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아(idea), 즉 형상(form)이라는 말은 시각에 기초를 둔 용어로 라틴어의 '보다(video)'와 같은 어원을 가지며, 영어 vision, visible, videotape 등은 여기서 파생되었다. 플라톤의 형상은 시각적인 모습과 유추에 의해서 생성된 것이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목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고 어떠한 따뜻함도 작용하지 않은 채로 분리되어 있으며, 인간 생활 세계와는 전혀 무관하고, 도리어 그러한 세계의 저편 훨씬 위쪽에 존재한다. 플라톤이 문자에 익숙한 인간으로서 집요하게 구술문화에 반대하는 반응 또는 과잉반응을 보인 것은 그의 마음속에 작동하는 무의식의 힘 때문이었음을 물론 플라톤 자신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말을 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 말을 듣는 것과 글을 읽는 것. 말을 하고 말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 글을 읽으며 글자와 여백을 보면서 교감을 하는 것. 어찌 보면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을 매일 내면화시키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우리의 삶에 유용할까? 잘 모르겠다. 어떤 이는 입 한 번 잘못 놀려 한 방에 훅 날아가고, 어떤 이는 온몸을 다 바쳐 쓴 글로 비난과 참화를 당하고. 대학 2학년 때였다. 부전공으로 철학을 하고 싶어 <서양철학사>라는 두꺼운 책을 사들고 그 책을 번역한 교수의 수업을 들었다.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해 말하는데, 책의 내용을 읊다시피 했다. 자신감 있는 말투이기는 했지만, 설명 방식이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 같았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해 인상을 쓰고 있는데, 모르는 옆 학생이 자기도 그렇다는 시선을 보내며 나가자고 했다. 둘은 이름도 거창한 미네르바 동산에 가서 낮술을 마셨다. 돌이켜보니 당시 교수의 강의에 욱했던 것은 전두환 시절에 이데아 운운하는 게 사치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글에서 “인간 생활 세계와는 전혀 무관하고”를 보니 플라톤의 이데아는 본래 그런 것이었나 보다. 오늘도 나는 말을 할 것이고,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무엇이 구술문화이고, 무엇이 문자문화인지 구별하는 사고의 과정은 여의치 않다. 다만 위의 글 다음에 인용되어 있는 성경 구절이나 곱씹어 보자.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혼은 사람을 살린다.(고린도후서 3장 6절)”

▲ 김서정 작가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2년 단편 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어린이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 등을 썼고, 북한산 산행기로 산문집 《백수 산행기》, 먹거리와 몸을 성찰하는 에세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평화 산문집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 글쓰기 강의인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지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출판 편집일과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서정 작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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