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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왕도 다윗과 솔로몬의 업적을 넘어서면 안 된다?이스라엘 역사 알기 ⒇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1.01.28 16:16

아마샤, 웃시야, 요담의 공동 통치

지난 글에서 「열왕기하 15장」에 나타난 북왕국 왕들의 연대에 잘못되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열왕기하 15장」에서 북왕국의 연대상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남왕국 ‘웃시야(또는 아사랴)’의 재위 기간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이 시기의 남왕국 왕들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남왕국 ‘아사랴’는 「열왕기하 14-15장」과 「역대하 26장」에 나타납니다. 「열왕기」에서는 ‘아사랴’와 ‘웃시야’라는 두 이름이 혼재되어 나오고, 「역대기」에서는 ‘웃시야’로만 사용됩니다. 우리말은 모음으로 인해 이름에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히브리어로 본다면 이 두 이름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아사랴(עזריה)’와 ‘웃시야(עזיה)’는 레쉬(ר) 한 글자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레쉬가 붙은 ‘웃시야’가 왕이 된 이후 붙여진 왕명이라고 보고, ‘아사랴’는 왕이 되기 전에 불렸던 본명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주석에서 이런 언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 본명과 왕명이 과도하게 혼재되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웃시야’가 왕명이고, 「역대기」에서는 오직 ‘웃시야’만 사용하기 때문에 이후로 ‘아사랴’ 대신 ‘웃시야’로 쓰겠습니다. ‘웃시야’의 이름이 두 가지로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제대로 왕위에 오르기 전에 왕정에 참여하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봅니다.

이미 이전 글에서 ‘웃시야’와 그의 아들 ‘요담’의 공동 통치 기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공동 통치의 기간은 나타나지 않지만, 「열왕기하 15장 5절」은 ‘웃시야’가 나병에 걸려 별궁에 거주하였고, 그동안 왕자 ‘요담’이 남왕국을 통치했다고 말합니다.

「열왕기」가 직접적으로 공동 통치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웃시야’의 아버지 ‘아마샤’ 때에도 공동 통치 또는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열왕기하 14장 13절」에 따르면, 남왕국 ‘아마샤’는 북왕국 ‘요아스’와 전쟁을 하였고, 북왕국에 패해 사로잡힙니다.

「열왕기하 14장」은 이후 ‘아마샤’의 상태에 대해 애매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열왕기하 14장 14절」을 보면, 북왕국 ‘요아스’가 남왕국 사람을 볼모로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사람’은 히브리어 ‘벤(아들, בן)’이 사용됩니다. 아이들을 인질로 잡아갔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왕자들을 인질로 잡아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북왕국 ‘요아스’는 남왕국 ‘아마샤’를 놓아주고 인질을 붙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4장 17절」을 보면, ‘아마샤’가 북왕국 ‘요아스’의 죽음 이후에도 15년간 생존했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왕이 나라를 다스렸다고 말할 때 사용되는 ‘말라크(מלך)’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의미의 ‘하야(חיה)’가 사용됩니다. 이는 ‘아마샤’가 북왕국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왕위를 온전히 유지하지 못한 채 생존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은 아마 ‘웃시야’와 공동 통치가 이루어졌거나, ‘웃시야’의 대리청정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웃시야’의 이름이 혼재되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온전히 왕위에 오르지 못한 시기에는 ‘아사랴’로 불렸고, 왕위에 오른 후에는 ‘웃시야’로 불렸기 때문에 그에 관한 기록들 속에서 혼란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웃시야’의 과도하게 긴 재위 기간 52년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밀러/헤이스’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남왕국 ‘요아스’의 죽음부터 ‘요담’의 즉위까지의 연대는 측정 불가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연대는 물음표로 표시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들의 연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북왕국과의 연결점을 통해 대략적인 연대는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남왕국 ‘아마샤’는 분명 북왕국 ‘요아스’ 시대에 왕위에 올랐다가 왕위에서 내려옵니다. 그가 북왕국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은 아니지만, 폐위한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왕국 ‘웃시야’는 북왕국 ‘요아스’ 시대에 왕위에 올라 북왕국 ‘여로보암 2세’ 때에 왕위에서 내려옵니다. 남왕국 ‘요담’은 북왕국 ‘여로보암 2세’ 때에 왕위에 올라 그의 아들 ‘아하스’가 왕위에 오르는 740년까지 남왕국을 다스립니다.

