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둘이서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한 친구가 발을 헛디뎌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수렁에 빠진 친구는 자꾸 힘을 잃어가고 상황은 어렵게만 흘러갔습니다. 밖에 있던 친구가 이것저것 도움을 주는 척 하더니 갑자기 메고 있던 총을 친구에게 겨누는 것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돕지는 못할망정 살의를 품고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위에 있는 친구를 바라보는 이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수렁을 빠져 나온 친구는 총을 겨누던 사내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총을 겨누었던 사내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자네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 것이 아니라 자네의 포기하려는 절망을 향해 총을 겨눈 것일세.”

여러분에게는 이런 친구가 있습니까? 진정 내가 죽음 같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이 절망의 늪으로부터 구해줄 총구를 지닌 친구가 있습니까?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신앙인에게 이 총구가 예수의 십자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생이 모든 희망에서 끊겨져 절망의 깊은 나락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희망의 징표로 삼으신 것은 아닐까? 십자가! 그것은 두려움과 죽음을 상징하지만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생명과 부활이 숨겨져 있습니다. 마치 늪에 빠진 친구에게 겨눈 총구의 진실을 알기 전에는 그것이 죽음의 몸짓이었지만 사실은 생명의 몸짓, 살림의 몸짓이었던 것처럼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가 신앙적 깨달음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곧 부활이요 생명의 소식인 것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참 많은 절망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강원도에서 연이어 들려온 젊은이들의 자살 소식을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아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 많은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살기가 좋아졌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더 깊은 절망이라는 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생의 진짜문제는 우리가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 빠져 있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생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외적 환경과 조건이 있습니다만 예컨대 사업에 실패 했다든지, 애인이 변심을 했다든지, 돈이 떨어져서 배가 고프다든지, 하는 일마다 실패와 좌절 혹은 방해와 반대에 부딪힌다든지 하는 그런 고통의 시절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외적 조건을 극복할 희망을 지니지 못하다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상황이 좋아도 거기 진정한 생의 기쁨과 의미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바울 일행이 얼마나 악조건에 처해 있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 일행은 죽음의 위협을 피해 도망중입니다. 시시각각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칼끝이 조여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악조건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중지하지 않습니다. 우리 같으면 아마 지금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나중에 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무시무시한 박해가 절망의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조건에서도 오늘 본문은 그들의 사도로서의 책임, 복음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7절을 보면 “그들은 거기에서도 줄곧 복음을 전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상황을 탓하지 맙시다. 무슨 조건이 어렵다고 핑계하지 맙시다. 어려운 상황이니까 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상황이 엄중하니까 믿음의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우연히 차안에서 한길사라는 출판사 사장이 인터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나운서가 ‘책이 잘 팔리지 않아서 고생이 많으시죠.’ 그렇게 말하니까 그 사장님 이야기인즉 책은 잘 안 팔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드는 족족 책이 잘 팔리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 그분의 출판철학이었습니다. 그분의 주장인즉 무슨 책이든 다 잘 팔리면 출판사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독자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출판인들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책이 잘 팔리지 않아야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귀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출판인이라면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전정으로 읽힐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중 한 앉은뱅이를 고칩니다. 오늘 우리가 뒷부분을 읽지 않았습니다만 사실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고 바울일행을 신이라고 추대하는 이야기가 연이어 나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본 사람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부르며 그들을 신격화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 생각에는 그 두 사람이 무슨 신적 초능력을 지니고 있어 저 앉은뱅이가 일어서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전혀 다른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기적은 바울이 가진 초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 앉은뱅이 안에 병을 고칠만한 믿음, 일어설만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밖에서 온 신비한 능력이 오늘 기적의 열쇠가 아니라 그 안에 이미 잠재되어있던 어떤 가능성, 오늘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일어설 만한 믿음이라고 하기도 하는 그런 믿음이 그이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믿음이 귀한 것입니다. 사도들의 복음의 능력을 전하지만 그 전하는 복음의 능력을 내 것으로 하는 것은 그 안의 믿음, 그 앉은뱅이안의 주체적 능력을 통해서 발현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일어설 만한 믿음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오늘 본문 9절에 그 앉은뱅이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씀을 듣는다.’는 말 헬라말 ‘쿠어’라고 하는데 그 말은 그저 듣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어에서도 hearing과 listening은 우리말로 하면 다 ‘듣는다.’지만 사실은 좀 다른 말이 아닙니까? 여기서 이 듣는다는 ‘쿠어’라는 말은 그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되 마음을 기울여 듣는다 말입니다. 경청이라고 할까요. 집중해서 듣는다는 그런 뜻의 말입니다.

바울은 이 사람을 주목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을 더 집중적으로 보았습니다. 이 사람의 듣는 태도가 남들과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이 사람은 그런 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아니라 더 특별한 자세로 더 진지하고 각별한 마음으로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눈을 끌어 당긴 것입니다.

