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장로교의 근본주의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John Gresham Machen 교수 ⓒGetty Image

16세기 후반 칼빈주의자들의 영감론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1563)은 질문 31항에서 그리스도가 그의 왕직을 수행하는 방편으로 삼는 수단을 질문할 때, 그리고 질문 54항에서 그가 그의 선택된 공동체를 인류 전체에서 모으는 방편으로 삼는 수단이 무엇이냐 질문할 때, “말씀과 성령”이라고 대답하며 칼빈을 따른다.(1) 그러나 말씀과 성령의 이 엄격한 상관관계와 은밀한 동일성은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의 개혁교회 신앙고백 문서들에서조차 점차 사라지고, 칼빈이 저 기본 개념을 발전시킨 맥락을 급속히 이탈하기 시작했다.

바르트는 그 전조를 불링거의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에서 본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그 당시의 말씀(족장들, 예언자들, 그리고 사도들에게 하신)과 지금 그의 말씀(그들의 문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시는) 사이에서 개념적인 차이를 발견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다.”

비록 이 차이가 논리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계시의 영향과 결과로서 그 자체로 그리고 자연히 높이 평가되는 성서를 그때와 지금 사이에서 경과된 시간에 의해 격리된 우리에 대한 계시의 증언이 되도록 의도된 성서와 뚜렷하게 분리한다. 그 차이는 객관적인 어떤 것 대 주관적인 어떤 것을 가정하고, 그로써 성서의 저자들과 우리 사이의 동시성을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단지 이 동시성에서만 그들이 경험했던 계시의 결과, 그들의 ‘문서’는 우리를 위한 증언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될 수 있다.(2)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대로 말했다.”라고 규정하는 것으로 불링거가 착수한 방향으로 더 나아간다. ‘나중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특별한 배려에서 자기의 종들, 즉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자기의 말씀을 글로 쓰도록 맡기셨다.(3) 「헝가리 신앙고백서」(1562)에서 우리는 정경적 책들이 성서의 저자들에게 구술되었다는 불행한 표상을 처음 발견한다.(4)

1609년의 「보헤미안 신앙고백서」는 성서 저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세 가지 다른 행위를 구별한다: 영감, 구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단지 “가장 충실한 필기자들”로서 협력했을 뿐인 문서들 안에 있는 그의 말씀의 현실적인 보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계시의 본래적인 수령인도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로서의 영감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과 “희랍어로 기록된 신약”은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영감 받았고”,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를 통해 순수성이 보존되어 왔기 때문에, 진정한 것이다.(5)

17세기 「스위스 일치신조」의 축자영감론

17세기 칼빈주의 운동은 칼빈 사후 100년 뒤에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신학교수직을 맡고 있던 프란시스 튜레틴이 주도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신학을 위한 모형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의 신학방법을 선택했다. 튜레틴은 그의 성서교리를 전개하면서, 175개의 전거들을 인용했지만 칼빈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성서는 튜레틴이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신학의 근거로 삼은 형식적인 원리였지만, 성서의 권위는 성서는 잘못이 없는 말들을 담고 있다는 주장에 입각해 있었다. 적응에 대한 칼빈의 개념의 어떠한 흔적도 튜레틴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초자연적이라고 주장되었다.

따라서, 튜레틴은 성서 텍스트의 현재 상태에 강하게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성서의 권위에 대해 말하면서 성령의 내적 증거에 대한 언급을 빠트리고 진정한 정경과 성서의 믿을만한 사본을 보증하기 위해 성령에 호소했다. 이것은 튜레틴이 본래의 히브리어 필사본에 있는 모음 부호들(존재하지 않는)을 위해 영감을 주장하게 했다. 튜레틴의 견해는 1675년 「스위스 일치신조」에서 구체회되었다.(6)

