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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로부터의 구원영등포산업선교회 기독청년 노동훈련 최종 보고서 (5)
이창기 | 승인 2023.07.28 01:27
▲ 이창기 청년 ⓒ임석규

불안의 연속: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안전에 관하여

두 달간 비정규직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번 돈은 300만원이 채 안되는 액수였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지정한 정규직 노동자의 2023년 최저월급(1)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열심히 돈을 벌기에는 노동강도가 너무나도 강해서 장기간 매일 출근하기 어려웠고, 근무 현장도 위험했으며, 책임지는 본사도 없었다. 몸이 아파서 누워 있으면 건강상태보다는 병원비와 생활비에 대한 걱정이 앞섰고, 일터에서는 이렇게 일해서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해외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여가 더 높게 책정된다는데 왜 한국사회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더 낮게 책정하는지, 우리 사회도 저 멀리 유럽국가에서 시행하는 것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과 임금이 적절히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 비정규직 노동으로도 충분히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볼 수 있는 사회로 변화될 수 있는지, 교회가 노동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어떤 일에 힘써야 할지 여러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관계의 단절

동료들과의 관계 단절은 특히 건설현장에서 많이 느꼈다. 인력소와 매일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하는 일용직 근무의 특성상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은 자주 바뀌었다. 또한 건설사 직원들은 인부들끼리 모여서 얘기하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조원들과 함께 각자가 청소할 구역을 정하면 말없이 청소만 해야 했다. 행여나 인부들이 같이 붙어서 일하는 것을 보면 건설사 직원들이 나무라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 잠깐 서로의 인적사항과 배경을 나누는 것 외에 더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는, 느슨한 연대조차 이루어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혐오

성별에 따른 분업화는 공장을 다니는 내내 눈에 띄었다. 고기를 써는 일과 택배 포장은 ‘힘센’ 남성들이, 고기 포장은 ‘섬세한’ 여성들의 몫이었다. 공장 내부 청소를 할 때도 대걸레로 바닥을 쓸고 닦는 것은 남성들이, 칼과 고기 손질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을 설거지하는 것은 여성들이 분담했다.

할 일이 없는 여성 동료가 남성 들과 함께 짐을 옮길 경우 직원들은 남성들이 하면 된다고 그를 만류하는 것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성별 분업은 명확했다. 의사결정을 내리고 공장 직원들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책임감 있는 직책에는 남성들이 있었으며 여성 직원들은 책임자들의 지시에 따라 아르바이트생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건설현장에서는 여성혐오와 이주민노동자를 향한 적대감이 동시에 드러났다. 쉬는 시간에 인부들끼리 주고받는 음담패설과 온라인 포르노는 나로 하여금 동료들과 거리를 두게 했다. 한 20대 동료는 주상복합 주차장에 만들어진 여성 전용 주차칸을 보며 왜 저런 것들을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한 사설 업체에서 주상복합 계단 물청소를 하러 왔다. 알고보니 물청소 노동자들은 중국에서 온 이주민 여성들이었다. 나와 같이 빗자루질을 하던 동료들은 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중국인들한테 일 배우기 싫으면 지금부터라도 빨리 기술이랑 실력을 쌓으라는 혐오발언을 조언인냥 늘어놓았다.

위생

공장에서든 건설현장에서든 위생은 엉망이었다. 힘들게 썰어서 상품화한 한우를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거나 나도 사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생산 과정이 얼마나 비위생적인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고기를 썰고 있는데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생산실에 들어와서 칼날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생산팀 작업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관료처럼 멀끔한 차림을 한 그는 처음보는 휴대용 전자기 기를 칼날에 대보기도 하면서 수치를 조사하는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그는 생산팀 직원을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목소리가 컸던 그 생산팀 직원은 이번에 새로 구매한 칼인데 이상하다며 그럴리 없다고 했다. 그 직원의 말을 들으며 칼을 살피던 사람은 위생사였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생산실 직원은 칼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다는 위생사의 조언을 부정하는 것이겠다고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도마의 위생상태도 그리 깔끔하지 않았다. 평소에 도마는 스크래퍼(헤라)를 이용해 고기 찌꺼기를 긁어내는 방식으로 관리된다. 그러나 그것은 도마에 난 흠집에 낀 찌꺼기까지 긁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기 찌꺼기는 분홍색을 띄지만 흠집 사이에 묻어 있는 찌꺼기는 회색빛을 띈다.

