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드린과 빌라도의 재판

산헤드린(대제사장들, 장로들, 율법학자들)은 밤중에 예수님을 재판하여 신성모독으로 정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곧바로 의회를 다시 소집했습니다. 그들은 합의에 도달하였고, 예수님을 결박하고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넘겼습니다. 빌라도에게 사형을 위한 최종적인 판결을 맡긴 것입니다.

제 본격적으로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에 의한 재판이 시작됩니다. 산헤드린의 재판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냐’에 초점을 두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정죄합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재판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냐’에 초점을 두면서 예수님이 황제의 권력에 도전하면서 정치적 혁명을 시도하였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소이유가 바뀐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대제사장들, 장로들, 율법학자들에게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목적만 있을 뿐 그 수단은 어떠해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네 복음서에서 산헤드린과 빌라도 재판에서 예수님을 기소한 내용을 모아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헤드린에서는 예수님이 “성전 파괴하려 했으며,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하느님의 아들) 즉 그리스도냐?” 하는 것이 심문의 중심이었으며 결국에는 “신성모독”으로 정죄당합니다. 산헤드린이 빌라도의 로마법정에 기소할 때에는 예수님이 “민족을 오도하고, 납세 거부를 선동하면서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였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 진리를 증언하는 왕, 황제에 반역하는 자”라고 합니다.

혹시 나도 산헤드린의 권력자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주장하는 근거가 목적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인지, 근거 없는 단서들을 나열하면서 논리를 내세우지 않는지, 합리와 민주를 내세워서 또다른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와 우리 공동체에서 하고 있는 많은 회의는 민주적 절차를 표방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향한 과정입니다. 개개인의 주장은 중요하지만, 그 속에 공동체와 다른 구성원들에게 한 사랑과 배려가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빌라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빌라도에 대해서 이견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서에 예수님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빌라도의 모습과 역사적 기록에 의한 빌라도의 행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판결에 대하여 복음서와 사도신조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빌라도의 고뇌와 억울한 누명에 대한 기록들도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에게 억지로 떠밀려서 예수님을 죽게 내버려둔 것처럼 보입니다. 사도신조에서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해서 빌라도의 변명과 고뇌를 긍정정으로 받아들여서 그를 옹호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로마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위작(僞作)한 “빌라도 보고서”, 어쩔 수 없이 사형선도를 내릴 수밖에 없었음을 항변하는 연극 “빌라도의 고백”(이진수 작)이 있습니다. 특히 빌라도의 아내는 프로쿨라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에디오피아교회에서는 빌라도와 그의 아내가 추앙을 받고 있으며, 희랍정교회에서는 그의 아내 프로쿨라만이 추앙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소극적으로 빌라도의 죄를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빌라도는 성격이 우유부단하거나 마음이 여린 사람이기 때문에 유대 군중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는 억시게 재수 없는 사람으로서 하필 왜 그 때에 유대의 총독으로 있어서 예수님을 죽게 하는 일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2천년 동안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또한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인 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집행했을 뿐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빌라도는 A.D. 26-36년 까지 제 5대 총독으로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지역을 통치한 인물입니다. 빌라도는 헤롯 대왕의 아들 아켈라오가 이 지역을 통치하는데 실패하자, 로마가 직접 통치하기 위해 파견한 인물입니다. 때문에 빌라도는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유대인들을 강하게 억압하는 정책을 폄과 동시에 로마에 대해 강하게 적대감을 표명하는 열심당원들을 색출하고, 처형하기도 하였습니다. 필로(Philo)에 의하면 그는 부패하였고 간교하며 잔인하였다고 합니다.

빌라도가 총독으로 있으면서 저지른 악행을 유세비우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황제의 상이 그려져 있는 깃발을 예루살렘으로 가져 왔는데, 유대인들이 율법을 손상시키기보다 죽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탄원하자 빌라도는 그 깃발을 예루살렘에서 치우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관개 시설을 건축하기 위하여 빌라도가 성전의 금품을 취하였을 때 큰 폭동이 일어났는데, 빌라도는 군대를 동원하여 폭동을 진압하였습니다. 그리심 산에 모세 시대의 보물이 묻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에 모여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빌라도는 죽이거나 체포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3장 1절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보도합니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 빌라도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은 모두 처형하였습니다(막 15:7,27 참조). 빌라도는 결코 유순하지도 않고 온정적이지도 않고 마음이 약하지도 않습니다.

