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습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은 억새 아니면 들국화일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꽃은 없습니다. 들국화란 ‘산야에 피어나는 여러 가지 국화꽃’을 총칭하는 말일 뿐입니다.

산국,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 해국, 코스모스 같은 국화과의 꽃들이 그 범주에 들어 있습니다. 코스모스를 들국화라고 부르니 이상하지요? 사실 다른 국화과의 꽃들 처지에서 보면 자기들 이름이 다 있는데 ‘들국화’라고 하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국화과의 꽃 중에서 ‘해국’을 제일 좋아합니다.

해국(海菊)은 이름 그대로 바닷가 근처에 피어나는 꽃이요, 바닷가 갯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는 꽃입니다. 갯바위라는 척박한 조건뿐 아니라 폭풍우까지도 견뎌내야 하고, 태풍이 오면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이파리가 까맣게 타들어가는 아픔까지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악조건에도 여전히 피어나는 꽃이며, 기왕 핀 꽃 활짝 웃는 모습에 해국을 바라보면 내 삶을 감싸고 도는 아픔 혹은 어려움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힘을 얻는 것이지요.

제주의 검은 화산석이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바위틈마다 해국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피어 있습니다. 아마 요즘 그렇게 피어 있을 것입니다.

너무 예뻐 뜰에 옮겨 심고 싶어도 얼마나 뿌리를 바위에 깊게 내렸는지 옮겨 심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바위틈이 아닌 곳에 뿌리를 내린 것들도 있지만, 해국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렸는지가 좌우를 합니다.

어찌어찌 몇 뿌리 구해서 뜰에 심었더니 이파리도 무성하고, 꽃도 많이 피었지만, 해국은 역시 바닷가 근처에 피어 있어야 제 맛입니다. 그래도 활짝 웃는 꽃이 대견스럽습니다.

꽃은 그렇습니다.
어디에 피어나도 활짝 웃고 피어납니다. 심지어는 쓰레기더미에 피어나서도 웃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자연은 그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우리네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을이 깊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피어난 꽃들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두고 싶습니다.

김민수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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