한 달간 공장 근무를 하며 도마를 제대로 청소했던 것은 딱 한 번이다. 따뜻한 물에 청소용 세재를 풀어서 도마 위에 뿌렸다. 그러고는 스크래퍼로 평소보다 열심히 묵은 때들이 벗겨냈다. 그러나 이마 저도 고기 손질이 마무리 되어 갈 즈음에 시행했기 때문에 이미 많은 고기들은 비위 생적인 도마 위에서 손질되고 포장됐다.

건설현장은 어떨까? 얼마 전 건설현장에 화장실이 없어 인부들이 건물 내부에 일명 ‘똥방’을 정해놓고 무분별하게 배변을 하며 그 위에 시멘트 칠을 해서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만든다는 소식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다.

하지만 나는 그 소식이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일했던 건설현장도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 주차장을 청소하던 중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서 우리 조원들에 게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물어봤다. 그들은 그냥 구석 아무데나 가서 싸라고 말했다. 우리가 청소하던 지하주차장은 이미 페인트칠까지 마쳐서 방문객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으나 동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 조원들은 차가 생각보다 많다며 이제는 아무데나 싸면 안 되겠다고 입을 모았다.

산업 폐기물: 기후정의 (1)

많은 이들이 지구별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화석 연료에 기반한 산업을 손꼽는다. 그러나 어디 화석연료만의 문제일까. 각 산업 현장에서 폐기되는 막대한 양의 쓰레기는 우리네 땅을 황폐화시키며 수질을 오염시킨다. 한우공장은 폐기물을 쏟아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손질된 고기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채 비닐 포장지에 압축 및 밀봉된다. 택배 발송시 고기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아이스팩과 함께 스티로폼 박스가 사용된다. 이런 방식으로 처리한 주문 건수가 눈으로만 몇 백건은 되어 보인다.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을 사용하는 업체가 어디 이곳 뿐이랴. 공장에서 버려지는 산업 페기물의 발생량이 상당하다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건설현장 역시 심각하다. 건설현장에서는 건설 자재가 담긴 종이 박스 말고는 분리수거 자체를 하지 않는다. 한 포대자루에 시멘트 가루, 담배꽁초, 비닐 포장지, 건설용 스티로폼 부스러기, 휘어지고 녹슨 철근 등 온갖 폐기물들이 뒤섞여 들어간다. 그 포대자루는 건설사 현장 사무실이 있는 컨테이너 박스 옆 공터에 무분별하게 방치 됐다가 한꺼번에 트럭이 싣고 어디론가 떠난다. 과언 그 폐기물들은 어디로 갈까.

동물권: 기후정의 (2)

인간의 먹거리가 동물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의식은 중학교에서 만난 한 선생님께서 동물권과 관련된 다큐멘터리(2)를 소개해주신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저 내 입에 넣는 맛있는 고기로만 생각했던 존재들이 한 때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이었고 인간의 탐욕을 위해 태어나 폭력과 억압 속에서 지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해준 작품. 성인이 된 이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양한 일자리를 경험해봤지만 식품산업 분야는 이번 노동훈련을 통해 처음 경험해봤다.

소 한 마리를 잡아도 조금밖에 나오지 않아서 귀하다는 안심이 도마 위에 쌓이고 쌓여서 더이상 놓을 자리가 없게 되는 광경을 보며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 다. 거대한 냉장창고에 쌓인 고기덩어리들이 유통기한이 지나서 폐기처분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태어나고 희생되는 동물들이 비참한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고기를 손질하며 도마 위에 번지고 하얀 면장갑으로 스며드는 피는 역한 냄새를 풍긴다. 어느 날 공장에서 고기를 썰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만약 내가 지금 썰고 있는 고기가 소가 아닌 사람이었다면, 만약 인간 보다 더 강력 하고 종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인간들을 우리에 가두고 대량으로 도축한다면 인간의 삶은 어땠을까. 왜 인류는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일까.

