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품에 거하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 사진 김성룡

스승의 날입니다. 잠시 ‘교사’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목사도 교사의 사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다른 누구보다 그분께서 가장 위대한 교사이셨습니다. 우린 그저 그분의 뒤를 좇는 제자라도 되어보려 발버둥이고요. 이런 몸놀림에도 현실은 자꾸 의문부호를 들이댑니다. 괜한 회의와 심한 자괴감을 갖게 만듭니다.

기독교를 개독교로, 목사를 먹사로, 성경을 똥경으로, 장로를 장롱으로, 집사를 잡사로 이죽거린 실정입니다. 그분이 세우신 교회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역사의 디딤돌이라기보다 걸림돌 이라는 것이죠. 끔찍하다 못해 슬픈 현실에 된통 부끄러워집니다.

현실이 오버랩 되면서 와락 겁부터 납니다. 뒤가 구리고 켕기는 게 많아집니다. 제가 문제의 범인이며 주동자이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기는 쉬워도 냉큼 용서해 주지 못하거든요. 끝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사랑할 줄을 모릅니다. 사랑과 인내 그리고 그분께서 주신 사명에 기대어 맡기신 양떼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누군가 그랬다지요. 그분은 남다른 안경을 쓰셨다고요. 그 안경은 장점과 가능성만 보이는 신비함을 지니고 있다고요. 그래서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기어이 그분의 제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요. 물론, 저 역시도 그 사랑에 포박된 한 사람입니다.

케빈 윌리엄 허프의 <선생님은> 이 사실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 마음에 색깔을 칠하고 생각의 길잡이가 되고/ 학생들과 함께 성취하고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길을 밝혀 젊은이들을 인도하며/ 지식과 진리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 줍니다. / -중략-/ 시인, 철학자, 왕의 탄생은 선생님과/그가 가르치는 지혜로부터 시작 ” 됩니다. 

오! 놀라워라. 지금의 삶이 가치 있는 것은 만나고 가르치고 함께 하는 이들 중에 장차 시인, 철학자, 왕이 탄생한다는 사실에 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물론, 교사로서의 분명한 비전과 터가 박힌 꿈과 아낌없는 위로와 격려도 뒤따라야겠지요. 이게 교사의 사명 아니겠어요?

성경은 하늘 아버지가 택하신 이들 중에는 ‘교사’가 있음을 증언합니다. 그만큼 교사의 사명이 크고 원대하다는 뜻이겠지요. 이분들의 식을 줄 모른 열심과 격려와 기도로 세계는 한 뼘쯤 밝아졌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이 세상도 복락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만 아니라 이상과 사랑을 가르쳐 준 선생님은 그리 많지 않은가 봅니다. “보통 선생님은 말을 할 뿐이고 좋은 선생님은 설명을 하고 훌륭한 선생님은 몸소 보여주고 위대한 선생님은 영감을 줍니다.” 벗님들은 어떠세요? 말을 할뿐입니까. 아니면 사랑의 실천도 몸소 보여주고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까?

저는 아닙니다. 그러니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요. 하워드 헨드릭스의 고백으로 자신을 추슬러봅니다. 젊은 날 그가 만난 스승과 나눈 대화입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연구에 열심을 낼 수 있습니까? 잠시도 연구를 게을리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내 학생들이 고인 물웅덩이에서가 아니라 흐르는 시내에서 물을 마시게 해 주고 싶다네. ” 아뿔싸! 가르치기 전에 먼저 배워야겠네요. 가르친다는 것은 배우는 일이라고 하잖아요. 그분은 교사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양떼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이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쑥 내뱉는 기도가 생겨났습니다. 좀 더 제 개인적으로 굶주린 영혼이 되고 싶어집니다. 가르치기 전에 배우는 일에 관심하고 싶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을 돕고 섬기고 사랑하면서 그분을 향한 갈망이 더 풍성해지고 충만해지는 축복을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깊은 자각으로 연결됐습니다. 들어보실래요?

세상에서 다치고 아픈 인생들과
작고 하잘 것 없는 것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외롭거나 쓸쓸하거나
바쁘거나 허둥대는 육신들에게
자분자분 천국비밀도 들려주며
버려진 잡동사니와 관심조차 받지 못한
모든 사물들에게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불순하고 표독스럽고 게걸스런
개차반 인생과도 잠자리를 같이하며
혈기와 감정 표표히 드러내기보다
숨 한 번 더 쉬고 나서 맑은 정신으로
우수수 몰려든 가시 돋친 감정 탈탈 털어내면서
잔물결처럼 짧게 웃을 줄 알고
밥 굶는 아이 곁에서도
터럭만큼의 가책 하나 느끼지 못한 배불뚝이들에게도
봄나물처럼 생기롭고 상큼한 세상
경험하게 하는 삶

나한데 주어진 당신의 명령이다.

   -그리스도인 ․ 3; 미발표-

「신도 버린 사람들」의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는 절규합니다. “우리가 천하게 태어난 것은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와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은 불가촉천민입니다.” 그는 불가촉천민에서 세계경제의 지도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에게도 마음의 생각에 색깔을 칠해주고 생각의 길잡이 되어 줬던 선생님이 계셨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목사가 되고 싶다면 너무 지나친 과욕일까요? 아닙니다. 아닐 것입니다. 진정 그분이 바라는 소원임에 분명합니다.

내남없이 들춰본 학창시절의 빛바랜 사진첩에는 밤하늘의 샛별처럼 박혀 있을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뭔가 의미가 되어보고자 힘쓴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한 우리 시대의 거울이며 창문인 셈입니다. 나 외는 모두가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교사’의 정체를 생각함으로 조금 철들었다면 이 또한 교만일까요? 제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점검해봤습니다.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복음’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좀 더 균형 잡힌 목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그랬지만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져야겠습니다. 조심스레 다짐해봅니다. ‘오늘 선 자리가 당신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당신께서 목숨 버려 완수하셨던 구원의 길입니다. 이제, 종이 당신 뒤를 따르렵니다.’

윤영배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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