빌라도 앞에 선 예수님의 침묵, 그 의미는?

이제 예수님은 그런 빌라도 앞에 서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써 로마와 황제에게 반역을 꾀한다고 기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말에 긍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의 말이다.” “네가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했지만, 예수님 자신은 죽기까지 사람의 아들(人子)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고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라도가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자기를 고발하는 대제사장들과 심문하고 있는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이 침묵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독을 사랑하는 성격 때문에, 대답할 기력이 소진되어서, 대답할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대답해도 별로 유리치 않아서, 자기의 목숨에 대해서 자포자기했던 것 등입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위기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나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자기의 무죄를 입증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말하는 것이 자기에게 불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침묵으로 여운을 남김으로써 활동기간의 가르침보다 더 많이 더 강렬한 말씀을 남깁니다.

“침묵은 말없음표가 아니다. 분명 말줄임표이다. 침묵이 은폐의 몸짓이 아니라, 강한 저항의 몸짓이다. 입을 여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더욱 값진 느낌표이다. 말없이 떠날 때, 그렇게 뒤돌아설 때, 침묵이 빛 난다. 한 밤에 사뿐히 내려앉아도 은빛 세상을 선물하는 함박눈의 침묵처럼 말이다.”<침묵의 미학 - 김성로 화백 - 작성자 목필균>

예수님의 침묵은 할 말이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할 말이 없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마음 깊이 담아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묵비권’도 아닙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굴복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마음에 날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침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꼭 할 말은 하는 것이 침묵의 참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침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자기의 길을 가기 위한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그 길을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 길을 피하기 위해서 괴로워하면서도 가야만하는 그 길을 가기 위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기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놓음으로써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는 그 길을 가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죽음으로 구원(해방)과 영생(참 삶)을 주는 그 길을 가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거대한 권력 앞에서 예수님의 침묵은 그 권력과 폭력에 대한 폭로입니다. 빌라도의 재판과 산헤드린의 재판을 통해서 마가복음은 유대 지배층과 점령 세력인 로마제국이 모두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산헤드린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의 폭력과, 로마 황제의 대리자로 식민지를 지배하는 로마 총독의 권력에 대한 폭로입니다. 자기들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오만에 대한 폭로입니다. 자기의 목적과 주장을 어떻게 해서든지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의 독선에 대한 폭로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교묘하게 회피하려는 사람들의 무책임에 대한 폭로입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한 침묵 훈련

우리의 삶에서 침묵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대화와 회의와 재판에서 침묵과 웅변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언제(때) 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치는 달라집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침묵의 훈련입니다. 가톨릭에서는 피정(避靜)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묵언(黙言)이라고 합니다. 말하는 훈련보다 더 중요한 훈련이 침묵 훈련입니다.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계속 말해야 하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격언에 “조잘거림은 나면서부터 배우지만 침묵은 좀처럼 배우기 힘들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방법에는 침묵효과(mum effect)라는 것이 있는데,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밴드인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묘비명”(EPITAPH)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예언자들이 그들의 예언을 새겨 놓았던 벽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악기 위에 햇빛은 밝게 빛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악몽과 꿈으로 분열 될 때, 아무도 월계관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침묵이 절규를 삼켜버리듯이... 금이 가고 부수어진 길을 내가 기어갈 때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뒤에 앉아서 웃기나 할 텐데 울어야 할 내일이 두렵습니다. 운명의 철문 사이에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아는 자와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습니다. 아무도 법을 지키지 않을 때 지식이란 죽음과도 같은 것. 내가 볼 때 모든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침묵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침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침묵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혼란과 절망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입니다. 그 길을 향한 침묵으로 자기를 성찰하면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죽음과 같을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사랑으로 함께 하는 공동체에서 옅은 지식과 불확실한 정보로 남을 찌르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겸손으로 서로에 대한 침묵을 훈련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길을 묵상하는 침묵 훈련은 자기를 성숙하게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사람을 살리는 길을 가기 위한 침묵, 공동체를 위해 해야 할 자기의 일을 위한 침묵의 훈련을 통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병일 목사 (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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