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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당신에게, 어떤 죽음을 희망하는가?한 사람에 관한 치유적 상담 이야기 (2)
한선영 박사(치유공간 느낌 대표) | 승인 2023.05.06 00:31
▲ 누구도 스스로 삶을 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없다. ⓒGetty Images

오늘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상담 장면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저의 내담자들 중에는 죽고 싶은 마음과 사투를 벌이는 분들도 계시고, 또 가족이나 친구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오랜 기간 고통스러워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상담을 구조화할 때 초기 면접 상담에서 아예 자살사고와 시도 경험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서약을 받기도 합니다.

상담실은 하나의 작은 사회이기도 합니다. 사회와 상담실의 차이는 이미 존재하는 현상들이나 경험들을 드러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상담실에서는 바깥에서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주제들을 자유로이 표현하고 다룹니다. 죽음이 바로 그러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얼마 전 한 내담자와의 상담에서 죽음의 종류를 낱낱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가족 2명을 잃은 성인이었죠. 자연사, 돌발사, 사고사, 병사, 자살, 재난사 등 죽음의 종류를 짚어가면서 ‘또 뭐가 있더라?' 이렇게 질문을 하며 무겁지 않게 죽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떻게 죽고 싶은가?’

이 질문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만큼 중요한 물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만큼이나 죽음도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는 실제(reality)이기 때문입니다. 삶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중요한 한 면을 모른 척 하면서 살아가는 반쪽 삶인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내 옆으로 가까이 데리고 와서 수용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삶을 온전히 향유하는 것입니다.

저의 내담자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그 바람 안에는 가족 2명을 아깝게 잃은 슬픔이 녹아있고,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자 하는 삶에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니 저도 내담자와 크게 다르지 않네요. 저도 제가 살고 싶은 삶을 살다가 수명이 다하여 죽고 싶습니다. 제가 살고 싶은 삶은 저란 존재를 통해 누군가, 그리고 세상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밝아지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그 일이 상담이고 이 일을 하는 것이 퍽 만족스러우나, 혹 다른 일이어도 저의 희망은 같습니다. 잘 할 수 있는 일들로 힘든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세상에 기여도 하면서 살다가 죽는 것!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들을 할 때 저는 제가 잘 살아가고 있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네, 지금 저는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살고 싶은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삶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서로 붙어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3 세대 인지행동치료 중 하나인 수용전념치료(ACT)에서는 병리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습니다.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이죠. 가치에 기반 한 삶에서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얼마나 소유했으며, 어느 학교 출신인가 등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됩니다. 정신 병리는 이러한 수단들이 삶의 목적이나 가치가 된데서 생겨납니다.

실존주의에 영향을 받은 폴 틸리히는 불안에는 ‘실존적 불안’과 ‘병리적 불안’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실존적 불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유한성이 있다는 것을 마주할 때 생겨나는 불안입니다. 이러한 실존적 불안은 수용하면 할수록 성숙에 이르게 됩니다. 한편 병리적 불안은 실존적 불안을 외면하는 데서 생겨납니다. 죽음과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고 끝도 없이 바벨탑을 쌓아가며 폭식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가운데 만나지는 불안이며 존재론적 의미에서 치료의 대상입니다.

살아있는 장례식

죽음과 관련한 저의 또 다른 희망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죽기 전에 몸과 마음에 아직 힘이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당신이 나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 존재인지 전하는 것입니다. 또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이라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다고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가족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면 좋겠고, 긴 시간동안 마음을 나눠온 친구들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 동안에는 평소 잘 듣는 음악과 좋아하는 그림들이 공간에 있다면 좋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그득해지네요. 책 ‘모리의 화요일’에 나오는 살아있는 장례식 장면을 살짝 컨닝했습니다. 루게릭병을 앓던 모리교수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 친구, 제자들을 불러 소중한 시간을 갖는 장면이었죠. 이 장면에 크게 감동을 받아 '살아있는 장례식 플래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살짝 생기기도 했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

거의 글의 막바지에 와서 이 글을 쓰려고 한 이유인, 죽고 싶은 마음이 순간순간 들이닥치는 이들에게 부족하지만 조심스레 저의 마음 한 자락을 건넵니다.

당신처럼 선하고 여리고 좋은 사람이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면
그 만큼 상당히 고통스럽고 힘들었다는 말이겠지요.
그렇지만 않다면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쭉쭉 뻗어나갈 나무 같은 사람이 바로 당신일 텐데 말입니다.

이런 사람

쭉쭉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나무 같은 사람
막힘없이 흐르고 큰 돌도 쉽게 지나가는 냇물 같은 사람
마음 맞는 사람과 와하하 웃고 장난치는 사람
그러다 여린 생명을 만나면 그 곁에 가만히 머무는 사람

당신은 원래는 이런 사람
지금도 여전히 이런 사람

-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었을까요?
-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을까요?
-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한선영 박사(심리상담센터 치유공간 느낌 대표)는 심리 상담으로 한 사람의 작지만 미세한 변화를 기적으로 여기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한선영 박사(치유공간 느낌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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