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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스도인이 구약의 예언서를 읽어야 하는가장일선, 『구약성서와 설교』 9
에큐메니안 | 승인 2018.10.18 21:27
구약성서를 독서할 때, 자주 가지게 되는 회의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인인 내가 도대체 구약을 왜 읽어야 하지?”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으로 가득찬 예언서를 읽을 때면 이러한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됩니다. 정말 왜 읽어야 할까요?
또 하나, 구약의 예언서를 잘못 독해하면 가지게 되는 위험한 생각 중의 하나가 “그래, 이스라엘은 죄를 지어 멸망했어. 이스라엘은 망해도 상관없어.” 하면서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빠지게도 됩니다. 결국 나치의 600만 유대인 학살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확장되어 차별과 배제를 당연시 하는 풍조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근본에 구약성서의 예언서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 장일선 한신대 구약학 교수님의 신학적·설교학적 이해를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해석한 사람들이다. 역사는 유일회적 사건이며, 지혜처럼 보편성을 띠거나 민담처럼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역사와 분리될 수 없으며, 구체적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점이다.

구약의 예언자들, 신앙의 충실한 전승자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 예언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를 간단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는 구약의 예언자를 메시야 도래에 대한 예고자로 생각해 왔으나, 예언서의 대부분은 메시야의 도래나 세상 종말과는 상관 없는 내용이다. 우리는 본문 자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보지 않고 메시야 도래라는 선입관만을 가지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구약의 예언자를 또 사회 개혁자로 보는 견해도 타당하지 못하다. 한때 서구에서는 19세기 후반 산업 혁명의 결과로 사회 변혁을 시도할 무렵, 예언자들을 사회 정의와 사회 변혁의 선구자로 보는 사회 복음주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예언자들이 사회의 부정 부패를 규탄하여 정의를 부르짖은 것은 사실이지만, 예언자들 모두 사회 개혁자들로 보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예언서에는 사회 정의를 다루지 않은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 Elijah ⓒPravoslavieto.com

또 한편으로 예언자를 환상적인 성품을 가진 자로 보는 견해도 대두되었다. 현대 심리학의 발전은 예언자를 종교적인 천재로 규정하며,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숭배를 부르짖는 의로운 목소리로 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정신이상자들이 아니며, 이러한 시각이 그들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현금의 새로운 발견이다.

그래서 최근의 예언서 연구 동향은 예언자를 개혁자 또는 신비주의자로 보는 대신, 과거 전승의 충실한 보유자로 보는 것이다. 예언자들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되새기며 그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여 그 메시지를 선포한 사람이라는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같은 관점은 종래의 예언자 개인의 천재성을 강조하고 개인의 전기적인 요소와 그의 신앙 체험이 메시지 이해의 관건이라고 보던 견해를 지양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예언자의 모습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예언서, 이스라엘 역사 해석서

우리가 예언서를 펴보면 거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예언들이 종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첫째는 예언자 자신의 전기적인 자료로서 예언자에 관한 서술문이 있고, 그 다음에는 예언자 자신의 예언들이 있다. 아모스, 요엘, 미가 등의 대부분의 예언서가 이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탄식, 찬미 등이 있다. 아모스의 송영(암 4:13, 5:8-9, 9:5-6)이나 예레미야의 독백 같은 것이다(렘 15:15-18, 17:14-18 등).

예언자들의 활동에 관한 서술문은 사무엘서나 열왕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초기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전 8세기부터 예언자들의 말이 수집되기 시작하였다. 아모스와 호세아 등이 최초의 수집 작품이다.

그후 300년 혹은 400년 동안 계속 수집되다가 왕국의 멸당과 더불어 예언 활동도 중단된 것이다. 예언자들의 예언 형태는 장송곡(암 5:1). 저주문(사 5:8), 법의 소송문(미 6:1), 비유(사 5:1-7). 지혜의 말(암 3:3), 율법 인용구(사 1:16-17) 등으로서, 생활 전반의 체험을 통해 예언자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효과있게 전할 수 있는 방편을 찾아낸 것이다.

예언자들이 즐겨 씨는 양식 중의 하나가 “사자 문체”이다. 이것은 예언자가 야훼의 메시지를 대시 선포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심부름꾼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을 선포하는 자이다. 포로기 이전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메시지는 과거 여러 세기 동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관계가 단절되고, 이스라엘은 멸망하여 그 땅에서 쫓겨나는 역사적 시대의 종국이 올 것을 선포한 것이다.

구약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기의 중대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관련된 예언자들은 스바냐, 나훔, 하박국, 예레미야, 에스겔, 오바댜 등이며, 사마리아의 멸망과 관련된 예언자는 아모스와 호세아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회복과 관련된 예언자는 제2 이사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이다.

예언자들은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에 전격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을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위에서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이 이 새로움은 심판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하고, 끝이 온 다음에는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예언서가 기독교인에게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 위에 새 일을 다시 시작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백성을 새로 지으시어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 과업을 선포했던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그러한 권위를 주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외친 약속이나 심판을 그대로 우리의 상황에 적용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언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으며, 그러한 지식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위해 어떻게 하실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역사의 한 시기에 어떻게 개입하시어 새로운 일을 진행시켰는가를 보여 주기 때문에 우리는 예언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백성들이 어떻게 행동하기를 기대하시며 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행위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예언자들이 사회 개혁을 부르짖은 것은 아니다. 때는 이미 늦었기 때문에 현재의 질서 체제는 어쩔 수 없이 망하리라는 것이다. 예언자들이 바랐던 것은 소수의 사람이라도 야훼의 말을 듣고 그들의 행동을 바꾸어 야훼가 시작하시는 새로운 공동체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 시대의 예언자가 되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탄생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예언자의 메시지는 마지막 때가 임하기 전에 외쳐야 할 화급을 다투는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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