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설입니다. ‘설’이란 이름의 유래는 3가지 정도로 전해져 옵니다. 먼저, 새해의 첫날이라 아직 익숙하지 않고 낯설다는 의미로 ‘낯설다’의 어근인 설에서 전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처음 시작이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어 시간이 흐르면서 ‘선날->설날’로 연음화 되었다는 설이 두 번째입니다. 마지막으로 삼가다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설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 표현했던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암튼 설이라는 의미에는 새해 첫날부터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설이나 명절에 차례를 지냅니다. 그런데 (사)밝은마을의 윤중 선생은 ‘차례’보다는 ‘차레’가 맞다고 합니다. 차례(茶禮)는 차를 올려놓고 제사를 지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밥과 같은 위치에 차를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레의 뜻은 “채움과 비움”이라는 것입니다. ‘차’는 채움이라는 뜻인데, “가득 차다, 찰랑찰랑, 벅차다” 등에서 그 뜻의 파생을 알 수 있는 말입니다. ‘레’는 비움이라는 말인데, 벼랑끝이라는 옛말이 ‘비레끝’이라고 하는 데에서 ‘레’의 의미를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차레 중에는 ‘마차레’가 있는데, 공동체가 지내는 차레를 말합니다. ‘마’라는 말은 참되다는 뜻도 있고 뿌리가 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마차레는 참된 근본이 되는 차레가 됩니다. 공동체야말로 한 개인을 진정 참되게 만들고 개인의 존속에 뿌리 또는 밑바탕이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차레를 통해 통렬하게 자기를 반성하고 하늘의 뜻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참 자아를 되찾는 다짐이 있어야 제대로 된 차레라 할 것입니다.

사형수가 된 예수님

죄가 없다고 하면서도 빌라도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당시 로마가 반란세력이나 전쟁포로를 처형하는 방법이었던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총독공관의 마당(법정)으로 끌려갔고, 로마의 모든 군인들이 소집되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로 만든 관을 엮어서 그에게 씌웠다. 그들은 “안녕-, 유대인의 왕-” 하면서 인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무릎을 꿇어서 그에게 경위를 표했다. 그들이 그를 희롱한 후에, 그들은 그에게서 자색 옷을 벗기고 그의 옷을 입혔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그를 끌고 나갔다.”

빌라도 법정 자리에는 당시의 상황을 기념하는 여러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가했던 곳에 세워진 ‘채찍교회’, 빌라도가 사형선고를 내린 것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사형선고교회’, 또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자색 옷과 가시관을 씌운 곳에는 ‘에케호모 교회’가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기 전에 먼저 채찍질을 합니다. 채찍은 동물의 뼈나 납덩이가 달린 가죽 끈이었습니다. 이러한 매질은 사형수를 쇠약하게 만들어 십자가의 고통을 줄인다고 하지만, 반역(반란)으로 죽임당하는 사람을 배려할 정도로 그들은 아량이 넓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들의 지배와 가학성을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철저하게 유대를 지배했던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서 죄가 없지만 사형수가 된 예수님은 이 땅에서 몇 명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대표(상징)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인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다는 것입니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를 점령했던 기독교 국가들에 의한 탄압과 식민지화, 우리 현대사에서 빨갱이 사냥이 있습니다. 

가시관과 호랑가시나무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가시로 만든 관을 씌웠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모함에 의한 호칭이고, 그래서 금으로 장식된 왕관이 아니라 고통을 상징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가시관은 고난, 고통, 모욕, 능욕, 박해로 가득 찬 예수님의 삶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땅의 교회들은 ‘가시관’을 쓰고 있어야할 예수님에게 ‘황금면류관’을 씌워 섬기고 있습니다.

성서에서 가시나무는 여러 번 등장합니다. 가시라 하면 일반적으로 장미과 식물의 날카로운 가시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된 가시는 가시가 있는 대추나무의 일종입니다. 히브리명은 Atad 또는 Naatsuts라 하며, 영명은 Christ thorn(그리스도 가시)입니다. 이것은 식물 분류학자인 린네우스가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을 만든 식물이라고 믿고 이름붙인 것입니다.

