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찍 들어와 같이 저녁 먹고
공치사 겸 남은 노령 안전도 생각하며
역시 집밥이 제일 맛있고 좋아요
간지러운 알랑방귀 인사를 하는데
아내가 후식이라며 대추보다 조금 큰
토마토 두 알을 내 놓으며
이거 우리 농장에서 딴 거예요
올해 첫 수확인데 드셔 보세요 한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내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
시골이나 농사일은 잘 모른다
더구나 나 같은 사람 만나 같이 살면서
잘난 운동가 아내로 온갖 부담 혼자 다 졌으니
여유 있게 꽃 키우고 채소 가꾸는 건 언감생심
전세 아파트 전전하느라 집에 정 주기도 어려웠다
늘그막에 운이 좋아 성미산 자락으로 왔는데
우리 다세대주택 담벼락 밑으로
좁고 길쭉한 공지가 있어 잡초 무성했는데
아내가 거기다 뭘 심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자주의자인 나는 뭐든지 하자면 무조건 찬성이라
속으론 그게 될까 염려했지만 아내는 기뻐하며
드디어 나도 농장 가지게 됐다며 싱글벙글이었다
보슬비 내리는 어느 봄날 갖가지 모종을 심었다
들깨 셋 고추 셋 가지 셋 토마토 둘 완두콩 둘
보자기만한 땅 둘을 부드럽게 갈아 상추와 파씨도 뿌렸다
시골 내려가 살고 있는 큰 딸네에서 퇴비도 얻어와 주고
산비탈 길모퉁이에서 돌나물 민들레 쑥도 캐다 심었다
바람이 불고 햇살 내리고 비가 오고 시간이 가고
매일 한두 번씩 물도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아내의 농장은 하루가 달랐다
어느 날 돌나물과 여린 상추 잎이 초장과 함께 올라오고
민들레 잎과 들깨 잎도 밥상에 올라왔다
드디어 오늘 토마토가 온 것이다
고추도 몇 개 달렸던데 따오지 그랬어요 했더니
그건 따다가 2층 잔소리 할머니 갔다 드렸어요 한다
내년엔 호박도 심어봐야겠어요
이제 웬만큼 자신이 생긴 모양이다
아내는 오늘도 챙 큰 모자에 호미 찾아 들고
걸음도 씩씩하게 농장으로 나간다

▲ 필자 이수호.       그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전 박원순 서울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 현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로 활동 중에 있다.

이수호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