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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을 이은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칼 바르트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와 문화 ⑸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06.18 15:56
▲ 변증법적 신학 운동을 함께 신학자들. 왼쪽부터 프리드리히 고가르텐,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칼 바르트. ⓒKarl Barth Archive, Basel

바르트는 복음주의적 기독교가 ‘문화적 개신교주의’에 종속되고, 하나님조차도 유력한 신학을 위해 깊이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은 하나님을 자연과 동화시키고 계시를 역사와 동화시킨 것에서 기인한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18세기말 이후 신학은 인간학이 되어 버렸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개신교적인 종합을 파기하고 그것에 대해 정지를 명하고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러한 철저한 분리(diastasis)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신적 본성의 완전한 위엄 가운데서 그리고 절대적으로 유일한 존재와 능력 안에서 참으로 하나님으로서 인정되고, 동시에 인간은 그의 거짓된 신성에서 깨어나 진실로 인간이 되어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르트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은총과 자연, 계시와 종교, 기독교와 문화, 복음과 인본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모든 것이고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렇게 변증법적이고 차별적인 방식으로 말했기 때문에, 때때로 그는 창조 세계를 모독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1)

특히 『로마서 강해』를 근거로 하여 모든 문화에 대한 철저한 반대자로서 간주되기도 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이 부정의 신학에 머물러 버렸다고 비판했다.(2) 그러나 바르트를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 대한 그의 강조는 인간 자신에 의해선 그 어떤 방식으로도 결코 하나님께 이르지 못하지만, 진정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시간과 인간의 실존 속에 돌입해 들어온 하나님과 그의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다리가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신학적으로 의도되어진 것이란 점이 분명하게 말해져야 한다.(3)

바르트가 발견한 사도 바울의 신학

바르트는 바울의 가르침이 우리가 만든 인위적인 종합에 어울리지 않고, 우리의 철학적이거나 문화적인 전제들과도 조정되지도 않으며, 인류의 개선을 위한 열망과 일치하여 해석될 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오히려 바울에 의해 선포된 복음은 인간 자신의 헛된 욕구와 욕망들, 그리고 소위 인간 정신의 위로 향한 발전을 가로막는다. 왜냐하면 복음은 인간의 삶 속에 개입하여 그것을 위기 속에 몰아넣는 심판으로서 위로부터 수직으로 내려오고, 특히 인간의 실존을 전적으로 새로운 기초 위에 올려놓는 은총으로서 위로부터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은 인간의 모든 성취와 소위 문명과 문화에 대해서는 가장 불안하게 하는 비판적인 의미를 갖는다.(4) 바르트가 “모든 육은 풀과 같다”(5)고 말할 때, 그것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한 일종의 상대주의를 뜻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 앞에서 그밖에 모든 것은 정확히 그것과 관련하여 상대적이다. 이것은 바르트가 바울의 오직 은총에 의한 의인의 교리를 철저화시킨 것이고, 그의 주석 모든 곳에서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다.(6)

바울이 선포한 복음에서 인간의 바벨탑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의롭게 하는 은총을 발견한(7) 바르트는 신성화된 문화와 인간의 정신, 자연에 대하여 하나님의 부정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만 그 치유법을 발견하려고 하나님의 심판과 은총의 변증법적인 신학을 태동시켰다. 그는 우선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모든 시도에 대해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과 함께 하나님의 ‘부정’을 선언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결코 하나님의 심판 저편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긍정’을 놓치지 않았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을 심판하실 때, 그것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긍정, 곧 구원이 된다. 바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을 심판하신다. 이것은 그의 위기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부정과 긍정, 인간의 죽음과 삶 양쪽 모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끝이 나타났고 또한 동시에 시작이 나타났다... 그리스도 안에서 높은 자들이건 낮은 자들이건, 혹은 의로운 자이건 불의한 자이건 간에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정지(!) 명령을 받고난 후에 그들은 아버지께로 인도되는 동일한 통로를 얻게 된다.”(8)

만약 바르트가 하나님의 부정 속에서 하나님의 긍정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직면하는 하나님의 부정은 하나님의 긍정에 비추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저 부정은 긍정에서 나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불의와 불경건이 하나님의 용서에 의해서 말소된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반항의 불협화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기본 멜로디에 의해서 압도되고 만다.”(9)

왜 긍정보다 부정을 앞세웠는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거짓된 연속성을 단절시키려고 의도된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은 이렇게 사상의 양극인 하나님 혹은 인간 가운데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의 거짓된 내재적인 연속성을 깨뜨리려는 그 논쟁적인 시기에 있어서 바르트의 강조점은 긍정보다는 초월, 간격, 부정에 있었다.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종교적 자의식 사이에서 동일성을 보았던 19세기 신학의 거짓된 개념들을 그 토대로부터 일소하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적극적인 관계를 교의학적으로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단지 변증법적인 관계에서만 양극을 함께 보고, 그 변증법적 관계에서 ‘부정’을 ‘긍정’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부정’이 그것의 작업을 끝마치고, 내재주의와 범신론의 모든 뿌리를 근절하고 제거하기 전에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의 연합과 일치에 대해 유익하거나 혹은 긍정적인 어떤 단언을 한다면, 그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내재주의란 강한 산성이 그것을 부식시키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10) 그러므로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을 그들의 전적인 차이 가운데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인간은 인간으로 인정하고, 동시에 그들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설명을 중지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르트의 변증법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의 변증법으로 출발하지만 곧 운동의 변증법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말해진, 하나님의 부정에서 하나님의 긍정으로의 위대한 운동의 변증법으로 바뀐다”(11)고 말한 갓세이(J. D. Godsey)의 견해는 부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부정 속에서 하나님의 긍정을 인식했고, 그 부정 속에서 긍정을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바르트가 후에 시인하였듯이, 그 때 부정은 긍정보다 더 크게 그리고 분명하게 울려 퍼져야 했다.(12) 따라서 적절하게 말하면, 바르트의 변증법은 “하나님의 부정에서 하나님의 긍정으로 나아가는 운동의 변증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긍정과 부정의 내용에 대한 충분한 묘사뿐만 아니라 또한 긍정과 부정이 함께 나란히 있는 방법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인식을 수반하는 운동”(13)인 것이다.

