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이 제법 흘러 계곡 물소리가 좋았다
적당한 나무그늘 맞춤한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고
마주 앉은 친구와 두런두런 얘기도 하며
물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계곡의 시간은 흘렀다
생각해 보면 이 작은 계곡과 친한 지도 어언 10여년
그때 우리교회는 사실 이곳으로 쫓겨 왔다
공릉동 양돈마을이 재개발되며 우리교회도 철거되고
철길 가 천막에서나 길거리 공원에서 예배도 드리다가
근근이 상가 5층에 작은 예배처소를 마련했는데
그것마저 집세 한꺼번에 왕창 올려달라는 바람에
서울 변두리 진입하는 데만 1시간 이상 걸리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길 막힐까 마음 졸이며 달려야 하는
한 시간 정도의 불편을 달게 받아들이면
이곳이 주는 기쁨은 그보다 훨씬 컸다
자발적 불편이 주는 행복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야외에서 예배드리는 불편을 면하려고
가장 자연과 가깝게 예배당을 지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우리는 다시 쫓겨 나와야 했다
우리는 빚을 지게 된 것이다
이번 주는 전교인이 이곳으로 수련회를 왔다
근데 이곳에서의 목사님의 설교는 뭔가 작심한 듯 특별했다
작은 교회를 지향하며 카페를 빌려 주일예배를 드린다는
‘풍경이 있는 교회’의 운영원칙이라며
건물은 소유하지 않는다 공간은 공유한다
재정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낸다
교회는 어떤 경우라도 빚을 지지 않는다
자발적 불편함을 감수한다 등을 소개하며
교인을 계란 낳는 닭으로 여기는 양계장 같은 교회를 떠나라
성장을 외치며 축복 받는다고 하면서도
사회적 불의와 약자들을 돌보지 않는 교회에서 도망가라
권세와 명예와 대중적 지지도를 쫓는 목회자에게서 탈출하라는
등의 풍경이 있는 교회의 문제의식과 실천적 도전이
어떠한 교회를 이루어 나갈까 고민하는 우리교회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와 귀한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며
우리를 은근히 선동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젯밤의 그 진한 풍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졸고 있다가
소나기 지나가며 우르르하는 소리에 귀가 번쩍했다

▲ 필자 이수호.       그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전 박원순 서울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 현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로 활동 중에 있다.

이수호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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