한국교회의 변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 현장에서 발견한 소외는 결코 노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기후위기, 가부장제, 인종주의, 육체노동에 대한 경멸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문제라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여성·생태·정치 문제를 연구한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소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자기 소외는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이다. (중략) 그것은 ‘역사적 과업’의 무대 위에 등장한 것이며, 그 무대에서만 지속되거나 극복될 것이다.”(3)

이어서 죌레는 좋은 노동은 개인, 공동체, 그리고 자연을 고려하는 것이라며 모든 생명이 소외로부터 극복되는 차원으로서의 노동이 회복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는 노동자들과 뭇생명들과 어떻게 연대하고 행동할 것인가.

그러나 거시적 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노동자들 간의 관계형성을 통한 소속감 형성이 가능한 환경도 중요할 것 같다. 건설현장에서 일할 때, 한우공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소외감을 느꼈다. 나는 사람이 아닌 그저 저렴한 값에 고용된 부품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겠지만,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 는 현장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건설현장은 공장과는 달리 매일 인력소와 새로 계약을 해야 일할 수 있었고 그날 내가 어느 현장으로 파견될지 알 수 없었다. 즉, 노동자들끼리 관계 형성이 어려운 시스템이었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내가 지금 발딛고 서 있는 현장에서 나는 어떤 존재며, 왜 여기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건설현장에서는 내 존재를 인정해주는 이름 ‘이창기’보다는 그때그때 부리기 편한 ‘야’ 또는 ‘반장님’으로 불렸다.

한우공장에서 일할 때 하루는 직원 이모님이 “창기 씨, 여기 와서 이것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하며 내 이름을 불렀는데 “친구야.”로 불렸던 그전보다 내가 이 공장의 일원이 되었다는 소속감을 느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우공장에서는 건설현장과는 달리 알바생들 간의 대화와 관계형성이 가능했다. 항상 붙어서 일했고,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었으며, 매일매일 만나며 서로의 얼굴을 익혀갈 수 있었다.

한국교회의 구성원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소외가 일어나는 노동현장에 서 어떤 구체적인 실천들을 도모해볼 수 있을지 질문한다면 노동자 개인이 고립되지 않도록 공장이나 건설현장 같은 현장에서 고정된 소그룹을 만드는 것을 의무화시키는 법을 제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동자들 간에 관계형성을 위해 대화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외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머리만이 아닌 온몸으로 부딪히며 직면한 소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강력하게 생명을 감퇴시키는 힘 그 자체였다. 더 나아가 그 힘은 분명 성경말씀에 위배되는 질서였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있어서는 퇴행하는 길을 보여온 한국교회. 예배당에서만 선포되는 하나님의 정의와 이웃사랑은 그저 노동자들의 고통을 방관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글과 머리로만 이해하는 세상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교회가 관조하거나 방관하는 죄를 회개하고 참여하기를 바란다. 뭇생명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변혁적인 노력을 통해 노동자 자신과 이웃 노동자들간의 생명이 존중받을 때 자본을 중심으로 구성된 소외된 형태의 노동은 이 세상을 더 충만하게 가꾸어가는 생명력 있는 것으로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게 창조하신 생명과 함께 호흡하고 발맞추려는 참여 와 변혁이 우리를 소외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미주

(1) 최저임금위원회가 지정한 2023년 최저임금은 시급 9,620원, 일급 76,960원, 월급 2,010,580원(주 40 시간, 유급주휴 8시간 포함)이다. 출처: https://www.minimumwage.go.kr/main.do
(2) 숀 몬슨, “지구생명체”, 2005, 90분, 다큐멘터리.
(3) 도로테 죌레, 『사랑과 노동』, 분도출판사, 서울, 2018, 99쪽.

이창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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