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 마지막 ○○

우리가 사용하는 말(제목) 중에는 “최후”나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마지막 수업” “10월의 마지막 밤”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 “막장○○” “막판 싹쓸이?” 등입니다. 이렇게 “최후”나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아쉬움, 비장함, 희망 등이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마지막 만찬” “최후의 만찬”이라는 제목으로 기억하는 의미나 감정도 그렇습니다.

아쉬움은 지금까지 함께 하던 사람이나 일상과의 헤어짐을 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시원하지만 섭섭한 감정입니다. 짧지만 민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예수님의 활동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여러 번 반복된 죽임 당함의 예고 때문에 비장함으로 연결됩니다. 죽임 당함이라는 희생으로 삶의 목적이나 사명을 완성하려는 각오로 비장함의 깊이는 더해집니다. 그러나 죽임 당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희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죽임 당함을 넘어서 다시 일어서는 부활이 있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희생이 희망을 만들어냅니다.

유월절 식사와 예수님의 죽임 당함

최후의 만찬의 배경은 유대교의 유월절 식사(세데르)입니다. 유월절에는 정해진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은 하나하나가 야훼 하느님의 해방을 기억하려는 히브리 민중의 역사적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어린양은 열 번째 재앙 때에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를 먹음으로써 죽음을 면하게 한 희생양을 의미합니다. 무교병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발효시킬 여유도 없이 급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의미합니다. 쓴 나물은 그 맛으로 이집트에서의 당한 강제노동(고역)을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샤로셋이라는 소스는 벽돌 색깔인데, 이집트에서 벽돌 굽던 노예 생활을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유월절에는 4잔의 포도주를 마시는데, 요즘에는 예루살렘의 진정한 회복을 기원하는 잔을 더 추가해서 5잔을 마신다고 합니다.

첫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바로의 억압(학정)에서 해방(구원)된 일과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신 일을 감사한 후에 그 잔을 마십니다. 그 후에 음식을 먹기 위해서 손을 씻고, <요한복음에는 이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쓴 나물을 샤로셋(소소)에 찍어서 먹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였습니다.>

두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이집트의 강제노동(고역)에서 해방된 것을 감사하면서, 가장이 자녀들에게 유월절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 후에 어린양의 고기와 무교병을 먹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떡을 주시면서 “받아라! 이것이 내 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포도주 잔(구원의 잔)을 들고 이집트와 죽음의 사자로부터 해방(구원)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이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네 번째 포도주 잔(완성의 잔)을 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주신 것을 찬송합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마시지 않으면서 말합니다.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로운 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만든 것을 더 이상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일행이 찬송하면서 감람산으로 갔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이 유월절의 의미를 예수님의 죽임 당함으로 연결시켰습니다. 유월절의 어린양과 예수님의 죽임 당함은 유사한 상징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유월절 양은 모두 희생되었습니다. 유월절 양의 피는 유대인 가정의 문기둥에 뿌려지고, 예수님의 피는 땅과 하늘 사이에 매달려 세계의 문기둥처럼 서 있는 십자가에 뿌려졌습니다. 피는 각기 죽음을 추방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과 예수님의 공통된 상징성을 존 쉘비 스퐁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우리는 이 새로운 유월절 희생의 피로 인해 보호를 받고, 우리의 삶 속에서 죽음의 공포가 사라진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영원 속으로 우리를 불렀습니다. 바울이 척결해야 할 마지막 원수라고 한 것이 이제 정복되었습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를 지배하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상징하는 피가 뿌려진 우리들도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는 하느님에게 생명을 바쳤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유월절 체험을 통해 해석되어졌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죽음에 매이지 않는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는 예수님의 체험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초월성에 도달하는 새로운 인간성을 가져다주는 예수님의 체험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유월절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었을 때에, 예수님을 유월절 희생양과 비슷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미에 대해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새로운 기독교 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임 당함을 희생으로 이해하는 것은 구원을 대속적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유월절 식사와 주의만찬

