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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이해, 기독교 구원 문제와 맞닿아 있다민중신학자 황용연 무지개센터 대표가 말하는 사회적 소수자와 성소수자 문제
이정훈 | 승인 2022.05.23 16:59
▲ 지난 5월16일 무지개센터가 주최한 ‘성소수자 교인 목회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황용연 무지개센터 대표(사진 제일 왼쪽) ⓒ에큐메니안 DB

“그리스도교 핵심적 가르침 중 하나는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내가 당하는 억압에서 해방/구원받는 것이 나를 억압하는 자들의 해방/구원이기도 하고, 내가 관여되어 있는 억압의 당사자들이 해방/구원받는 것이 그 억압에 관여되어 있던 나의 해방/구원이기도 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 이슈는 이 가르침에 가장 잘 들어맞는 예라고 생각해요. 함께 해방/구원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명확하다, 성소수자 문제로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건넬 수 있는 대답으로 말이다. 어려운 주제, 욕 먹기 쉬운 주제로 황용연 ‘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와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 이 같은 대답을 얻었기에 나름 성공적인 인터뷰였다는 느낌이다. 그렇다, 성소수자 문제는 차별과 배제, 혐오라는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서는 안 될 감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문제이다.

‘K’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황 대표

황 대표와의 인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한신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고 봄 학기 마지막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발제 준비 차 기숙사 지하실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그때 동향 선배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한 동향 선배가 그 당시 석사학위 논문을 마치고 학교를 방문했던 황 대표를 소개하며 그랬다.

“K(지금도 그렇지만 ‘한국기독학생회[KSCF]’를 약칭으로 저렇게 부른다) 출신이고 민중신학으로 논문 썼어.”

‘민중신학’이라는 말에 그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논문 하나 주세요.” 하는 처음 인사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건네고 말았다. 그럼에도 흔쾌히 하지만 약간 서글픈 “아, 제본한 논문을 다 나누어줘서 지금 없네요. 나중에 하나 드릴께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못 받아봤다.

그리고 기자도 학교를 졸업하고 한 동안 잊어버리고 살다가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준비 기간부터 관여하게 된 ‘에큐메니안’의 사무실로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한 켠에 자리를 잡으면서 다시 황 대표와의 인연이 이어지게 됐다. 이 503호가 K의 사무실이었고, 그 당시 K 부장간사로 황 대표가 선임되면서 한동안 얼굴을 맞대고 활동했었다.

민중신학자가 현장에 뛰어 들었다

그러던 차에 한동안 일이 바빠 제대로 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는데 어느 날 황 대표가 유학을 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는 귀국해 같은 제도 아래 무엇인가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또 들었다. 결국 작년 하반기에 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에큐메니안에서 필자와 편집장이라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작년 하반기 황 대표가 하려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정말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하는 내심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한국 교계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차별과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범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고 아무리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일부 인사들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교단 내 많은 목회자와 교우들은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고 방패막이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영화 상영회’(「‘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20일 “너에게 가는 길” 상영회 개최」 [2021년 12월19일 기사 참조]와 「<너에게 가는 길>이 퀴어 영화라고?」 [2021년 12월21일 기사 참조])를 주최하고 ‘장애인 문제로 토론회’(「무지개센터, 『유언을 만난 세계』 북토크 진행」 [2022년 2월10일 기사 참조]과 「죽어서야 불려진 이름들, 활자로 다시 살아나다」 [2022년 3월1일 기사 참조])도 개최하고 하나하나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진행해 가는 황 대표의 뚝심이 대단하게 보였다. 기자의 계획으로는 무지개센터 출범에 맞춰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이제서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무엇보다 황 대표는 ‘민중신학자’이다. 별 인기도 없고 여전히 찬밥신세인 민중신학을 연구하는 신학자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황 대표가 하고자 하는 활동에 큰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소수자 혹은 성소수자와 민중신학에서 이야기 하는 ‘민중’ 개념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들어보자.

차별을 목격하고 사회적 소수자와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 가져

▲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오셨기에 익히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새로운 독자들을 위해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로 일하고 있는 황용연 목사입니다.

저는 기독학생운동에 꽤 오래 참여해 왔고 민중신학 연구를 계속해 왔습니다. KSCF 대학부에서 학생회장과 부장간사로 일했고 한백교회 부목사와 이웃사랑교회 임시목사로도 일했습니다. 2007년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가서 12년 반을 지내는 동안에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구요.

2020년에 귀국해서 현재 무지개센터 대표와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먼저 ‘무지개센터’에 대해 여쭈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무지개센터에 대한 소개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무지개센터]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시행한 사회선교사 모집에 사회적 소수자 선교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센터를 만들겠다는 내용으로 지원하여 총회에서 저를 사회선교사로 임명해 주시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진행 또는 계획 중인 사업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개선/문화사업,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는 대화모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 그리고 그 외 소수자 관련 단체들과 함께 하는 연대활동 등이 있구요. 장기적으로는 소수자들의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지원사업이 가능한 역량을 쌓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염두에 두고 있는 생각은 소수자 당사자들의 사회운동과 최대한 가까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성소수자 운동과 장애인운동을 최대한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현재 사무공간은 한국기독교회관 808호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내에 있습니다.

