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거세당한 욕망

인간은 ‘없음’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없음’을 ‘있음’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하나를 갖기 위해, 둘을 갖기 위해, 셋을 갖기 위해 인간은 분투한다. 이 과정이 바로 소유이자 삶이다. 라캉(Jacques Lacan)의 말처럼, 결여는 욕망을 낳고, 이 욕망은 삶의 원리와 목적이 된다.

여기서 구체적인 논의를 해보자. 그렇다면 청년은 어떠할까?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다. 왜냐하면 청년은 ‘없음’에서 ‘있음’으로 이행할 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청년은 자신의 무기력을 깨닫는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년은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예측한다. 이제 곧 ‘회생불가능’이겠구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난 쓰레기가 되겠구나…….

그렇다면 청년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재미있게도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아주 어릴 때부터 기득권의 힘에 굴복하는 삶의 방식을 온몸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있음’의 삶이 왜 불가능하냐? 사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주고 있지 않냐? 왜 회생불가능이냐? 열심히 노력을 하다보면 온 우주가 도와주지 않겠냐?

미안하지만 이런 분들은 청년을 ‘입’에만 담을 수 있다. 이들의 ‘가슴’에는 청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불리기 위한 전략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가슴에는 청년의 근심과 상처, 좌절과 눈물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결국, 진심, 이해, 본질 없는 청년 문제 논의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곤고히 하기 위한, 혹은 자신들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한 놀이일 뿐이다.

어찌되었든 청년의 현실은 거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의 청년은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갈 최소한의 자본이 없다. 청년이 되기까지 이미 많은 돈을 써버렸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학교를 졸업했을 뿐인데 2~3천만의 빚이 있는 청년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돈이 없다는 것이 욕망의 그릇된 분출, 소멸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가령, 도박이라든지, 중증도의 우울감 등이 그것이다. 청년은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청년은 기존의 질서가 가하는 압력에 의해 한정적 형태들로 구성됨으로써 획일적이고 표준적이며 총체화하는 거시적인 질서와 법칙에 포섭 당했다. 욕망을 거세당한 것이다. 거세당한 청년은 혼란 속에서 술집, 카페, 옷 가게 등으로 매일 알바를 떠난다. 돈을 버는 만큼 숨구멍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되는 예외 상태는 꿈꿀 수 없다. 다시금 구조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때문에 청년 때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가령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삶의 물음은 비적자 제거 되고 ‘대신 3포 세대’, ‘5포 세대’, ‘n포 세대’라는 ‘포기’ 혹은 ‘자기 욕망의 외면’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간단하게 대한민국 청년의 현실에 관해 이야기했다. 물론 이 글이 청년 현실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이미 쏟아져 나올 때로 나온 청년 문제를 앵무새처럼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실험적인 대안 세 가지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1. 거세된 욕망 되살리기

우선, 거세된 욕망을 되살려야 한다. 욕망의 긍정이 삶을 진실하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 거세된 욕망은 거짓에 머무르게 한다. 예컨대 아빠 마음에 쏙 들고 싶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칭찬을 받을 거야, 수능을 잘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거야, 대기업에 취직하면 행복을 만끽하게 될 거야. 이렇게 인간은 우회로를 통해 자신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라고 착각한다. 이렇게 인간은 허상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진실 된 삶을 위해서 인간은 대타자에 의해 상실된 욕망을 그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거세된 욕망을 되찾기 위해서는 결여를 온전히 인식해야 한다. 내게 없는 그것, 그래서 갈구하는 그것, 수많은 우회로에 의해 보이지 않는 그것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청년의 결여는 욕망이다. 욕망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여가 욕망을 야기하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야기하는 꼴이 된다. 이는 상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청년이 욕망 그 자체를 욕망할 때, 욕망의 무한한 가능성에 접근하여 전향적 가치들을 창출해 낼 수도 있지만, 방향성을 상실하여 인류의 보편적 기준을 상실시키고, 무분별한 개인의 욕망을 남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욕망이 야기된 지점이 어디인지, 어떠한 결여로부터 우리는 소외 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혹은 공백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2. 이데올로기의 변화

다음으로, 이데올로기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잊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본질에 앞서는 실존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창출된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데올로기적 존재이다.

물론, 이데올로기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질서가 부여하는 규범과 생활양식의 변화가 부적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Louis Althusse)의 말처럼, “이데올로기는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혁명적 이데올로기로 변화하고 이행할 수 있”기에 이데올로기 변화(혹은 혁명)를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 경전 마가복음서 13장 1~2절에서 제자는 웅장한 성전에 의해 압도되지만 예수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말씀하신다.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다. 제자들처럼 이데올로기의 견고함에 두려워하든지, 예수처럼 본질을 잃은 곳을 향해 다 무너지리라고 선포하든지. 우리는 이제 믿음의 눈을 들어야할 때이다. 무엇이 보이는가?

3. 소수자 되기

마지막으로 소수자가 되어야 한다. 삶을 규격화하는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소수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소수자는 단지 인원이 적은 무리들을 일컫는 것일까? 여기서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의 설명이 필요하다. “소수자란 수가 적은 자들이 아니라 권력이 부과하는 다수자의 모델을 거부하고 욕망의 탈주선을 따르는 자를 말한다.”

사회의 기득권, 그리고 그 기득권이 만들어낸 질서, 그 질서에 편입하기 위한 노력.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삶이 그 사람 자신의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욕망과 내면에 솔직하기 위해서 타자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를 권유한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말처럼 타자의 시선은 지옥이다. 이제 타자의 시선에 가려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솔직한 욕망의 갈증을 느끼시길 바란다. 마치 나뭇잎 사이로 흩어지는 빛 가루처럼 기존의 대타자와 이로 야기되는 상징계가 포섭할 수 없는 그것, 그것을 향해 기어가시기를 바란다.

4. 나오며: 존재의 삶을 향하여

청년 문제에 대한 아픔과 시련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적지 않았다. 따라서 이 작은 글에서는 그것을 되풀이하기보다 아픔과 시련을 넘어서는 것, 혹은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담론의 장을 형성시키고 싶었다. 과연 이 졸작이 누구에게 읽힐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이제 이 글은 내 글이 아니다. 독자의 글이다. 이 작은 글이 독자의 삶에서 모였다 흩어졌다,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며 엮어가는 무늬를 가만히 지켜보고 싶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쳤으면 좋겠다. 우리는 ‘없음’이 아니라 ‘있음’이라고. ‘비존재’가 아니라 ‘존재’라고. 지금, 여기 사람이 있다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후 1:27)

주찬종 (감신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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