여기서 텍스트의 거룩함과 영감됨은 본질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객관적으로 현재하는 사실성이 되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문자로 기록된 성서의 직접적인 동일성이 주장되기 시작했다. 이 오류는 이미 불링거의 차이에서 예견된 것이며, 이제 그것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회당의 ‘히브리어 강독’ 안에 보존 되어 있는 것으로서의 자음과 모음을 지닌 이 텍스트는 그 자체로 거룩하다.” 그들은 어떤 정도로 성서가 우리를 위해 거룩한 것일 수 있을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이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17세기 이후 칼빈주의적 정통주의자들의 ‘축자영감설’은 칼빈의 영감론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칼빈이 성서의 증언자들을 성령의 기관과 도구로 보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성서의 확실성을 문자에서 발견하지 않고 성령의 증거에서 발견했다. 성서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은 문자 자체가 갖고 있는 신적인 권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감화‧감동시키는 성령의 역사라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성서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발견은 개혁자들로 하여금 로마 교황의 권위 및 성서와 교회 전통에 대한 로마 교회의 입장을 거부하게 했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solus Christus)을 최고의 권위로 여겼고, 교회를 위한 그의 말씀과 뜻은 교회의 삶을 위해 일차적 권위를 갖는 성서를 통해서만 알려지고 선언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인간적 권위들은, 그것이 신조이든, 교회의 공의회들이든, 또는 교회의 다른 가르침들이든 간에, 교회에서 단지 보조적이고 파생적인 권위를 지닐 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미국 근본주의 신학의 축자영감설이 한국 장로교에 끼친 영향

오늘 한국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칼빈주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는 지난 1953년에 ‘성서의 권위’ 문제로 분열을 겪었으며,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현안 문제로 남아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은 미국 프린스턴 출신 선교사들의 근본주의-정통주의적인 신학 성향에 관심을 기울인다.(8)

어떻게 미국의 칼빈주의자들의 산실과 아성이었던 프린스턴 신학교가 근본주의적이며 정통주의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을까? 잭 B. 로저스는 이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그것은 A. 알렉산더가 1821년 프린스턴 신학교 교과과정을 만들었을 때, 프란시스 튜레틴의 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를 조직신학 교재로 채택한데서 시작되었다. 60년 뒤, 1872년 찰스 핫지의 유명한 『조직신학』이 튜레틴의 라틴어 교재를 대체했지만, 튜레틴의 신학방법은 1929년까지 계속되었다.

100년이 넘는 동안 프린스턴의 교수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 신앙문답」을 “받아들이고 서명한다”고 서약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칼빈의 후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신학은 그 토대를 종교개혁 이후 발전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주의에 두고 있었고, 칼빈 자신의 접근법에 반대되는 성서의 권위와 해석에 관한 신학방법을 믿고 가르쳤다.(9)

19세기와 20세기 초 미국 장로교에서 일어난 이 독특한 역사의 왜곡은 20세기 후반 한국 장로교회의 ‘성서 문자무오설’ 혹은 ‘축자영감설’ 논쟁과 그로 인한 교회의 분열이라는 불행한 역사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한국선교 초기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대다수가 찰스 핫지와 그의 아들 A. A. 핫지, 그리고 B. B. 워필드와 20세기 초 프린스턴 신학의 마지막 보루이며 근본주의 신학의 총수라고 여겨졌던 G. 메이첸(10)의 영향을 받은 프린스턴 출신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칼빈주의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며, 칼빈주의가 상당히 다른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칼빈 자신보다는 오히려 그와 무관한 개인들, 예컨대 베르미글리와 잔키 같은 개인들의 신학방법이 후기 칼빈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성서의 권위와 관련하여 칼빈과 동시대의 칼빈주의자들, 그리고 17세기의 칼빈주의자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말씀과 성령의 긴밀한 상관성의 맥락을 상실하고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명제가 성령의 역사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주의 철학의 토대 위에서 인간의 확실성의 요청으로 가져온 ‘무오’의 개념을 영감론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주변의 많은 장로교인들과 신학자들에게서 19세기와 20세기 초 미국 장로교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17세기의 칼빈주의적 이념들을 칼빈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거나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시급한 일은 칼빈의 후예나 정통주의자를 자처하기 전에, 일단 “원전으로 돌아가서”(ad fontes) 그가 무엇을 위해 싸웠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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