 저항이라고 주변을 설득한다.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과 이 세대의 운명에 대한 분석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넓은 의미의 선언자다.”라고 말하며 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써 자살을 권유한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저항의 행위라는 이 자살은 현실에선 그야말로 무기력, 비관, 냉소의 가장 종국적 행동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 무기력과 비관과 냉소 자체가(‘자살’이 아니라) 이미 저항의 실천이며 급진적 정치라는 것이 『표백』의 주장이라 읽는 것은 오독일까? 그렇지 않다. 소설 속에선 이 ‘자살’이 실제로 20대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되기도 하며, 국가는 이를 막기 위해 정보를 통제하고 경찰력을 투입해 진압한다. 그렇게 대처하는 이유는 그 비관과 냉소가 이미 급진적 정치의 실천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결국 ‘이십’대에게 ‘이십일’세기는 과잉이다. 뿌듯한 학위도 만족할 직장도 안락한 집도 없는 것이 이십대가 처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이십대는 이 땅에 나를 위한 장소 따위가 없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여 ‘탈조선’이라는 탈주를 필요로 하고, 어떤 개혁도 실패할 것을 알기에 ‘죽창’을 통한 투쟁을 이야기한다. 물론 어떤 운동적인, 혹은 정치적인 행동을 조직하는 수준이 아니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실에 대한 강한 회의적 정서가 공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화 속엔 이미 정치가 있다. 때문에 ‘헬조선’ 담론이 그저 인터넷 용어로 기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 냉소 안엔 가장 정확한 인식, 즉 이십대와 이십일세기의 조우 불가능한 간극이라는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어떤 오인은 있다. 경계 밖 국외가 미지와 신비의 영역이기 때문에, 즉 ‘탈조선’이 지시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 공간을 욕망하지만, 자본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도피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메이즈 러너>처럼 미로를 탈출해도 결국 더 넓은 미로에서 보다 척박한 경쟁을 요구받을 뿐이고, <큐브>와 같이 극한의 공포를 벗어난다 해도 지옥 같은 감옥을 벗어났을 뿐, 그곳이 천국은 아니다. 박근혜에게서 벗어날 ‘드림’으로 ‘아메리카’를 향해봤자 마주하는 것은 트럼프다. 따라서 오인된 것은 헬조선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인데, 결국 우리가 탈주할 것은 공간이 아닌 상황이다. 헬조선이 지시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영토적 개념이 아니라 ‘한국 사회’라는 상황적 개념이다. 노동이 소외되고 실존이 부정되며 계급적 분화가 철저한 현실은, 우리가 이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오인에도 불구하고 냉소적 태도가 미래의 도래를 요청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실패든 패배로 끝나지 않고, 또 실패하고 더 낫게 실패하며 어느 ‘곳’에도 천국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 강박증자는 기존의 원칙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이다. 따라서 강박증자는 결국 질서로 편입하며 체제를 수호한다. 하지만 히스테리증자는 정반대로 기존의 질서를 끝까지 회의하는 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 회의하는 히스테리증자가 기존 질서의 결여를 발견할 때 그것을 전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이 히스테리증자만이 혁명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날 우리 20대의 히스테리적 냉소를 극복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것에 반대한다. 오히려 ‘미래 없음’을 선언하는 이 냉소가 끝까지 밀어붙여질 때 파국적 사건은 시작될 것이고, 그제야 마땅한 미래가 기획될 것이다.

이정한 (감신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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