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나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피어나는 꽃 중에 국수나무라는 꽃이 있습니다. 가느다란 줄기의 껍질을 벗기면 국숫발처럼 하얗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정말인가 싶어 줄기의 껍질을 벗겨보긴 했지만, 국숫발처럼 하얗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다는 정도였습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 중에 조팝나무, 이팝나무가 있습니다.

이렇게 음식의 이름이 들어간 꽃은 민중들의 배고픔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꽃들이 피어나는 시기는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기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국수나무 꽃이 필 무렵이 되어서야 남도의 청보리가 서서히 익어가기 시작하니 겨울보다는 수월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힘든 계절입니다.

이렇게 당장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떤 꿈을 꿨을까요? 더는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새 세상을 꿈꿨을 것입니다. ‘천지가 개벽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나쁘지는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충분히 가진 자들은 그들이 꿈꾸는 새 세상을 불경스럽게 바라보았을 것이고, 자신들이 가진 힘을 총동원해서 가난한 이들이 꿈꾸는 새 세상은 불경스러운 것이라고 매도했을 것입니다.

오늘, 대형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 나라는 부자들을 위한 천국입니다. 이 땅에서의 부유함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이 축복이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게 하겠다는 극단의 이기주의적인 신앙이 한국교회에는 팽배해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에도 별 관심이 없고, 지금 이 땅에서 고난당하는 이들의 아픔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은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소외된 자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사이비 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옛날엔 잔치를 하면 으레 국수가 나왔습니다. ‘잔치국수’가 있을 정도로 국수는 여럿이 함께 나누기에 쉬운 음식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국수는 ‘나눔’의 음식이었고, 서민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민들의 삶은 늘 만만치가 않았나 봅니다. 보리가 익어갈 무렵 동산에 하얗게 피어나는 꽃을 보고, 국수를 떠올릴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일용할 양식, 그것은 사람됨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것을 지키려고 아우성치는 이들을 지금 이 사회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혹은 교회는 건강합니까?

김민수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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