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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진실로 높고도 높으시도다 (출 15:19-21)<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29>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6.02.29 11:01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이것은 미리암의 노래이다. 학자들은 이 노래(시)가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보았다. (M. Noth 96) 노래의 내용은 21절에만 나왔다. 출애굽기 15장에 노래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모세의 (바다의) 노래(15:1-18) 다른 하나는 미리암의 노래(15:19-21)이다. 미리암의 노래는 짧게는 12장부터 시작된 출애굽을 마무리하는 찬양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출애굽은 12-14장에 기록된 사건이었다. 길게 보면 출 1장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자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이 완성된 것을 찬양하는 것이다. 

미리암

출애굽 특히 홍해바다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여호와께서 너를 애굽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의 구체적인 내용이 1-14장에 기록되었고 15장은 그것에 대해 모세와 미리암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찬양형식으로 화답하는 것이었다. 이 노래를 끝으로 출애굽의 역사는 일단 마무리 되고 본격적으로 광야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의 시작과 끝을 여인들로 장식하게 하셨다. 히브리 가정에서 태어나는 갓난아이를 살리는 여인들과 홍해바다 사건을 찬양하는 여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해방자이신 하나님과 만나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19절은 홍해바다 사건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였다. 19절의 첫 낱말은 ‘진실로’ 또는 ‘왜냐하면’이란 뜻으로 쓰이는 부사 키 (kî) 이다. 만일 이것을 ‘왜냐하면’으로 옮긴다면 미리암을 비롯한 여성들의 찬양은 출 15:1-18을 단순히 반복한 것이 아니다. 그 부분이 없었더라도 그들에게는 찬양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므로’(21절 첫 낱말 와우) 여인들은 소고를 들고 따라 나와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 짧은 한 절 속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들어 있는지 우리는 다 안다. 그 많은 시연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렇게 짧게 그리고 알맹이만 남은 것이다. 홍해바다 사건은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되었다. 

 i) 파라오의 말이 병거(rekeb) 및 마병과 함께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 14:7-9 참조) 
 ii)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 마른 땅을 밟고 지나갔다.

구약성경에는 마차(병거)를 가리키는 표현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레켑인데 주로 전투에 사용되었다. 다른 하나는 의자가 설치된 것으로 (메르코바 merkkob¹) 일반적인 이동수단을 가리켰다. (창 41:42-43 참조)

20절에는 미리암과 여인들이 등장하였다. 미리암이란 이름이 어디서 유래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i) 고집쟁이 ii) 기름, 자루 (Rudolph) iii) 사랑받는 자(이집트말 Ross) iv) (하나님의) 선물 v) 명성(Dozmann) vi) 아기를 원하는 자(← 아랍어 mar¹m.  Bauer)이란 뜻으로 각각 설명되었다. (HAL 601 참조) IDB는 그 이름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란 뜻으로 풀었다. (3, 402) 모세가 갈대상자에 넣어져 강물에 띄워질 때 그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의 누이로 소개되었다. (출 2:4-9) 이제 그녀는 여선지자와 아론의 누이란 두 가지 명칭으로 등장하였다. 물론 여기서 그녀는 단순히 여성들의 합창과 춤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만 소개되었다. 

20절은 그러므로(그리고)라고 옮겨지는 와우(w®) 접속사로 시작되었다. 이는 19절과 20절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사실에 따라 미리암을 비롯한 여성들이 작은북을 치며 춤추고 찬양하였다. 그들은 소고를 치고 춤(m¹µœl/ m®µœlâ)을 추며 그녀를 뒤따랐다. 이것은 모세가 부른 찬양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1절과 21절은 여러 가지 점에서 닮았다. 

구약성경에는 여러 가지 악기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소고가 등장하였다. (창 31:27; 출 15:20; 삿 11:34; 삼하 6:5; 시 150:4) 이는 히브리말로 토프(tof) 그리스말로 투[툼]파논/ 툼파니온(τύ[μ]πανον / τυμπάνιον) 라틴말로 티파눔(ty[m]panum)이라 부른다. 이를 탬버린으로 옮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악기는 여기보다 훨씬 나중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Musikantin (Tonfigur aus Tell es-Samak; Eisenzeit II)

악기와 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성경에서 여기가 처음이다. 구약성경에서 춤이 언급된 곳은 다음과 같다. (B. Edwards, Wenn die Show das Wort erschlägt, S. 64)

 i) 이스라엘 백성 특히 여성들이 전승이나 축제에 즈음하여 기뻐하는 춤 (출 15:20; 삿 11:34; 21:20-33; 삼상 18:6; 29:5 등)
 ii) 이방 민족이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맹세할 때 추는 춤 (왕상 18장에 나오는 바알 제사장들)
 iii)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의 우상 숭배에 영향을 받아 따라하는 춤 (출 32:18 이하 -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며 경배하는 이스라엘 백성)
 iv) 예루살렘에 법궤를 안치하며 기쁘고 즐거워서 다윗은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다. (삼상 16:15이하) 
 v)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서 악기들을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춤을 추었다. (시 30:11; 87:7; 149:3; 150:4)

신약성경에 춤은 다음 세 가지 경우에 기록되었다. 

 i) 육감적 성적 동작의 춤으로 남성을 즐겁게 만드는 춤 (마 14:6 세례 요한의 목을 베는 것으       로 이어짐)
 ii) 거리에서 노는 어린이들 (마 11:17; 눅 7:32)
 iii) 집 나갔던 아들이 돌아 온 것을 기뻐하는 방법 (눅 15:25)

신약성경에는 하나님께 경배하거나 찬양드리는 뜻으로 춘 춤이 단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찬양과 노래에 대한 기록만이 나올 뿐이다.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9-21) 

춤을 가리키는 구약의 용어로 보면 마콜이 쓰인 삼하 6:12–14(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며 다윗이 춤춘 것)과 시편에 즐거워하며 여호와를 찬양한 것(시 30:12; 87:7; 149:3; 150:4) 그리고 렘 31:4,13 등이다. 메콜라가 쓰인 곳은 출 15:20; 32:19와 사사기 11:34; 21:21; 삼상 18:6; 21:12; 29:5; 사 30:32(?) 등이다. 그 밖에 잠 26:7; 전 3:1,4; 애 5:15 등이다. 이것들은 다 승전 또는 축제와 관련되어 있다. 