이 식물은 지중해 연안, 즉 레바논, 팔레스틴, 시나이 등에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모리아산의 동쪽 경사진 면과 골고다 요단계곡 등에 흔히 자라고 있습니다. 가시는 단단하여 바늘처럼 날카롭고 예리하나 길이는 짧은 편입니다. 이 나무는 가시가 있어도 둥글게 엮는 데는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되므로, 로마병사들이 칼로 쉽게 잘라서 가시관을 틀어 엮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사나운 가시가 있는 식물이면 모두 예수님에게 씌워졌던 가시관의 식물로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그 대표적인 식물이 호랑가시나무입니다. 서양에서는 호랑가시나무가 액운을 쫓아내는 신성한 기운을 가진 나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로마인들은 호랑가시나무를 존경과 희망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호랑가시나무의 가시가 사람의 나쁜 마음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마구간이나 집 주변에 이 나무를 걸어두면 가축이 병에 걸리지 않고 잘 자란다고 믿어오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귀신을 물리치는 데 이 나무가 좋다고 해서 서양 사람들이 아끼는 나무입니다.

영국에서는 어린 아이를 공부시킬 때 매로 다스려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호랑가시나무의 가지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남쪽 지방에서는 예전에 호랑가시나무의 가지를 꺾어 정어리의 머리에 꿰어 처마 끝에 매달아 두었답니다. 액운을 쫓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습속이었는데, 이는 귀신이 잘못 들어오다가는 정어리처럼 눈을 꿰게 된다는 경고를 상징하는 의미였답니다. 오늘날에는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나무로 많이 쓰입니다.

호랑가시나무와 ‘로빈’이라는 작은 새를 둘러싼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고 이마에 파고드는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뒤따르며 그의 고통을 함께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던 수건 이야기도 남아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짐승들도 함께 괴로워할 만큼 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갸륵한 새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빠귀과의 티티새인 ‘로빈’이라는 새입니다. 이 작은 새는 예수의 머리에 박힌 면류관의 가시를 뽑아내려고 온 힘을 다했다는 겁니다. 로빈은 면류관의 가시를 뽑아내기 위해 가시관 가까이에 다가갔고, 그럴 때마다 번번이 가시를 뽑아내기는커녕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연약한 가슴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들게 됐답니다. 로빈의 안간힘은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온통 피투성이가 된 로빈은 예수님의 머리에 씌워진 가시관 위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서양인들은 이로부터 예수님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썼던 작은 새 로빈이 좋아하는 나무를 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로빈은 호랑가시나무에 핏빛으로 열리는 빨간 열매를 아주 잘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로빈이 먹어야 할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는 함부로 따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열매를 함부로 따게 되면 그 집안에 재앙이 찾아온다거나 땅에 떨어진 이 나무의 열매를 밟기만 해도 재앙을 부른다고까지 합니다.

호랑가시나무의 날카로운 가시는 예수님의 가시관을 상징하게 됐고, 이 나무의 빨간 열매는 예수님의 핏방울을 상징했답니다. 그런 까닭으로 예수님이 탄생한 날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에는 호랑가시나무로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호랑가시나무의 꽃말은 ‘당신을 지켜줄께요.’와 ‘앞날을 준비하세요.’입니다. 두 가지 모두 앞으로의 삶에 액운을 물리치고, 행복과 희망을 가져오게 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호랑가시나무의 꽃말에서 예수님이 가시관을 쓴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하거나 대신하는 일이며,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가르침입니다. 

갈대(부들)로 희롱당하는 예수님

계속해서 로마 군인들은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희롱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군인들이 갈대를 예수님의 오른 손에 들게 하였다가, 다시 그 갈대를 빼앗아서 예수님의 머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 갈대가 바로 ‘부들’이라고 합니다. 연못 가장자리와 습지에 갈대처럼 자랍니다. 잎이 부드럽고 부들부들하다는 뜻에서 ‘부들’이라고 하며, 씨를 휘날려서 물이 조금만 있는 습지면 언제나 뿌리를 내리는 생명력이 매우 강한 수생 식물입니다. 곧게 자란 줄기 끝에 갈색을 띤 암꽃이 소세지 모양으로 달립니다.