▲ 소수자 혹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회적 소수자 전반을 느슨하게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소수자 이슈에 대해서는 ‘민중신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민중신학의 ‘민중’이라는 용어를 지금 당대의 상황에서 해석한다면 어떤 해석이 가장 적절할까 고민을 계속하다가 접하게 된 말이 소수자인데요. 이 말이 사회적 약자의 취약함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서 세상이 변화되어야 할 것이라는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민중 용어와 잘 결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 꾸준히 연구 작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서는 대체로 소수자 이슈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만 개인적인 계기가 몇 개 있습니다. 2004년에 민주노동당 당직 선거에서 어떤 후보가 성소수자 관련 왜곡발언을 해서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항의시위를 했었는데요. 동조의 뜻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가 뜻을 같이하는 몇몇 사람들을 만나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민주노동당원과 지지자 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요즘 말로 하면 앨라이 모임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 모임으로 활동을 계속하다가 2006년에 어떤 유학생과 소개팅을 할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난 사람과 이런저런 호구조사를 하다가 제가 성소수자 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랬더니 상대편 사람도 자기가 유학 생활 중에 나가는 교회에서 성소수자 지지 활동을 많이 해서 관심이 많다는 거에요. 거기서부터 말문을 트기 시작해서 연애로 이어지고 결혼을 해서 지금 같이 살고 있죠.

민중신학의 ‘민중’과 소수자의 관계

▲ 민중신학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소수자와 민중. 제 기억으로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공저했던 『제국』이 번역되고 이 책 내용 중에 ‘다중’이라는 용어가 회자되면서 민중신학 내에서 이 다중과 민중에 대한 관계성 논의도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공저 형태로 『소수자의 신학』이라는 책도 나왔구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부터 이야기를 풀어 볼까요. 민중신학을 아는 분들이면 익히 아시는 이야기인데 서남동 선생님이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강도만난 사람이라고 하셨죠. 그것은 강도만난 사람이 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 세계의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그 문제를 고치는데 헌신하느냐 아니면 그 문제를 외면하고 인간에서 벗어나느냐의 갈림길에 모든 사람을 소환한다는 뜻이라고 풀이를 하셨는데요.

저는 소수자라는 용어가 이런 서남동 선생님 버전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해석에 꽤 잘 맞는 용어라고 생각해요. 세계의 문제를 드러내서 그걸 고치도록 소환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말씀하신 다중은 솔직히 저도 관심은 가졌지만 논의 자체가 많이 어렵더라구요. 그러면서도 뉘앙스를 받은 건 뭐였냐면 세계가 워낙 촘촘히 네트워크화 되었다 이런 전제에서 작아 보이는 한 가지 문제가 터져도 그것이 네트워크화된 세계에서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터져 버리는 효과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민중/소수자와 연결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네요.

극우와 보수 개신교는 왜 이렇게 성소수자 문제에 공격적일까

▲ 구체적으로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 문제 있어 한국 교회 경직성의 원인을 무엇으로 생각하시는지요. 전세계적으로 봐도 일부 국가, 일부 교단을 제외하고 보수 진영에서는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모습은 동일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 살아서 그런지 유독 크게 보이기는 합니다. 해외에서의 경험이 있으시다면 곁들어 말씀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근대화와 적대 내지는 긴장 관계를 갖게 되는 건 전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아요. 물론 이건 기독교가 그만큼 근대 세계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말도 될 것이고, 그 적대와 긴장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지 적대와 긴장 자체만으로 뭔가 적절하다 아니다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말도 될 테지만요.

어쨌든 이런 적대/긴장 관계의 사례 중에서 성소수자 혐오 이슈는 거기에 찬동하는 자신을 정당화하기에도 좀 더 용이하고(성서를 핑계 댈 수 있으니까요) 거기에 찬동하는 비기독교인들을 만나기에도 더 용이한 이슈 아닌가 싶어요.

전세계적으로 보기에는 앞과 같이 설명이 가능하다면, 한국의 경우에는 기독교가 근대화에 대한 긴장을 똑같이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근대화에 자기들도 한몫했다는 자긍심도 갖고 있죠. 2000년대 들어서 노무현/문재인 등의 리버럴 정권이 세워지면서 한국의 보수주의 진영이 자기들이 주도했(다고 생각하)던 근대화가 부정당한다는 분노를 대대적으로 표출했고 그 표출을 시작한 게 한기총의 광화문 집회였는데요. 그 집회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의 정치적 행보가 사회적 지탄을 받기 시작했죠.