유월절 식사 중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새 언약을 맺은 사건은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의만찬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주의만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공동체임을 재인식하는 기회가 되었고, 성령의 역사와 함께 역동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예배는 초기부터 두 가지의 핵심적 부분, 즉 ‘말씀의 예전’(The Liturgy of the Word)과 ‘다락방 예전’(The Liturgy of the Upper Room)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주의만찬은 말씀과 함께 기독교 예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었고, 이 예배를 통하여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다시 뵙고 경험하며, 주님과의 계약을 늘 새롭게 다짐하곤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시작된 예배는 다락방 예배라 부르는 주의만찬의 성례전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고,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인침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이 주의만찬에 의무적이면서도 특권적인 자격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주의만찬을 가리켜 오스카 쿨만은 “그리스도를 다시 뵙고 경험하는 예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순교자 저스틴에 의하면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은 즉시 주의만찬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받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생활을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처음교회에서 주의만찬이야말로 깊은 감격과 생명력을 지닌 예전으로써 예배의 순서에 핵심적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면서(소위 종교개혁 이후부터) 기독교 예배는 성만찬 중심(미사)의 예배 전통(가톨릭)과 복음선포(설교) 중심의 예배 전통(개신교)으로 나뉘게 되었고, 서로의 전통을 절대화하는 과정에서 처음교회의 예배 본질에서 어느 한쪽을 등한시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주의만찬의 선서적 근거로는 유월절 식사, 5천 명을 먹이심, 부활 후 식사, 바울의 편지(고린도서) 등입니다. 주의만찬의 기원을 설명하는 주장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 성만찬이 유월절 식사에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키두쉬(Kiddush)라고 불리는 유대의 랍비와 제자들이 전통적으로 가져왔던 식탁에 그 기원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유월절 식사의 기원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기 전날 밤 그의 제자들을 모으시고 유월절의 명절을 지켰던 저녁 식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민족 구원의 날이며 기쁨의 축제일뿐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예배의 날입니다. 예수님의 최후 만찬의 배경을 유월절에 두는 이유는 공관복음서 기자들의 기록들이 유월절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하루 전에 예수님이 유월절을 언급하는 가운데 행하여졌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자기의 때가 이르렀음을 깨닫고 제자들에게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라고 명합니다. 복음서의 기록에 의하면 그 식사는 예루살렘성의 “큰 다락방”에 마련되었는데(눅 22:12-13), 분명히 그것은 정규 유월절 만찬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성만찬의 키두쉬 기원을 살펴보면, 키두쉬는 랍비와 제자들이 안식일이나 특별한 명절을 종교적 차원에서 준비하기 위해하여 식탁에 함께 모여 식사를 나누던 관습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키두쉬 행사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3년간의) 생활 속에서도 계속 행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 근거로는 주의만찬을 가리켜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최후의 만찬”이란 지금까지 키두쉬를 행해온 것 중 “최후의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예배학자 윌리엄 맥스웰(William Maxwell)은 유월절과 키두쉬를 다음과 같이 비교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유월절은 가족적인 축제였고, 키두쉬는 남자들의 모임이었다. 유월절에는 어린양을 잡았으나 최후의 만찬에는 양이 없었다. 유월절에는 누룩 없는 빵이 사용되었으나 키두쉬에는 누룩 있는 빵을 사용했다. 유월절에는 여러 개의 컵을 사용했으나 키두쉬에는 단 하나의 컵을 사용했다. 유월절에는 출애굽 말씀이 있었으나 키두쉬에는 출애굽의 말씀이 언급되지 않는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형식적인 면에서는 “키두쉬”에 가깝고, 의미상으로는 “유월절”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유월절 식사였든지, 키두쉬였든지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과 함께 앉았을 때 유월절의 의미를 염두하고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주의만찬의 상징적 의미를 회상하면서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의만찬의 유래가 어떠한 것이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주의만찬이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서, 예수님이 친히 그것으로 해방(구원)을 향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주의만찬에 대한 물음들

우리교회는 주의만찬을 가능하면 한 달에 한 번씩은 행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형식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고, 장로나 목사가 배찬을 하기도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먹여주면서 덕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모두 나와서 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여러 교우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주의만찬에 대하여 들은 물음들은 여러 가지입니다. “주의만찬이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으니 항상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여야만 하는가?” 그 반대로 “주의만찬이 너무 경박스럽거나 격이 없지 않느냐?” “주의만찬에 빵(떡)과 포도주를 다른 것으로 사용할 수 없는가?” “주의만찬에 어린이들이 참여해도 되느냐?” 등입니다.