이에 따라 생각해보자면, 아래의 표와 같이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왕들의 연대까지 함께 표에 넣었습니다.

▲ 남북왕국 연대표

앵커 바이블 주석 『ⅡKings』에서 ‘코간’은 이를 기초로 ‘아마샤’의 연대를 주전 798-769년, ‘웃시야’의 연대를 주전 785-733년, ‘요담’의 연대를 주전 758-743년으로 추정하였는데, ‘코간’은 ‘웃시야’가 ‘아하스’ 시대까지 살아있었다고 봅니다. 「열왕기」에 나타난 왕들의 재위 기간을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런 연대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밀러/헤이스’의 경우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는데, 남왕국 ‘아마샤’의 즉위 시점을 북왕국 ‘요아스’ 때가 아닌 북왕국 ‘여호아하스’ 시기로 봅니다. 하지만 연대는 모두 물음표로 표시하기 때문에 꼭 북왕국 ‘여호아하스’ 시기에 왕위에 올랐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재 학자들은 보통 ‘밀러/헤이스’가 제안한 연대나 ‘코간’이 제안한 연대 둘 중 하나를 사용합니다.

주전 8세기 남왕국

연대상의 어려움과 함께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실이 있습니다. 주전 8세기 남왕국의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고고학적 증거들과 함께 생각하면, 우리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열왕기」에서 아시리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때는 「열왕기하 15장 19절」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아시리아 왕 ‘불’은 ‘디글랏빌레셀 3세(주전 744-727년)’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의 무력 통치가 시작된 주전 744년 이후, 남왕국 ‘아하스’ 시대와 북왕국 ‘므나헴’ 이후 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인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디글랏빌레셀 3세’의 침략이 있기 전인 주전 8세기 초반과 중반까지 남왕국과 북왕국은 상당한 발전과 성장과 확장을 이룬 시기였습니다. 그 흔적은 「열왕기하 14-15장」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샤’는 나라를 굳게 세우고(왕하14:5),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셀라 땅을 차지합니다(왕하14:7). ‘웃시야’는 에돔 지역 ‘엘랏’을 건축(혹은 차지)합니다(왕하14:22). ‘요담’은 예루살렘 성전 윗문(베냐민 문)을 건축합니다(왕하15:35).

이와 함께 「역대기」의 기록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대기」에는 「열왕기」보다 조금 더 세부적이고 확대된 내용이 나타납니다. ‘아마샤’의 경우는 에돔 침공에 대한 세부 내용이 나타납니다(대하25:5-16), ‘웃시야’는 블레셋, 아라비아를 점령했으며(대하26:6-7), 암몬으로부터 조공을 받습니다(대하26:8). ‘웃시야’는 예루살렘 성을 정비하였고(대하26:9), 광야에도 망대와 물웅덩이를 만들었고, 목축업과 농업을 장려하였습니다(대하26:10). ‘요담’은 성전 문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였고(대하27:3), 여러 성읍을 건축하였습니다(대하27:4). 또 암몬을 남왕국의 속국으로 만들었습니다(대하27:5).

▲ 지중해 동편 지도 ⓒWikimedia

지난 글에서 사용된 지도에는 엘랏의 위치가 나타나지 않아서 영토 확장의 정도를 판단하기 어려우셨을 것으로 생각되어 조금 더 넓은 지역의 지도를 보려고 합니다.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최대한 성경에 나타난 지명으로 적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엘랏은 에돔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엘랏을 차지하였다는 말은 남왕국의 영토가 상당히 확장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역대하 26장 8절」에 나타난 ‘웃시야의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특히나 항구도시 엘랏을 차지하였다는 점은 상이집트와 쿠쉬 왕국에까지 이르는 해상 무역로를 얻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남왕국이 이집트-팔레스타인-시리아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증거들에 따르면, 주전 8세기 남왕국은 본격적인 국가 체계를 수립합니다. 이전까지는 예루살렘 중심의 도시 국가였지만, 주전 8세기를 지나면서 영토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예루살렘이 국가의 수도이자 중심 도시로 자리 잡은 시기가 주전 8세기였습니다.