한국에서의 기독교와 근대화의 긴장 관계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고 보이고 그래서 역시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자기 정당화와 다른 이들의 동조 얻기가 좀 더 용이한 성소수자 혐오 이슈에 가담하게 된 거 아닌가 싶어요.

▲ 이러한 경직성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어감이 너무 거친 것 같지만, 효과가 무엇일까요. 실제 그런 이득을 누리고 있을까요.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신할 수 있는 집단 결집 효과라는 차원에서 보면 그런 효과를 누리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새로 결집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 같고요. 나름 ‘사회참여’ 문제에선 낫다는 소리를 듣던 교단에게조차도 그런 움직임이 확산될 지경이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집단 결집이 강화될수록 역효과도 나게 마련인데 그 역효과도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른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에 대한 여론조사를 봐도 기독교인들의 찬성 비율이 계속 올라가기도 하고, 노회 단위로 성소수자 혐오 성명을 낸 어느 교단의 노회에서도 내심의 반대 목소리가 들려오는 사례도 있고 한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사실 한국교회는 성소수자 문제를 방어적 문제로 보는 듯합니다. 현재까지는 교리 상에 있어 칭의 문제와 같이 교회의 넘어지고 일어서는 지점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한국 사회와 교회에 또 다른 이슈가 발생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기독교와 근대화의 적대/긴장 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방어적 자세일 수밖에 없죠. 소위 ‘세상’의 주류는 근대화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질문에서 인용하신 대로 지금껏 그런 긴장 관계에서 촉발된 여러 가지 갈등 사례들이 있었으니 성소수자 혐오 이슈도 그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싶은 것이, 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가 자기들만의 고유의 이슈로 보수적 비기독교인들의 공감까지 얻어낼 만한 이슈가 이제 얼마나 남았나 싶거든요. 가령 코로나19 시절 대면예배 이슈에 보수적 기독교가 꽤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자기들만의 목소리로 고립될 뿐이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될 때까지 꽤 질기게 붙들고 늘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 이 질문 자체가 어패가 있지 않을까 싶지만, 한국교회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개방적이고 전향적인 모습을 취할 때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이 있을까요.

이번에 저희 센터에서 공동주최한 성소수자 교인 목회 토론회에서 나왔던 발표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대표적인 진보교회로 꼽히는 곳인데 최근에 찾아온 청년교인들은 다들 성소수자 문제를 비롯한 소수자 문제에 관심가진 사람들이거나 당사자들이더라는 겁니다. 이 경우가 말씀하신 효과의 한 예가 될 것 같구요.

신학적인 차원에서는 이 문제는 교회의 교회됨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네요. 교회는 만인에 의해 구성되고 만인을 환대하는 곳인데 성소수자를 배척하겠다면 만인에 의해 구성된다는 바로 그 본질을 어기는 일이 되겠죠. 좀 강하게 이야기하면, 성소수자에 대한 '개방적이고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교회가 교회되기 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소수자 문제에 실패하면 한국교회에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을지도

▲ 어떻게 보면 약간 외곽, 학문에 영역에 계시다가 본격적으로 성소수자 문제의 현장 한 가운데로 뛰어 드셨는데요, 외곽에 있을 때와 어떤 차이점이 느껴지셨나요.

현장이라면 무엇보다도 구체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인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직은 현장에 뛰어들기 위한 역량을 키우는 단계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큐앤에이에서 진행하는 성소수자 상담 프로그램에 상담가 자격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교육을 받았는데요. 교육을 받으면서 성소수자 개인을 만나기 위해서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고민을 참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것까지 고민하게 되는 자리였다고 생각해요. 조만간 상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는데 내담자로 만나게 되는 분과 상담가로 만나게 되는 저 모두에게 좋은 변화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매달 에큐메니안에 ‘사회적 소수자와 성소수자 문제’로 칼럼을 쓰고 계시는데요, 주로 어디서 아이디를 얻고 계신가요. 칼럼 계획을 접하고 사실 놀라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오래전부터 고민을 하셨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지지자 모임부터 따지면 근 20년 가까이 고민을 한 셈이지요. 그 동안의 경험과 생각 등이 일단 1차적인 꺼리가 되구요.

사실 이번 연재 칼럼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성소수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고민을 꽤 많이 했었고 신학적 차원의 사고도 진척을 시켰는데 정작 성소수자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을 많이 보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먼저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질문은, 에큐메니안 독자분들이 상당히 개방적인 성향임을 편집장으로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 독자 분들에게야 사족 같은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혹시나 아직 성소수자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교 핵심적 가르침 중 하나는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내가 당하는 억압에서 해방/구원받는 것이 나를 억압하는 자들의 해방/구원이기도 하고, 내가 관여되어 있는 억압의 당사자들이 해방/구원받는 것이 그 억압에 관여되어 있던 나의 해방/구원이기도 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 이슈는 이 가르침에 가장 잘 들어맞는 예라고 생각해요. 함께 해방/구원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인터뷰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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