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 좌우에 두 명의 강도도 함께 못 박혔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욕하며 조롱합니다.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의 조롱도 계속됩니다. 결국 함께 못 박힌 강도들도 예수님을 비난하고 욕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는 조롱하였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 구원을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에서 갑작스럽게 반전된 이러한 분위기가 당혹스럽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에 “호산나!”하고 외치면서 환호하고 따르던 무리들,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배자들과 논쟁하고 가르칠 때에 예수님을 옹호하던 무리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기야 제자들마저도 모두 도망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잡힌 후에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외면하였습니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처형을 요구하였고, 모두가 하나같이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원래부터 적대자들이었던 지배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할 수 있지만, 언제나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께 호의적이면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갑자기 돌아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잡힌 겟세마니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골고다까지 예수님은 철저하게 버림받고 외면당한 자입니다.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가혹하리만치 홀로 남겨진 예수님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땅 위에 세워져서 하늘을 향한 나무에 못 박힌 채로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습니다. 끝내는 하느님마저도 예수님을 버린 것 같습니다. 숨지기 직전 예수님의 고독은 절정에 달합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무심한 하늘은 그 절규를 삼켜버릴 뿐입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느님, 무와 같은 침묵, 하느님이 없는 것 같은 적막함, 철저하게 버림받았지만 고통을 감내하는 예수님만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두가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예수님을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한 사람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무리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고 죽기까지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이러한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오늘 지배자들의 협박과 위협으로 숨죽이는 사람들, 거짓된 회유와 허황한 유혹으로 방향을 잃은 사람들, 그렇게 놀아나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조롱당하는 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내가 될 수도 있고 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습니다.

암튼 예수님은 철저하게 홀로 버려진 채로 서서히 죽임 당하고,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임 당함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왜?’라는 물음에 응답하려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왜?’ 죽임을 당했느냐 하는 물음은 ‘무엇 때문에?’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죽임을 당했느냐 하는 물음으로 전개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을 누가복음에서는 “행악자”[κακοϋργος; 악행하는 자, 범죄자, 악인, 죄인]라고 하고,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강도”[λῃστή; 도적, 강도, 약탈자]라고 합니다. 요세푸스는 강도를 단순히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상해를 입힌 사람이 아니라 혁명가라고 합니다. 즉 식민지 상황에서 로마에 저항하거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십자가형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에서 십자가형이 로마의 지배에 저항하거나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처형방법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활동과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심당(젤롯당)처럼 반로마 투쟁을 했느냐 안했느냐, 예수님이 유대의 독립을 위해서 저항했느냐 안했느냐, 예수님이 폭력을 사용하거나 옹호했느냐 안했느냐, 예수님이 테러리스트냐 아니냐, 예수님이 혁명가냐 아니냐 등입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먼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복음서에서 이러한 물음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근거를 모두 찾을 수 있습니다. 혁명과 저항, 폭력과 비폭력의 근거들을 모두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따르는지는 각 사람의 상황과 주장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활동이나 가르침으로부터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그에 맞는 구절을 취합니다. 남한에서 한창 사회구성체논쟁이 있을 때에 예수님이 NL(민족해방)이냐 PD(노동해방)냐 하면서 논쟁하기도 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폭력적이었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행동은 예루살렘 성전의 기능을 마비시킨 일(마가복음 11장)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추방시키고, 장사하던 탁자를 둘러엎고, 성전을 가로질러 ‘기구(σκεϋος; 희생제사에 필요한 도구)’를 나르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당시에 성전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있었는데, 성전이 한두 평도 아닌데, 이 일을 했다는 것은 지배자들과 성전 경비병들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전제로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고 말하거나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고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에도 성전 경비병들뿐만 아니라 로마의 군인들까지 동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구절 또한 많습니다.