또 남왕국 남부 지역 유적들에서는 주전 8세기에 여러 정착지가 생겨났다는 증거를 얻을 수 있었으며, 정착 면적이 주전 9세기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지역도 있습니다. 또 몇몇 요새가 건축된 증거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열왕기」가 「역대기」보다 먼저 기록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열왕기」의 기록을 더 신뢰합니다. 「역대기」의 기록은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전 8세기 남왕국에 관한 기록, 특히 ‘아마샤’, ‘웃시야’, ‘요담’에 관한 「역대기」의 기록은 고고학적 증거에 따라서 신뢰할 만한 기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자신들보다 후대의 집단인 역대기 역사가 집단도 알고 있던 내용을 왜 기록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열왕기」는 히브리어 성경 구분에 따르면 ‘예언서’입니다. 우리의 구분과 같이 ‘역사서’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신앙을 예언자적 사명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왕국 ‘아마샤’, ‘웃시야’, ‘요담’의 치적은 지나치게 축소되어 보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몇 년 전에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너무 고증이 잘 되어서 망한 일본 드라마’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일이 있습니다. 일본 헤이안 시대를 다룬 NHK 사극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장면을 캡처한 글인데, 지금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일본 문화의 황금기인 헤이안 시대를 너무 완벽하게 고증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드라마가 망하고 조기종영했다는 글이었습니다.

▲ 드라마 「타이라노 키요모리」 스틸컷 ⓒNHK

위의 사진은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스틸컷입니다. 일본 헤이안 시대(794-1185년) 일반 백성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후삼국 시대에서 고려시대와 겹쳐지는 시기입니다.

사실 이 글은 조작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저조하기는 했지만, 조기종영하지는 않았습니다. 시청률이 저조했던 이유도 헤이안 시대를 너무 완벽하게 고증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완벽한 고증에 대한 찬사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런 보잘 것 없는 과거의 모습을 불편해하던 일본인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과거 역사를 TV로 보고 싶지, 복식도 후줄근하고 기괴한 문화를 영유하던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제가 판단했을 때, 「열왕기」는 이와 정반대되는 이유로 주전 8세기 남왕국의 역사를 축소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아마샤’에서 ‘요담’으로 이어지는 남왕국은 제대로 된 국가를 수립하였고,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무역을 통해 경제도 활성화 시켰습니다. 안정적인 인구 증가와 도시 건설도 이루었습니다.

어쩌면 열왕기 역사가 집단과 마찬가지로 이런 고고학적 결과가 불편하신 분들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루살렘 중심의 국가 형성은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고학이 보여주는 바는 그렇지 않습니다.

북왕국은 남왕국에 비해 먼저 영토 국가를 이루었는데, 이를 이룬 왕이 사마리아에 수도를 만든 ‘오므리’였고, 국가를 확장시킨 왕이 ‘아합’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유적에서 사마리아와 북왕국 왕에 관한 기록은 종종 발견할 수 있지만, 예루살렘과 남왕국 왕에 관한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남왕국은 타국에 의해 제대로 된 국가로 여겨지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남왕국의 국가적 기반을 세운 왕들이 ‘아마샤’, ‘웃시야’, ‘요담’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세운 남왕국의 역사가 화려해지면 화려해질수록 ‘다윗’과 ‘솔로몬’ 시대는 빛을 잃게 됩니다. 주전 8세기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국가가 탄생했다는 말은 그 이전 남왕국 왕들의 역사를 초라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주전 8세기 남왕국의 역사는 너무나 훌륭한 통치가 이루어진 시기였기 때문에 오히려 외면받고 축소되어 버린 역사입니다. 그런 의도는 「열왕기하 14장 22절」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웃시야’는 에돔 지역 엘랏을 건축하였는데, 이어지는 표현은 ‘유다에 복귀시켰다’입니다.

