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제대로 보려면 눈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눈빛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눈매가 고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성경에도 눈이 인격의 창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철들고 나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 인간을 제대로 알려면 눈을 보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한 사람은 전체적으로 제대로 보려면 우리는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뒷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얼굴이 예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예쁜 사람이 아니라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예수, 그는 앞에서 보았을 때 반역자, 유대인의 왕, 민심을 교란하는 선동주의자, 율법파괴자였지만 그가 남긴 뒷모습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 그리스도였습니다.

지금부터 2600년 전 바벨론 포로기를 통해 이스라엘이 깨달은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주전 6세기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기라는 혹독한 시련기를 보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기도 하지만 그 혹독한 이민족 지배라는 정치경제적 상황 속에서 유대교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신앙적 깨달음을 이룬 시기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을 압축적으로 다룬 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너무나 유명한 성경인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노래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실로 유대교 역사에서 혁명적이고 기념비적인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이 이사야 53장이말로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미리 아시고 적어 놓은 예언서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이나 고난절이 되면 늘 이 성구를 명상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결정적으로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앞모습에 취해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뒷모습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눈이 앞에만 달려 있다는 것은 인간이 숙명적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었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앞모습에 취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표면적 진실과 이면적 진실의 괴리, 그리고 거기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진실은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면에 숨겨져 있었다는 깨달음!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위대한 깨달음이라고 하는 일대 신학적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전까지 그들은 소위 인과응보라는 율법적 사고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착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 는 인과응보 사상. 그게 도덕적 교훈으로는 대단히 유익한 측면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고난당하는 사람들, 실패하고 패배한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억울한 사상입니다. 그래서 인과응보는 종종 기득권자들의 사상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기 동안, 진실로 그 잘못된 세상 질서에 도전하고 투쟁했던 사람들의 고난을 통해, 그들의 죽음과 희생을 통해 이스라엘은 비로소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잘못으로 고난을 당하는 이들도 잇지만 더 본질적으로 세상의 고난은 대속적 의미, 남을 위한 고난, 하나님의 구원사를 위한 고난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란 바로 이 대속적 고난에 눈뜨는 것입니다. 세상의 있는 모든 슬픔 세상의 모든 아픔 억울한 죽음, 그 속에 담겨있는 대속적 의미 남을 위한 희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신앙의 극치이며 백미가 아닙니까?

오늘 기독교가 참 우스운 종교가 되어서 입만 열면 성공과 승리, 행복과 축복을 되뇌지만 원래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 고난 없는 성공, 눈물의 사연이 없는 사랑, 그건 것은 다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 그게 기독교의 요체가 아닙니까? 그래서 유대 사람은 표적을 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 국민이 참 슬픈 한 주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 반칙과 특권을 없애고 누구나 열심히 일한 만큼 대접받는 세상을 꿈꾼 대통령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대통령을 품기에는 너무 미숙한 것입니까? 잘난 학력도 없었고 잘난 이력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한 방향으로 밀고 간 바보 대통령, 우리 역사는 아직 그런 대통령과 함께 살기에는 너무 잔인한 것입니까?

그는 미안해하지도 원망하지도 말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그를 이런 죽음에 이르도록 한 이 땅에 질서에 대해 한없는 원망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만시지탄!

다만 우리는 망자 앞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적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깊이 성찰해야 하며 새로운 진실에 눈뜨는 계기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이런 비극을 헛되이 하지 않은 길일 것입니다.

노 대통령 재임시절 대통령 씹는 것이 국민스포츠라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습니다. 거의 전 국민이 모두가 그를 그렇게 비난 한 것, 그게 우리의 실상이었습니다. 너무 늦게 우리가 얼마나 진실에 눈멀어 있었는지에 대해 비로소 그의 죽음을 통해 국민들은 통절하게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잃었고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우리는 역사상 뒷모습이 아름다운 대통령을 하나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살아남아 그와 한 시대를 함께 살았던, 그를 우리의 지도자로 뽑았던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이것은 선거에서 그를 찍었건, 안 찍었건,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했건, 지지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입니다. 그게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번의 우리가 겪는 이 슬픔의 역사가 우리 모두 나와 다른 사람의 진실에 대해, 이면적 진실의 대해, 뒷모습의 진실에 대해 새롭게 눈뜨는 그런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역사에 이런 맑은 눈들이 더 많아져서 진실과 정의가 통하고 거짓과 술수가 사라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 거짓 언론에 속지 않는 그런 성숙한 국민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실로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는 이 땅에 정치보복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정치 풍토가 생겨날 수 있기를! 살아있는 권력에 한 없이 비굴한 죽은 권력에 하이에나적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그런 썩은 검찰이 뿌리 채 뽑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인의 유지대로 지금 우리는 진정한 사회적 통합과 용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그런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해법은 진실에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면적 진실에 눈 뜨는 그런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진보도 보수도 국민들도 모두 진실이 어디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새롭게 눈뜨는 자리 그 성찰의 자리에서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일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진지한 사죄와 용서의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시기를 놓치면 필경 우리 사회는 아주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 들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 당국과 대통령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새로운 국정 철학을 제시함으로써 이 어려움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진심으로 유족들에게 하늘의 평화가 함께 하길 바라며 우리 모두 그분의 죽음 앞에서 내가 선 자리에서 새롭게 깨달아야 할 진실이 무엇인지를 성찰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 이 역사가 진정으로 상식이 통하고 힘없는 이들이 가슴 펴고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향해 새롭게 전진해 가는데 우리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슬픔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 고난과 아픔을 통해 더 성숙한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진우 목사(서울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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