예수님이 로마 황제나 유대의 지배자들에게 저항하는 구절도 많습니다. 당시의 종교는 단지 종교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전체를 통제하였기 때문에 사회-정치적 저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메시아(그리스도)와 주님(퀴리오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호칭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기에 예수님이 정치적 해방을 위해 저항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폭력과 저항에 대한 대표적인 성서구절은 마태복음의 산상설교에 있습니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대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10리를 가주어라.” 우리는 이 가르침을 굴복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단지 원수를 용서하고 폭력에 대응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오른쪽 손등으로 오른뺨을 치는 것은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행위이지만, 다시 왼쪽 뺨을 대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하는 행위입니다. 상대방이 오른 손이나 주먹으로 왼쪽 뺨을 친다면 그것은 자신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5리를 가자고 할 때 10리를 가주는 것은 스스로의 주체적 행위를 표현하며, 상대방을 오히려 당황하게 할 것입니다. 5리 이상을 가게 되면 로마법에 저촉되기 때문입니다. 

암튼 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에서 폭력과 비폭력의 절대적인 기준을 찾는 것이나 예수님이 정치적 해방을 위해 저항이나 투쟁을 했느냐 안했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이나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것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의미나 저항의 정도에 따라서 예수님은 긍정하거나 부정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그러한 시도는 복음서의 의도와 무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죽임을 당했습니까?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죽임을 당했습니까?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사실관계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신앙고백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어떻게 따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 고백과 따름은 다시 죽음에서 삶으로 시간을 거슬러 반추해야 내 맘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삶 속에서 이루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그 대답이 될 것입니다. 죽임 당함의 이유나 목적은 삶의 지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이유와 목적을 깨닫기 위해 2년 동안 마가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마지막 고개를 오르는 지금 나는 무엇을 깨달았나 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매주 본문을 묵상하고 하늘뜻펴기를 준비하면서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것은 항상 공동체였습니다. 본문을 해석하면서 건조한 설명을 할 때에도, 개인적인 내면을 드러낼 때에도, 정치와 사회적 현실을 비판할 때에도, 심지어 노무현과 이명박을 비난할 때에도 염두한 것은 공동체였습니다. 강남향린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과 교회 전체가 어떻게 예수님을 이해하고 고백해야 할지를 생각했습니다. 나의 깨달음이야 어떻든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깨달음은 각자의 몫이니까요.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에 담겨 있는 것은 한마디로 해방입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용어로 구원입니다. 자유를 위한 해방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나 특정 집단만의 자유와 해방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해방과 자유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자유를 위한 해방을 이루는 길은 혁명입니다. “혁명은 기존의 모든 것, 지금까지 지배하던 가치관이나 그 위에 형성된 질서를 다른 가치관에 의해서 뒤집어엎고 그 다른 가치관에 의한 새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다.”(안병무, “저항과 전통”[해방자 예수])라는 말의 뜻대로 혁명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은 분명히 로마든 유대든 지배자들에게 죽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폭력이든 비폭력이든 저항했고 꾸짖고 폭로하였습니다. 폭력은 단순한 비폭력의 반대가 아니며, 비폭력은 단순한 폭력의 부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에 따라서 때로는 평화를 가르쳤고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며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임 당함을 묵상하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되새기는 것은 바로 오늘 나의 삶을 위한 것이고,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 활동과 가르침이 나에게 의미 있게 되려면, 예수님의 죽임 당함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예수님을 모든 생명을 위한 해방자로, 자유를 위한 해방자로 함께 고백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그것을 되새기는 자들을 소환합니다. 그의 고난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행위였지만 우리를 관람석에 앉아 있도록 놓아두지 않습니다. 그는 이천년의 시간을 넘어서 오는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고난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시대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몸부림 속에서 예수님은 문득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의 고난을 회상하는 자, 우리 시대의 고통받는 자들 속에서 그를 발견한 자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현실을 낯설게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분쟁과 갈등, 오만과 편견, 기만과 허위의 현실은 용인할 수 없는 것이며 십자가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적인 불의에 자기 자신이 가담하고 있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노와 절망은 정죄의 칼을 놓고 분열과 반목으로 반복되는 역사의 순환을 깨뜨리는 지혜를 구합니다. 그에게 이천년 전 고난당하셨던 이 세상의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회상하는 자는 결국 그분과 같이 일어나는 자이며, 이제 회상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가 됩니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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