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ice Sheppard and Laurel Lawson perform “Excerpt from Snapshot (Minsky’s Burlesque, New Jersey, ca. 1954)” ⓒWikimediaCommons

불구(不具)의 정치

장애여성운동단체 ‘장애여성공감’은 ‘창립 20주년 선언문’(1)에서 ‘불구의 정치’를 선언했다. 장애인 운동의 지금까지의 전개 과정에는 장애인을 불완전한 존재로 폄하하는 어휘들의 사용을 반대하는 운동이 동반되었고 불구도 그런 언어의 하나였는데, 이 불구 어휘에 적극적인 의미부여를 하여 정치적 의미까지 담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장애여성공감이 주장하는 ‘불구의 정치’는 장애여성이 몸의 차이로 인해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는 경험과 위치가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들의 존재를 일깨우며 정상성을 강요받는 다른 몸들과 만난다(2)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장애여성이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배제당하는 ‘불구의 몸’을 갖고 있다면, 이 ‘불구의 몸’은 성적 위계에 따라 존재의 가치가 다르게 매겨지는 현실을 뒤집지 않는다면 성적 폭력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고발한다.

또한 장애를 가진 여성의 성적 자유와 결정을 가로막는 장벽에 도전하는 ‘불구의 몸’은 사회를 향해서 장애인에게 성별정체성과 성적 권리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여성 안에도 몸의 차이와 위계가 있다는 점을 환기하여 비장애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에도 도전한다.(3) 그리하여 이 불구의 정치는 사회와 국가가 장애여성을 비롯해 온전하지 못한 기능이나 스스로 구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할 때 바로 그 시공간에서 발생한다.(4)

장애여성공감의 현 대표이며 비장애인 활동가인 이진희는 장애여성운동에는 장애인/비장애인이, 그리고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몸을 배우고 그 안에서 친밀감과 긴장을 주고 받으면서 그 결과로 그 긴장에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5) 이 과정의 예를 하나 들면, 단체 창립 초기 장애여성공감의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책상 의자를 넣고 다니라는 말이었다. 그 이유는 휠체어가 지나다녀야 했기 때문이다.(6)

이런 과정은 장애인은 이럴 것이라는 추측이나 이렇게 대하면 된다는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으며 비장애인은 끊임없이 몸으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알아들을 때까지 반복적인 설명 노동을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또한 장애인 한 사람과 이런 과정을 밟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장애인과는 다시 밟아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7) 불구의 정치는 이런 과정을 장애인/비장애인, 그리고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 모두가 밟아나가면서 이루어지는 과정인 것이다.

외국에서도 크립(creep)이라는 어휘를 위에서 이야기한 불구의 경우와 같은 재해석을 하여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 예로 2019년 에이미 햄라이와 캘리 프리츠는 ‘크립 테크노사이언스 선언’(Crip Technoscience Manifesto)을 발표했는데, 이 선언에서는 크립 테크노사이언스의 원칙으로 1) 장애인을 지식인이자 제작자로서 중심에 둔다, 2) 통합이 아닌 정치적 마찰과 논쟁의 장소로서 ‘접근성’을 드러낸다, 3) 정치적 기술로서의 상호 의존성을 중시한다, 4) 장애 정의 실현의 초점을 맞춘다 등을 제안하고 있다.(8)

사이보그로서의 장애인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개조한 인간이 사이보그라면, 손상의 보완을 위해서 여러 가지 보철물을 사용하는 장애인은 사이보그와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고 파악될 수 있다. 보철물과 신체의 결합이라는 조건은 장애인에게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 양쪽 모두의 조건이 된다.

보철물을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그 보철물 중의 적어도 일부가 자기 자신의 몸으로 통합되는 감각을 갖는 경우가 있다. 김원영이 소개하는, 의족을 갖고 일하는 노동자가 노동하던 도중 의족이 손상당한 것을 산업재해로, 즉 신체의 손상으로 인정받은 경우(9)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체와 보철물의 결합은 껄끄러움을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껄끄러움은 위에서 지적한 자기 자신의 몸으로 통합되는 감각을 주는 보철물인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 『사이보그가 되다』에 나온 몇 가지 예를 들면, 보청기는 귀에 이물감을 주고 습진을 낳을 수 있으며 의족은 원래의 다리를 짓누르고 티눈을 생기게 할 수도 있다. 오래된 전동 휠체어는 사용 도중 방전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보철물을 포함하여, 장애인의 신체는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으며, 장애인에게 적용된 기술이 보편적인 기술 발전을 선도하는 경우도 꽤 있다. 김초엽의 지적에 의하면 보청기 산업은 전자 제품의 소형화를 이끈 트랜지스터, 집적회로 등이 가장 먼저 적용되는 산업이었으며,(10) 주름 빨대, LP 레코드,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도 장애인을 위해 먼저 개발된 기술들이 보편화된 것이다.(11)

그런데 장애인의 신체와 기술이 연결될 때의 통속적인 상상 중 하나는 기술의 발전이 장애를 종식할 것이라는 상상이다. 이런 상상이 일정한 영향을 끼치면서 장애인 관련 기술 중 주목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장애인의 손상에 대한 보완을 비장애인의 통념에 맞추는 방향으로 발달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보행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의 보행과 비슷한 형태를 취할 수 있게 하는 웨어러블 로봇 기술이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12)

그러나 장애인의 신체와 기술이 맺는 현실적인 관계는 각각의 장애인이 자신과 연결된 네트워크의 각 지점에서 발동되는 (평범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기술의 결합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얻는 관계이다. 장애인의 신체가 이런 평범한 기술의 네트워크를 작동시키고 그것을 지탱하고 견딘다는 점에서 김원영은 이러한 장애인의 신체와 기술의 결합관계를 ‘청테이프형 사이보그’라고 칭한다.(13)

장애인을 이런 청테이프형 사이보그라고 바라볼 때 그 존재 구조 곳곳에는 이음새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결합하거나, 중증 뇌병변장애인이 휠체어와 결합하고 다시 그 휠체어를 미는 활동지원사와 결합할 때 곳곳에 이음새가 발생하고 그 이음새는 어긋남과 불화, 그리고 그 어긋남과 불화를 넘어서는 결합이 일어나는 장이 된다.(14) 이렇게 장애인의 존재 조건의 핵심 중 하나가 되는 이음새는 기술 발전에 대한 자본주의적 환상이 약속하는, 자동화되어 주체가 따라가기만 하면 매끄러운 세상에 대한 걸림돌 구실도 하게 될 것이다.(15)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