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casso, 「Crucifixion」 (1930) ⓒWikiArt

상호의존에 기반한 연립과 불구의 정치에 대한 신학적 고찰

장애가 제기하는 존재론적 이슈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 그 자체의 존재론을 다시 사유하게 하는 이슈들이라는 점이 신학적 응답을 위해서도 전제되어야 한다.

앞에서 장애 이슈를 통해 제기되는 존재론이 상호의존에 근거한 연립이라고 할 때 이 상호의존에 대한 신학적 질문은 상호의존은 인간 주체 간의 관계에 한정될 뿐이고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는 일방적인 의존인 것으로 파악해야 하는가 또는 상호의존이 일어나는 자리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해야 하는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회적 고난으로 인해 형성되어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지시되는 장의 작용에 주목하는 민중신학적 입장에서는 그 장의 작용이 일어나는 자리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찾게 되므로 앞 문장의 질문에서 전자보다는 후자의 질문을 택하게 된다.

이렇게 하느님에 대한 질문을 어떤 자리에서 그의 현존을 찾을 수 있는가로 파악할 때, 그 자리 중의 하나로 앞에서 장애 이슈를 통해 나타나는 존재론적 구조인 이음새에 주목할 수 있다. 이음새가 상호의존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긋남과 불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결합이 일어나는 장이라고 할 때 그 결합의 양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의 양상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음새가 앞에서 본 것처럼 그 이음새가 없는 매끄러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본주의적 환상을 깨는 자리라고 한다면 이 자본주의적 환상의 깨짐이라는 속성도 이 시대의 하느님의 현존의 한 양상으로 주목되어야 한다.

상호의존에 근거한 연립과 장애인의 존재 구조의 핵심인 이음새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현존이 나타난다고 하면 그 연립과 이음새를 어떻게 겪어 내었는지로 구성되는 장애인의 삶의 서사의 가치있음을 승인받는 것이 장애인이 체험하는 구원의 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 예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구원 자체를 삶의 서사의 가치있음에 대한 승인과 수용으로 사고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장애인의 삶의 서사의 정치적 측면이 불구의 정치라는 어휘로 대표된다고 할 때, 불구는 그것이 해소되어서 구원받아야 할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불구로서의 장애인의 정치가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는가 하는 서사가 세계의 변혁과 구원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불구의 정치로서의 장애인 열사에 대한 기억으로 부활을 읽어내기⁽¹⁾

한국 사회운동은 사회운동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하거나 혹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한 사람들을 열사라는 이름을 붙여 기억해 왔다. 장애인 운동은 이 열사라는 기억의 방법을 지금도 견지하는 흔하지 않은 운동 중의 하나이다. 이때 장애인 운동의 열사에 대한 기억의 방법은 그 열사의 삶의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을 모두 기억하며 그 열사의 삶과 죽음의 구조와 지금의 장애인들의 삶의 구조가 이어지는 측면을 기억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2) 그래서 고병권은 장애인 열사를 “현세에서 사후(死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3)이라고 정의한다. 장애인 열사에 대한 이러한 기억 방법을 그리스도교의 부활에 대한 사고와 연결시킬 수 있다.

부활에 관련된 예수의 대화 중 사두개인들과의 대화가 있다. 이 대화에서 사두개인들은 형사취수법에 따라 7형제와 줄줄이 결혼했으나 자식이 없던 여인의 예를 들어 부활 주장은 넌센스가 아니냐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에 대해 예수는 그런 생각은 오해일 뿐이라면서 사람이 다시 태어날 때는 결혼이란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하는데, 그 다음에 히브리 성서의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이삭의 하느님이요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구절을 하느님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느님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서 그 해석을 자신의 생각의 근거로 댄다. 누가복음서에는 이 해석에 다시금 하느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살아있는 존재라는 의미라는 설명이 덧붙는데, 이 설명이 곧 이 구절에서 말하는 부활의 의미가 될 것이다.

부활이 하느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의미라면 그 의미는 이미 죽은 사람임에도 살아 있는 존재로 간주한다는 의미가 된다. 즉 앞에서 고병권이 말했던 “현세에서 사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죽은 사람이 부활해 있다면 그 사람을 죽게 만들었던 세계는 어떤 변혁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의미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했던 장애인 운동의 열사에 대한 기억 방법은 이러한 부활의 의미를 상당히 구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활의 이러한 의미가 부활의 유일한 의미는 아니더라도 이 세계를 현실적 변혁을 겪도록 소환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날카로운 의미인 것은 분명하다. 장애인 열사에 대한 기억 방법이 이렇게 부활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면 이것은 곧 불구의 존재들 스스로 만들어낸 불구의 존재에 관한 기억이라는 불구의 정치가 작동하는 한 예로 볼 수 있다.

장애 한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

이 연재에서는 장애에 대한 기존의 그리스도교 신학적 논의가 장애에 대한 그리스도교 내의 부정적 전통을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고, 그리하여 장애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본 뜻이 아님을 해명하는 시도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또한 그러한 신학적 논의들이 장애가 그리스도교 신학을 동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순치시키려는 경향을 띠고 있다고도 보았다.

이 연재는 그 순치시키려는 경향이 작동하는 지점에서 반대의 방향을 택하여,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장애학의 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신학적 성찰을 특히 민중신학적 입장을 중심으로 시도했다. 그 결과 장애학적 논의를 통하여 제기되는, 상호의존에 기반하는 연립과 불구의 정치라는 존재론적 이슈가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지시되는 고난의 장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찾으려는 민중신학적 방법론에 의해 신학적 응답이 가능함을 확인했다. 또한 불구의 정치의 한 예인 장애인 열사에 대한 장애운동의 기억 방법이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 중의 하나인 부활에 대한 다른 이해의 길을 트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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