제가 여기 강단에서 보면 우리 교회 회중들이 다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열심히 듣는 사람도 보이지만 열심히 안 듣는 사람도 자꾸 보여서 걱정입니다. 졸고 있다거나 자꾸 부스럭거리며 무얼 떨어뜨린다거나 그러면 참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학에서는 설교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은 열심히 듣는 사람만을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 이 앉은뱅이 외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바울의 주목을 받은 사람 아니 이것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여기 아주 의미심장한 신앙적 신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앉은뱅이가 들은 것은 바울의 설교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이는 바울이지만 듣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이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 그 말씀 재미있다. 어디서 못 들어본 처음 듣는 것이다.’ 그런 호기심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적인 관심으로 강연으로 듣는 것도 아닙니다. 철학, 인생사는 지혜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듣는 것입니다.

바울은 키가 작았다고 합니다. 눈도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점에서 저랑 그렇게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가 전했는지 어떤 사람 어떤 모양새의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 하면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인간 아무개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들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란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듣는 것으로부터 그의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음식을 먹는다고 합시다. 건강한 사람은 뭐든지 맛있게 먹습니다. 입맛에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 말씀을 먹는 태도를 보면 그이 신앙적 건강상태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선배 목사님이 간암을 선고 받고 요양하는데 문안을 갔습니다. 제가 “힘드시죠.” 하니까 그 선배 목사님 말씀이 “정 목사, 맛있는 게 없어…….” 그러시는 것입니다. 제일 힘든 것은 음식이 맛있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도 맛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적으로 병들면 말씀의 맛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맛이 없는 것이지요. 설교시간이 지루해지고 졸음이 오기 시작하고 시계를 자꾸 보고, 괜히 밥맛이 떨어지면 병원에 가서 체크해 보아야 하는 것처럼 이런 경우 진지하게 자신의 신앙을 체크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앉은뱅이는 그 점에서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 비록 육신은 병들었지만 적어도 그의 속사람에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건강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이고 더 본질적인 것으로 보이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몸은 멀쩡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등 돌리고 사는 사람과 몸에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하늘의 말씀에 민감한 영혼을 가진 사람! 오늘 우리 시대의 비극은 모두가 겉으로는 다 건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사람이 깊은 질병, 하나님 말씀으로부터의 소외를 겪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그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신이 처지와 근심, 걱정 내가 앉은뱅이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런 모든 잡생각을 모두 접어놓고 오로지 하나님 말씀에만 몰입해 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이란 설교란 모름지기 그렇게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른 예배란 그렇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설교하다 보면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다가 어떤 대목에서 옆 사람을 쿡 찔러대는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말씀인 것 같은데 잘 들어 둬.’ 뭐 그런 표시겠지요. 그러면 이런 경우 거의 전부 그 옆의 부인이나 남편이 그냥 있지 않고 또 옆 사람이 쿡 찌릅니다. ‘당신이나 잘 들어 둬!’ 그런 뜻이겠지요. 찌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부부가 닮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부간에 나란히 앉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말씀 듣는 순간만큼은 옆에 누가 있건 사람이 있는지, 돌멩이가 있는지 남자가 있는지 여자가 있는지 모르고 말씀과 나 하나님과 나! 이렇게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몰입하는 것이고 그렇게 절대 앞에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이 직선적 관계! 거기서는 것입니다.

만일 이 앉은뱅이가 말씀에 순전히 몰입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 자기가 어떤 처지에 있다는 것에 집착했다면 바울의 일어서라는 말에 벌떡 일어서는 행동적 순종이 일어났겠습니까? 그는 모든 것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전혀 새로운 하나님 앞에 선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명상하던 중 ‘만일 내가 이 앉은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내가 이 앉은뱅이라면 일어서라는 바울의 명령에 대해 한 마디 꼭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제 까지 예수 믿는 방식, 내 신학, 내 사유의 체제, 거기서 비롯한 내 자리에서 내가 만일 앉은뱅이라면 이 명령 앞에서 꼭 한마디 했을 것 같습니다. ‘바울 선생님, 내가 보통 앉은뱅이가 아닙니다. 누군들 일어서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순간, 말씀을 듣는 이 순간 자기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초월적 사건, 이런 기적이 가능하겠습니까?

바울이 많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각각 그 믿음대로 이런 사람은 이런 정도의 믿음이 있어 이런 만큼 받았고 또 저런 사람은 저런 만큼 믿음 있어 저런 만큼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나의 믿음은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일어설만한 믿음입니까? 자리를 털고 일어설만한 고침 받을 만한 믿음입니까?

앉은뱅이가 결코 바울에게 가서 ‘선생님 나 고쳐주세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섰습니다. 일어설 만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만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교회를 일으킵시다. 믿음으로 우리 가정을 일으켜 세웁시다. 믿음으로 이 역사와 사회, 앉은뱅이 신세인 이 갈라진 역사를 일으켜 세웁시다. 믿음으로 우리의 각자의 삶과 그 무너진 역사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혹 우리는 세상사는 이치에 길들여져서 절망에 순응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늘 그렇고 그런 내 처지 내 형편 앞에 주눅 들어 말씀 앞에서조차 그저 그렇게 늘 하듯이 일상의 쳇바퀴 같은 삶에 매여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은 절망을 이기게 하고 순전한 말씀 앞에 자신을 던질 줄 아는 믿음은 우리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정진우 목사(에큐메니안 대표, 서울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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