건축은 새롭게 만들었음을 의미하고 복귀(슈브, שׁוב)시켰다는 말은 예전에 남왕국의 땅이었지만 빼앗겼다 다시 찾았음을 의미합니다. 이 둘은 사실 같이 쓸 수 없는 단어이지만, ‘웃시야’가 성읍을 건축한 것일 뿐이고 그 지역은 본래 남왕국의 영토였던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본래는 「열왕기하 14장 7절」에서 ‘아마샤’가 셀라를 취하였다고 말할 때처럼 ‘취하였다(타파스, תפשׂ)’를 사용해야 옳다고 봅니다. ‘복귀시켰다’는 표현은 열왕기 역사가 집단의 의도로 보입니다.

열왕기의 의도

저는 개인적으로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다윗’과 ‘솔로몬’ 시절의 영화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실제로 그런 역사를 이룬 왕들의 치적을 축소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열왕기」는 이것이 단순한 치적 축소 작업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아마샤’에서 ‘요담’에 이르는 시기의 국가 성장은 「열왕기」가 기록되던 시기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열왕기」는 이들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립니다(왕하14:3; 15:3, 34f 참고). 비록 이들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열왕기」는 이들을 그저 잘 된 왕으로만 평가하지 않습니다. ‘아마샤’는 에돔 점령 이후 마음이 교만해졌다고 북왕국 ‘요아스’의 입을 통해 말합니다(왕하14:9-11). ‘웃시야’의 경우 특별한 이유가 나타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다고 말합니다(왕하15:5). 「역대기」는 이 사건에 독자적인 이유를 붙여놓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남왕국 ‘요아스’에 대해 다룰 때, 다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열왕기하 15장」은 남왕국 ‘웃시야’ 이야기 이후에 북왕국 왕 다섯 명의 이야기가 나타나고 남왕국 ‘요담’ 이야기로 끝납니다. 이 구조 속에서 북왕국 왕들은 폭력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였고, 남왕국 왕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왕위를 마쳤다고 말합니다.

「열왕기하 15장」은 분명히 의도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열왕기」에서 이례적인 상황이 몇 가지 나타납니다. 보통 왕들에 대해 말할 때, ‘~에 대해서는 ~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 ‘~가 장사되었고, ~가 왕이 되었다’로 끝납니다. 이 둘의 순서는 때로 바뀌어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14장 21-22절」에는 이례적인 내용이 나타납니다. ‘아마샤’의 죽음에 대한 언급 이후 ‘웃시야’의 치적이 나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웃시야’에 대한 기본 정보였고, 「열왕기하 15장 1-7절」은 부가 정보라고 말합니다.

또 ‘웃시야’는 나병에 걸리게 되는데, 이스라엘 왕 중에 북왕국과 남왕국을 모두 합하여서 나병에 걸린 왕은 없습니다. 나병이 한센병인지, 일반적인 피부병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왕이 부정하다 여겨지는 상태에 빠졌다는 기록은 ‘웃시야’가 유일합니다. 이런 특이한 언급들 속에서 「열왕기하 15장」의 구조는 열왕기 역사가 집단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북왕국 왕들에 대한 평가에서 빠지지 않는 표현은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열왕기」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여로보암의 죄’는 우상 숭배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지만,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여로보암’은 왕위 찬탈을 이룬 왕입니다. ‘여로보암’이 사람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둘로 가르고 왕위를 찬탈했듯이 북왕국 왕들은 폭력에 의해 자신의 왕위를 빼앗깁니다.

이는 사람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 왕위 찬탈의 죄에 대한 고발로 보일 수 있습니다만, 「열왕기하 15」의 외연을 둘러싸고 있는 남왕국 왕들의 이야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들이 행한 폭력의 결과로 폭력적인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렇다면 폭력만 없다면 잘 사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열왕기」는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왕국의 ‘아마샤’, ‘웃시야’, ‘요담’이 아무리 훌륭한 왕이었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평가는 일부만 좋게 내릴 수 있을 뿐, 그들 삶 전체를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열왕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열왕기」는 역사서가 아니라 예언서입니다. 역사적 실체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신앙을 전하는 책입니다. 비록 우리는 역사적 실체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이들이 전하는 신앙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북왕국의 영광을 재건한 왕, ‘여로보암 2세’와 그의 아버지 ‘요아스’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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