만일 메콜라란 말이 몸을 돌리다는 말(콜 µœl)에서 나왔다면 이는 출 15:14에서 두려움을 가리키는 말(킬 µîl)과 그 뿌리가 같다.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선 악인은 두려워 떠는 것으로, 믿음의 사람은 기뻐 춤추는 것으로 반응한다는 뜻이 여기에 들어 있는 것이다. (요 5:29 참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노래와 춤 (고대 바빌론 주전 2040-1600년 사이

실제 노래는 21절 한 절뿐이다. 그 첫 낱말이 대답하다(±¹nâ)이다. 여인들이 부르는 노래에 미리암이 화답하였다는 것이다. (직역: 그리고 그녀가 화답하였다) 이 구조로만 보면 모세가 부르는 노래에 여인들이 화답하고 여인들이 부르는 노래에 미리암이 화답한 것이다. 그 가사에는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i) 진실로 그분은 높고도 높으시도다 (직역)
 ii) 말과 그 기병을 바다로 던지셨도다

앞부분에는 찬양의 이유가 뒷부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구체적인 역사가 기록되었다. 이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 (시 22:3)이시다. 

* 오늘의 적용 

1) 찬양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드러나다 

출 15:1-21은 성경에 나오는 첫 찬송(찬양)이다. 모세가 그 자리에서 노랫말을 지어 부르고 이스라엘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이 부른 노래이다. 그 내용은 여호와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다. 

홍해바다를 건너기 전 그들은 불평과 두려움과 원망을 안고 있었다. 이제 홍해바다를 마른 땅 밟듯이 건너고 난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심어린 가슴으로 감격스럽게 찬양을 드렸다. 홍해 저편에 있을 때에 그들은 아마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제대로 보았고 깨달았다. 그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요, 구원이요, 힘이신 것을 실감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전 14:15)

이렇게 부르는 찬양 가운데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데 모두가 일치하였다. 

2)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시도다 

출 15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은 크게 네 가지이다. 
i)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2절)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라고 고백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 불가능한 것이 있었다. 하나는 파라오의 압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홍해바다를 건너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 일 앞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무기력할 뿐이었다. 모세가 가진 것이라곤 지팡이 밖에 없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마저도 없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분이셨다.

ii) 하나님은 용사이시다. 
모세는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3절)라고 고백하였다. 용사란 전쟁의 사람 (Man of War), 군사라는 말이다. 그분은 그냥 보통 군인이 아니라 위엄이 있는 용사이시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리는 자를 엎으시나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초개 같이 사르니이다” (7절). 이는 여호와는 큰 위엄이 있는 용사요, 가장 능력 있는 용사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분이 그의 백성을 위해서 싸우셨다. 

iii)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모세는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11절) 라고 노래 불렀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는 말은 이 우주(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구별되는 존재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태양을 신으로 또 다른 이는 달이나 어떤 별자리를 신으로, 또 다른 이는 바위를 세워놓고 그 앞에 절하고, 멋진 나무가 있으면 그 나무를 숭상하는 등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있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구별된 거룩한 분이시다. 

iv)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시다. 
안토니오 비발디(1678 - 1741)의 글로리아 라장조 RV589는 “영광을 돌리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지어다 영광을 주께 돌릴 지어다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주께 영광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이라고 노래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과 베푸신 은총을 기리며 그분이 지극이 높으신 분임을 깨달았다. 창조와 출애굽의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이성과 판단을 초월하시는 존귀하고 높으신 분이다. 

3)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곳

노래와 춤은 감사와 찬양을 나타내는 데 아주 적합한 수단이다. 특히 고난 길 헤치고 나온 뒤의 찬양은 절로 어깨가 들썩이며 춤이 뒤따르는 것이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 하리로다 (시 40:2-3)

4)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하나님은 남성도 여성도 차별 없이 자신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쓰셨다. 하나님 영광을 찬양하는 데에 남녀노소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빈부귀천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신앙공동체에서 영혼을 담아 찬양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신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와 형편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드높이며 그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라야 주어지는 사명의 길을 똑바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5) 홍해바다를 건넌 사람들 

신앙인을 크게 둘로 나누면 홍해를 건넌 사람과 건너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른 말로 옛사람과 새사람(새로운 피조물)이다.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5)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 3:9-10)

새 사람이란 매사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홍해를 건너지 않고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없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도 없다. 물론 홍해를 건넜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부터 홍해를 건너게 하신 위대한 하나님과 그 영광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광야로 나가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험과 고통을 계속 안겨줄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데도 그렇다. 

이런 뜻에서 홍해바다를 건넌 사람들의 특징은 광야에서도 가나안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인생 여정을 지낸다’는 것이다. 비록 원하지 않는 시련과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홍해바다 사건을 기억하며 하나님과 함께 가는 여정을 계속할지, 옛일을 꿩 구워 먹은 듯이 잊고 고통과 불평을 계속하며 살아갈지 - 이 두 가지 길이 그들에게 놓여 있다.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 하리이다 (시 73:28)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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