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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의 힘<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6.05.16 11:05
ⓒ임정훈

동티모르에서 처음 떠난 산행이었다. 실로 1년 만이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지인들을 만나 작별인사를 한 것처럼, 내 발길이 자주 닿았던 곳에도 작별을 고했다. 그중에 하나가 구봉산 해솔길이다.

구봉산은 구봉도에 있는, 이름처럼 아홉 개의 봉우리를 갖고 있는 산이다. 조금은 험한 산으로 느껴지겠지만, 사실은 산을 오른다는 것보다는 그냥 유유자적 걷기에 좋은 산이다. 해솔길은 이름만 예쁜게 아니다. 바다와 소나무를 함께 보며 걷는 구봉도의 둘랫길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멀지 않은 곳에 송도가 보이고 인천대교를 지나 영종도를 볼 수 있고, 돌아서면 선재도 더 멀리 영흥도가 수채화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길이다. 게다가 저녁 무렵 일몰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붉은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되는 순간은 지켜보는 것 만 으로도 황홀하다.

대부도의 내 삶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구봉도 해솔길. 어쩌면 내 속내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길이다. 떠나기 전 해솔길을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 그곳엔 막 개화를 앞 둔 산나리꽃들이 너도나도 먼 길 떠나는 나를 배웅하고 있었다. 

그즈음 누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나는 기꺼이 바다가 보이는 산길을 걷는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에겐 해솔길이 그랬다. 그러기에 딜리로 올 때 마음속에 해솔길도 함께 담아 왔다.

딜리는 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아름다운 해변도시다. 하지만 그 산은 나에겐 그냥 딜리의 뒷산에 지나지 않았다. 산길도 질투를 하는가. 이국의 뒷산에 새로운 정을 주고 싶지가 않았다. 그 것은 새로운 사귐이 어려운 내 성격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산행을 피했고 무엇이 두려운지 선뜻 나서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주말 드디어 딜리뒷산을 걷기로 결심을 했다. 그것은 내가 수년을 손도 못 대고 있던 논문을 쓰겠다고 결심한 것만큼이나 힘든 결정이었다. 마음을 정하자 소풍가는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운동화를 챙겨 문 앞에 두고, 물도 얼려놓고 파파야도 미리 깎아두고 약간의 간식도 챙겼다. 

구봉산 나리꽃 ⓒ임정훈

이른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어제와는 달리 큰일을 앞둔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구봉산 외에는 산의 정상을 오른 경험이 거의 없었고, 더구나 일 년 동안 높고 낮음을 떠나 산을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일행에게 폐가 될까봐 걱정도 되었다.

시작은 “크리스토 레이” 부근에서였다. 차에서 덜렁 내려 산으로 향하는 나에게 선생님 한분이 산에 오르기 전에 배낭을 단단히 조여 메라고 하셨다. 나는 신발 끈을 메며 의지를 다지듯 배낭을 몸에 최대한 밀착시켜 조였다. 그러자 다시 선생님은 자신이 사용하는 지팡이를 건네며 이걸 짚고 오르내리라고 하였다.

지팡이라, 거절하기 난감한 상황이었다. 지팡이를 들고 다니려면 오히려 짐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배려가 난처하지 않도록 일단 지팡이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지팡이는 산으로 들어서 몇 걸음 가지 않아 자신의 임무를 보란 듯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름 모를 그래서 그저 “크리스토레이” 뒷산이라 불리는 그 산은 해솔길처럼 아기자기하게 잘 다듬어 진 그런 길이 아니었다.

아니 거기엔 길이 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뤼쉰이 「고향」에서 말한 희망처럼 반복해서 사람들이 걷다보니  만들어진 길이었다. 그냥 잡풀우거지고 자갈밭 같은 길을 따라 가파른 능선을 올라야 하는 산이었다.

나는 온 체중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걸음 정상을 향해 걸었다. 까마득해 보이는 가파른 길도 지팡이가 있으니 한결 가볍게 생각되었다. 상상도 못한 지팡이의 힘에 놀라울 뿐이었다. 어느새 나는 내 두 다리보다 지팡이를 더 의지하게 되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는 언제나 지팡이를 들고 다니셨다. 하얀 모시두루마기를 곱게 입으신 할아버지 손엔 항상 단장(短杖)이라 불리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할아버지의 지팡이는 반질반질하게 윤기를 내며 언제나 마루 기둥에 걸려 있었고, 외출할 때마다 들고 나가시는 지팡이를 나는 어르신들의 악세서리 정도로 알았다. 이미 지팡이의 힘을 알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고마움과 소중한 마음을 담아 윤이 나도록 닦아 놓으셨던 것 같다. 

지팡이 덕에 동행자들을 놀래키며 세 개의 봉우리를 올랐다. 시원한 바람과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발아래 가까이 투명한 비취색 바다가 아름답게 보였다. 늘 가슴에 있던 해솔길을 잠시 접어두어도 좋았다. 

시간이 갈수록 햇볕은 뜨거워졌다. 지팡이는 오르막길에 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리막길에 더 요긴했다. 한 발짝 앞서 짚어주면 안심하고 내 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섯 시간은 족히 걸었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재했다. 이것은 모두 지팡이의 도움 때문이었다. 

다음날 긴 시간 산행이 가져다 줄 후유증을 염려 한 나의 생각은 기우였다. 그 지팡이는 내 후유증까지도 온전히 가져갔나보다. 그제서야 동티모르의 첫 산행을 걱정하는 나에게 지팡이를 건네준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했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뒷북이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임정훈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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