부들의 줄기는 갈대의 줄기보다 질겨 예로부터 부들 줄기를 갈라 짠 돗자리는 최고급으로 칩니다. 또한 부들 잎으로 발, 방석, 소쿠리 등을 짜면 오래도록 쓸 수 있고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아 감촉도 좋습니다. 부들의 꽃가루는 포항이라 하는데, 포항은 지혈제로 사용되며 월경불순과 이뇨에도 좋습니다. 암꽃이삭은 옛날에는 솜 대신 지혈제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부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외진 섬에 토끼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섬을 떠나 육지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던 차에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악어들을 불러 토끼의 수가 많은지 악어의 수가 많은지 내기를 하자고 하며, 먼저 악어들이 일렬로 육지까지 쭉 늘어서면 자신이 세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순진한 악어들은 시키는 대로 하였고 토끼는 악어들의 등을 밟고 원하던 육지로 갈 수 있었습니다. 뒤늦게 토끼에게 속은 것을 안 악어는 토끼의 털을 모두 뽑아 버렸습니다. 때마침 그 곳을 지나가다 토끼를 본 신령이 강가에 있는 부드러운 풀을 모아서 깔고 있으면 좋아질 거라고 하여 그대로 했더니 상처가 아물고 털이 새로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풀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들이었습니다.”

일본 신화에는 부들 꽃봉오리가 천상의 생명을 싣고 바람에 날려 지상으로 내려와 생명의 씨앗을 옮겨다 주었는데, 그 씨앗이 닿은 곳에서 여러 신들이 태어나 천지창조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들을 사형수가 된 예수님에게 쥐어 주었다가, 다시 그 부들을 빼앗아 예수님의 머리를 치며 희롱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와 관련시켜 보면 부들의 꽃말이 ‘순종’인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기세등등한 권력에 의해서 희롱과 조롱을 당하고 능욕이 있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생명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묵묵히 순종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자색(紫色) 옷을 입은 예수님

로마의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자색(보라색) 옷을 입히고 희롱을 한 다음에 다시 벗겨서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었다는 것을 희롱하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왕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고난과 희망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자색, 보라색은 왕이나 귀족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색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아마도 그 색을 내는 원료가 귀해서 더 그랬을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페니키아 최고의 특산품은 최상품 목재인 레바논 백향목과 함께 자주색 물감이었습니다. 순금의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싼 자주 물감으로 물들인 자색 옷은 부유층의 상징이었고 로마시대에는 ‘왕궁 자색(royal purple)’이고 했습니다.

통계적으로 병이 든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 자색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색을 죽음의 색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 치고 죽고 싶은 사람 거의 없을 터이므로, 오히려 자색은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병자들이 선호한 색깔이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입니다.

색 심리에서 보라색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로한 상태, 그래서 꾸준히 울적한 생활이 계속 되고 있는 상태,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한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고집이 세고 지구력이 강하며 치밀한 성격으로 어떤 일이든지 잘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아함, 고급스러움, 신비함을 표현하고 색이기도 합니다.

교회력에서 사순절과 대림절의 상징은 보라색입니다. 보라색(Violet)은 파랑과 빨강을 혼합하여 만듭니다. 보라색은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곧 신의 예지와 자애를 하나로 향한 것으로 해석되어,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몸을 희생한 ‘수난(受難)의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파랑과 빨강의 조화는 하늘(하느님)과 인간(피)의 조화를 나타내고, 신성과 고귀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에 사용되는 보라색은 기다림과 희망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보라색은 바로 고난 속의 희망을 상징합니다.

고난 속의 희망

이제 다음 주 수요일(2/17, 재의수요일)부터는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에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해, 모든 생명을 위해 고난당하심을 기억하고 묵상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 고난을 미화하거나 고난을 즐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생각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 고난을 떨쳐버리려는 데에 있습니다. 고난을 끌어안음으로써 “고난 속의 희망”을 보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고난이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아픔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 미래를 위한 시련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그 시련을 승화시킴으로써 무엇을 깨닫고 얻고 있습니까? 나에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인내와 연단으로 이기고 희망이 솟아나기를 빕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고난이 지금 나와 같이 고난 받는 모든 생명들과의 연대를 강하게 하고, 온 생명의 해방을 부르는 운동의 시작임을 기억합시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