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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형성에 대한 다양한 전승이 있었다출애굽: 이스라엘 과거에 대한 유일한 전승이 아니다 ⑶
랍비 데이비드 프란켈 박사/이성훈 | 승인 2021.12.02 15:46
▲ Horace William Petherick, 「The Exodus」 ⓒ Art UK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찾으셨다

만약 이스라엘이 항상 애굽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어디로부터 나온 것으로 생각되었을까? 신명기 32장, 하아지누(האזינו, 귀를 기울여라) 노래 중 10절을 보자. “주님께서 광야에서 야곱을 찾으셨고, 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려 오는 황야에서(새번역)” 하나님은 광야에서 완전히 속수무책 상태의 이스라엘을 “찾으셨다”라고 말하여지며, 그가 이스라엘을 그곳에서부터 비옥한 땅으로 데려오셨는데, 그곳에서 이스라엘이 살찌우고 반역할 때까지 치유하여 힘을 주셨다(10-15절). 이 노래의 전체 43절은 결코 출애굽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기원은 애굽이라기보다 광야에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명기서에 따르면, 하아지누는 미래의 일어날 사건들을 경고하기 위해 모세가 기록하였다(신명기31:19-22,30; 32:44).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밖으로 막 이끌어 낸 모세에 의해 기록된 노래가 출애굽 사건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틀을 제외한 이 노래 자체에 관한 자세한 연구는 이것이 본래 모세에게 속해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며(34-36절), 비열한 적의 손에 의한 이스라엘의 고난이 이미 일어난 것으로 나타난다(15-30절).

따라서 이 노래는 정착 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몇몇 안 좋았던 시기에 기록되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애굽으로부터 탈출한 이후 광야에서 모세의 관점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이 노래가 출애굽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직 광야에만 집중하고 있는 10절의 진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시와 이를 유포시킨 사람들로 인해, 이스라엘은 애굽 땅으로부터 가나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광야로부터 들어온 것이다.

광야 전승의 중요성

이 전승은 확실한 역사적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광야에서 찾으셨고 그 땅으로 인도하셨는지를 상기하고 있다면, 어떤 이스라엘 집단은 아마 실제로 그곳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유목 생활을 하였고, 포도주를 멀리하며 농사를 짓고 천막에 살았던 레갑인(예레미야 35장)에 해당될 것이다. 확실히 이렇게 엄격한 유목 생활 방식을 보존하지 않은 다른 이들도 여전히 그들의 유목민 기원을 기억하였다.

왜 밭에서 일하며 농작물을 수확하던 사람들이 광야로부터 온 자기 조상들의 기원에 대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겠는가? 왜 그들은 자신의 조상을 농부 대신에 떠돌이 목자로 묘사했겠는가? 아마도 자신들의 기원에 대한 이런 기억을 보존했던 다양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전체가 광야 유랑민에서 시작했고, 결국 이러한 전승을 공유하게 된 또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 기억을 연관시켰고, 마침내 애굽으로부터의 탈출에 관해 그들 자신의 전승들과 이 광야 전승을 연결시켰다고 상상했을 것이다.

바꿔 말해서, 출애굽과 광야 유랑의 모티브는 본래 별개의 모티브 혹은 다른 집단이었으며, 이들은 서로 다른 집단이 이스라엘 형성을 위해 융합되면서 이차적으로 결합되었다.

이스라엘이 광야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상은 다른 구절들에도 적절히 암시되어 있다.

광야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에 근간한 하나님 중심적인 은총 행위는 노예로부터의 해방과는 무관하다. 이 전승에서 하나님은 외세의 예속으로부터의 구원자가 아니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접적이고 독특한 목적을 위한 인간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민족이 아니다(출19:4-6; 레25:55를 보라). 오히려 하나님은 영구적인 정착을 위한 비옥한 땅을 제공하는 분이며, 이스라엘은 다른 존중할 만한 민족들처럼 존중할 만한, 영토를 가진 민족이다.

물론,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거주할 땅을 제공하신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도록 요구받는다(신32:15-18과 비교). 그러나 이 개념에서 이스라엘은 정확하게 성스러운 봉사에 초점을 맞춘 “제사장 나라이자 거룩한 민족(מםלכת כהנים וגוי קדושׁ)”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광야에서 돌보시며 가나안으로 인도한 신에게 충성하므로 다른 민족들과 같은 민족이다.

따라서 존경받을 만한 영토 국가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부정적 외연은 광야인데, 이곳은 사람이 방황하며 위태롭게 살아야만 하는 곳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애굽은 다산의 전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기초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총 개념에 대해 빈약한 외연으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창13:10을 보라).

출애굽의 일반화

애굽에서의 탈출은 어떤 형태로든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 중 제한된 집단이 경험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본래 제한된 집단에 의해 기억되었고 전승되었을 것이다. 이는 왜 우리가 출애굽을 발견하리라 예상하는 많은 본문에서 출애굽이 언급되지 않는지, 왜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기원에 관한 다양한 다른 전승들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는지, 왜 출애굽이 종종 몇몇 본문들에서 부차적 사건으로 확인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성서 기자들이 단일한 전체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더욱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때만, 출애굽은 전체 이스라엘의 사건으로 묘사되었다. 소수의 전승이 모두의 전승이 되었다.

부록: 역사적 출애굽은 존재하는가?

일부 역사학자들은 출애굽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비록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록 출애굽이 일부 본문에서 부차적일지라도, 많은 곳에서 본래의 것이며, 이스라엘의 비교적 초기 전승 일부에 반영되어 있다(예를 들어 민24:8; 호2:17;12:10,14; 암9:7; 시80:9;81:6,11과 비교).

몇몇 학자들은 출애굽 전승이 레위 지파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일부 증거는 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첫째로 애굽식 이름을 지녔으며 출애굽과 연관된 몇몇 레위 지파 인물들이 있다. 물론 가장 유명한 것은 모세이지만, 실로의 제사장인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와 홉니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사무엘상 2장 27-28절은 하나님께서 엘리 가문이 애굽에 있을 때 이스라엘을 위한 제사장으로 섬기도록 선택하셨다는, 토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전승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재구성은 왜 레위인들에게 속한 땅이 없는지 설명할 수 있다. 레위인들이 도착했을 때 그 땅에는 이미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착해 있었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지파를 열거한 드보라의 노래가 왜 레위 지파를 언급하지 않는지도 설명한다. 아마도 그 당시에 레위인들은 애굽에 있었다.

이런 재구성의 대부분은 그럴 듯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아무튼, 출애굽은 본래 전체 이스라엘의 전승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정된 집단의 소규모 경험에 유래한다는 원칙이 내게는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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