이와 같이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에서 현대 문화 속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범신론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 되게 하고 인간을 참으로 인간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거대한 심연을 강조했다. 그는 낭만적이고 불합리한 원리들에 근거하고 있던 종교와 문화의 모든 형식들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그러나 바르트의 주된 목적은 문화 그 자체를 공격하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역사와 문화를 신비화시킨 자유주의 신학과 세계에 대한 그것의 거짓된 긍정을 공격하는데 있었다.

그래서 문화와 세계에 대한 그의 신학적인 부정은 사실은 긍정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 점은 『로마서 강해』 초판을 출판한 그해 가을 탐바하(Tambach)에서 행한 “사회 속의 그리스도인”이란 주목할 만한 강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께로부터 일어나고 하나님을 의미하는 부정은 긍정적이고, 하나님께 근거하지 않은 모든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이다.” “절대적으로 비판적인 역할 속에서 세속 생활에 대해 대립해 있는” 사람만이 “세상적인 것 속에서 하늘나라의 유비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비록 “유비로부터 신적인 실재에로 인도될 어떠한 연속성도” 없을지라도, 이 사람은 “공관 복음서의 비유들”에 정향된 “인생관”을 지닌 사람이다.(14)

『로마서 강해』 제2판 이후 10년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바르트는 역동적인 변증법적 형식 속에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모든 시도에 대해 하나님의 ‘부정’을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한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인간이 스스로 고안해 낸 화해의 원리들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화해의 은총 안에서만 하나님과 하나 되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발견하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긍정’을 말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했을 때, 그의 강조점은 어떤 추상적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신성이 아니라 정확하게 인간에 대한 강력하고 살아 있는 하나님의 충격에 있었고 그러므로 자연과 역사 한 가운데 있는 인간과의 그분의 근접성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15)

따라서 이미 『로마서 강해』에 ‘인간성’에 대한 한없는 강조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적당한 거리 혹은 분리를 성취하려는 치열한 논쟁으로 인하여 긍정적이기보다는 크게 부정적인 어조가 강세를 띠고 있다는 것도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16)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제2판을 완성한 직후인 1921년 가을에 독일의 괴팅겐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그 후 10년간은 바르트에게는 비판적인 반성의 세월들이었다. 바르트는 계속 나아갔고 마침내 변증법적 신학을 넘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반(semi)-펠라기안적인 상호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만 참된 인간성의 창조적인 근원과 보전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체적인 행동을 그의 사고의 중심과 근거로 만들었다. 바르트는 바로 이 근거 위에서 건설적인 신학, 곧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세우기 시작했고, 드디어 신학과 문화 모두에게 파괴적인 하나님과 인간을 혼동하지 않는 진정한 신학적인 문화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17)

이제 『로마서 강해』 초판이 세상에 나온지 정확히 40년째 되는 해인 1959년 봄에 출판된 『교회 교의학』 화해론 제Ⅳ권(3-1)에서 바르트가 우리의 주제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해명하는지 살펴보자. 그러나 먼저 이 긴 세월 동안 바르트의 사상이 어떻게 변해 갔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미주

(1) T. F. Torance, Karl Barth, Biblical and Evangelical Theologian (Edinburgh: T & T, 1990), 최영 옮김,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주의적인 신학자』 (서울: 한들출판사, 1997), 168.

(2) 김영한,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83), 28. “반이 정보다 더 강하며, 은폐됨이 드러남보다 더 강하게 지배되며 은혜보다는 심판, 내재보다는 초월이 강조되는 것이다.”

(3) T. F. Torrance,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주의적 신학자』, 168 이하.

(4)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London: SCM Press LTD., 1962), 49.

(5) K. Barth, The Epistle to the Romans, 6th ed., (trans.) Edwyn C. Hosky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8), 276.

(6)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51.

(7) 오영석, “신학의 학문성과 그 이해의 모형들”, 「한신논문집」제14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1997), 22.

(8) Romans, 69.

(9) Ibid., 94-95.

(10) T. F. Torrance, Karl Barth: An Introduction to his early Theology, 1910-1930, 84 이하. 변증법적 신학 방법에 대한 바르트 자신의 설명에 대해서는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206 이하 참고.

(11) J. D. Godsey가 서문과 후기를 쓴 Karl Barth, How I Changed My Mind (Richmond: John Know Press, 1966), 김희은 옮김, 『바르트 사상의 변화』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1), 39.

(12)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 Ⅱ/1에서 그 당시의 그의 열정적인 사상과 글을 회고하며, 그것이 일방적이고 너무 부정적인 인상을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의 견해를 비판했던 자들보다도 자신이 열 배나 더 옳았다고 주장한다. CDⅡ/1, 635 이하 참고.

(13) R. J. Palma, Karl Barth’s Theology of Culture, 19 이하.

(14) K. Barth,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294, 305, 303, 321.

(15) K. Barth, L'Humanité de Dieu (Genève: Labor et Fides, 1956), 19 이하.

(16) T. F. Torrance,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주의적 신학자」, 56.

(17) Ibid., 57. 바르트는 1932년 “하나님의 말씀론”이라는 제목으로 『교회 교의학』 제1권을 출판하기 시작하여, 1960년 “화해론Ⅳ/3-2”에 이르기까지 28년 동안 12권의 교의학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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