“주의만찬이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으니 항상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여야만 하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기억하기 위하여 이것을 행하여라.”하고 말씀했습니다. 행하는 것보다 기억하는 것에 더 강조점이 있고 중요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그의 죽음으로 우리가 얻게 된 구원, 우리가 되찾게 된 생명에 대하여 기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만찬을 행할 때에 항상 엄숙하거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우울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죽음으로 얻게 된 구원에 대한 기쁨과 그의 삶에서 보여 주었던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열정을 닮으려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절기로 따진다면 예수님의 오심을 기념하는 성탄절이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하느님의 돌보심에 감사하는 감사절 등에 행하는 주의만찬에서는 경건과 엄숙보다는 기쁨이 앞섭니다. 물론 그 의미를 마음과 몸에 새기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의만찬이 너무 경박스럽거나 격이 없지 않느냐?” 기존의 교회에서 엄숙한 분위기의 예식에 익숙한 분들이나 주의 만찬을 통하여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는 분들은 우리교회의 분위기가 못마땅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때로는 장난처럼 떡과 잔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오늘 조금 더 길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이나 고난절, 그리고 새해맞이 예배 때에는 충분히 자기를 돌아보고 기도하면서 참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만찬에 참여하는 분들은 그 때의 절기에 맞추어 경건하면서도 기쁜 마음과 행동으로 참여하면 더 좋겠습니다.

“주의만찬에 빵(떡)과 포도주를 다른 것으로 사용할 수 없는가?” 이렇게 묻는 분들은 대부분 빵과 포도주보다는 우리 고유의 음식을 사용하기를 속으로 바라면서 묻습니다. 떡은 예수님의 살을,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 당시 유대의 주된 식사 재료였습니다. 이후에 예전으로 되면서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빵이나 떡은 그 당시에 먹던 것과는 많이 다른 성분과 모양을 하고 있는데도 오늘날 빵이 떡으로 대치되는 것에 큰 반대가 없습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빵과 영성체도 다릅니다.

그런데 포도주는 붉은 색으로 피를 상징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 것에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피를 마시는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붉은 색이 아니면 그러한 분위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붉은 색의 다른 음료는 되나요? <복분자, 오디, 가시오가피 같은 것은 되나요?> 가톨릭에서는 붉은 포도주뿐만 아니라 백포도주도 사용합니다. <물론 그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만 말입니다.> 이 또한 서로에게 강요됨이 없이, 거리낌이 없다면 바꿀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주의만찬에 어린이들이 참여해도 되느냐?” 이 물음에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세례 받지 않은 사람도 주의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은 세례여부와 무관하게 참여할 수 있고, 어린이들도 함께 참여합니다.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드릴 때에 2부로 나누어서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일반적인 예배(말씀의 예배)를 드린 다음에, 세례받은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서 주의만찬(다락방 예배)을 행하였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박해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 속에서 주의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더 엄격하게 제한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주의만찬에 대한 구절에서는 세례받지 않은 사람들은 참여할 수 없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또한 성서에서는 주의만찬이 교회에서 행하는 공동식사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식탁입니다. 주의만찬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예수님의 이야기에서도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벽을 허물고 나눔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기억하고 그의 길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이 식탁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린이들에게 그 의미를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바쳐 모든 담을 헐어버리고, 갈라져 있던 사이를 화해시킨 그 사건을 기억하는 주의만찬이 오히려 분리와 담을 쌓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비극일 것입니다.

