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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의 왕, 술의 왕<김서정의 하루 3분 글쓰기 교실>
김서정 작가 | 승인 2016.05.19 10:44

하지만 유대인이 예수를 거부했을 때, 그들은 선택되지 않은 민족이 되었고, 대신에 예수를 받아들인 이들이(미국인) 새롭게 선택된 사람들이 되었다. 새로이 선택된 사람들은 예전의 선택된 민족과 애증의 관계에 있었다. 여기에 추가해 통상적인 외집단 멸시와 인종차별주의(“예수를 죽인 자들!”)가 나타났다. 그런 반면에 양쪽은 같은 경전을 썼다. 유대 민족은 비록 거부하긴 했지만 예수를 낳았을 뿐 아니라, 기독교인이 원하는 구약성서도 낳았다. 역사적인 공통점들도 둘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성서를 앞세워 주변 민족을 집단 학살하고, 새로운 땅에 이주하고, 인종적 우수성을 내세우고, 신의 말씀을 토대로 같은 신앙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위의 글은 한 마디로 성서를 근거로 한 종교 집단의 행동들이 기만적이었다는 것이다. 성서 내용을 따르고 안 따르고를 떠나 인간은 자기만의 기분을 좋게 하는 기만을 위해 생존의 본능인 공격성을 여실히 발휘하며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는 동안 나는 여태까지 가지고 있었던 종교와 학살의 관계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즉, 종교는 진화의 부산물이기에 그 신성성 또한 부산물이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외피를 쓴 전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어제도 나는 에니어그램 교육을 받았다. 찬송가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속으로 웃고만 있었다. 대학 시절 술집에서 그토록 불렀던 노래가 찬송가 개사곡이었다니. 당황함이 연신 웃음을 머금게 했다. 노래 제목은 ‘춤의 왕.’ 1절은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내가 베들레헴에 태어날 때에도/하늘의 춤을 추었다”이고, 후렴은 “춤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나는 춤속에 너 인도하련다”인데, 여기서 ‘춤’을 ‘술’로 바꾸어 불렀다. 분명 그랬던 기억이 있다. 왜 그랬을까? 아니 그보다 왜 그런 노래가 퍼졌을까? 이른바 운동권 출신 목사들을 보니 짐작이 간다. 거기서 시작된 것 같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추론이지만.

   
▲ 김서정 작가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2년 단편 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어린이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 등을 썼고, 북한산 산행기로 산문집 《백수 산행기》, 먹거리와 몸을 성찰하는 에세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평화 산문집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 글쓰기 강의인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지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출판 편집일과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서정 작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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