 
유월절 식사에 비추어 본 주의만찬의 의미

유월절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 중간에 몇 가지 제의들(손씻음, 기도, 할렐)을 행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가 가장(아버지)에게 묻는 4가지 제의적 질문입니다. “오늘 저녁은 다른 밤들과 어떻게 다릅니까? 다른 모든 날 저녁에는 누룩 빵 혹은 무교병을 겸하여 먹지만, 왜 오늘 이 저녁에는 오직 무교병만 먹습니까? 다른 모든 날 저녁에는 각종 채소를 먹지만, 왜 오늘 이 저녁에는 오직 쓴 나물만 먹습니까? 다른 모든 날 저녁에는 야채를 양념장에 한번만 찍어 먹지만, 오늘 이 저녁에는 채소를 양념장에 두 번 찍어 먹습니까? 다른 모든 날 저녁 식탁에서 의자에 앉기도 하고 비스듬히 누워 편하게 먹는데. 왜 오늘 이 저녁에는 반드시 비스듬히 누워서 먹어야 합니까?”

그러면 아버지는 유월절을 어떻게 지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예식 중에 출애굽에 대한 성서 구절들을 읽어줍니다. 이러한 문답을 해마다 반복함으로써 유월절 식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출애굽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면서 조상들의 역사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습니다.

히브리 민중들에게 유월절 식사의 의미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의만찬의 의미는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의만찬을 행하면서 예수님의 죽음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행하신 가르침과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의 구원과 그 구체적인 실현으로써의 하느님 나라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취하는 상징으로써의 주의만찬이 의미하는 것 중에 하나는 주의만찬을 통하여 예수님을 기억함으로써 예수님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걸었던 길을 따르는 의지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하늘의 밥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삶을 더듬어 찾으며 닮으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를 배려함으로써 이루어 가는 공동체의 평화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다름으로 인해서 유익이 아니라 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돌아보고 살피며, 서로를 배려해야 합니다. 그것은 함께 먹고 마심을 통하여 나눔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의만찬이라는 예전 속에는 먹고 마심의 공동식사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식을 행할 때에는 공동식사의 의미를, 먹고 마실 때에는 주의만찬의 의미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주의만찬을 행할 때에는 그것을 너무 신비화 하여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지 말고, 일상에서 밥을 나누는 것처럼 생동감과 생명을 향한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공동식사를 행할 때에는, 즉 무엇이든 먹고 마실 때에는 아무렇게나 하지 말고,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명을 어떻게 가꾸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공동식사는 주의만찬처럼, 주의만찬은 공동식사처럼.

주의만찬이나 공동식사는 지금 나를 살리기 위한 희생에 대한 감사이고, 그 생며에 보답하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살리는 먹거리에 대한 감사를 담은 짧은 글들이 많습니다. 밥 먹기 전에 하는 기도의 구절로 삼아도 좋습니다. “지금 여기 이밥과 한 몸이 되게 하소서.”(구세공보) “이 공양에 깃든 이웃들의 공덕을 생각할 때 저의 덕행이 부끄럽습니다.”(소심경) “너의 가득찬 그릇을 보라. 나는 이 음식 속에서 나의 존재를 떠받치는 온 우주의 존재를 본다.”(틱낙한 스님의 식사기도) “이 음식을 먹음으로써 나는 물질의 가슴에 들어가고 또한 나는 꿈을 현실로 바꾸는 복잡한 생명활동에 참가하게 됩니다.”(에드워드 브라운의 시) “밥 한 사발 먹는 것이 우주와 함께하는 것이다.”(장일순)

이러한 것을 모아서 만든 “밥의 기도”입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땀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땅에 밥으로 오셔서 우리의 밥이 되어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이 밥 먹고 다른 생명의 밥이 되어 스스로와 다른 생명을 해방시키고,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밥상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맑은 마음, 밝은 얼굴, 바른 믿음, 바른 삶으로 이웃 살리기를 다짐하며 감사히 식사를 들겠습니다. 아멘.”

예수님이 제자들과 행하신 “최후의 만찬”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짧은 삶을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임 당함을 생각하면 비장한 각오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하면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이 솟아납니다. 앞으로 “하느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것을 마실 그 날까지” 주의만찬을 행할 때에나 밥을 모실 때마다 감사와 기쁨으로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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